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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CEO

고석만 2012 여수세계박람회 총감독 "융합 콘텐츠 시대… 박람회도 새로운 패러다임 필요"‘

고석만 2012 여수세계박람회 총감독 "융합 콘텐츠 시대… 박람회도 새로운 패러다임 필요"‘풀 샷 전시’통해 관객들이‘나만의 것’찾기 기대 / 독점식 문화유통구조가 한국문화 발전의 걸림돌 / 치밀한 논의·과정 거쳐 브랜드 공연물 제작해야

김은정  |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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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04  00:4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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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융합시대에 진입하는 오늘날 박람회는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는 고석만 총감독은 여수엑스포의 가치를 인식의 전환으로 꼽았다. 그는 여수엑스포를 준비하는 동안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부분 역시 '진일보'한 박람회를 만들기 위한 콘텐츠와 방식을 찾는 일이었다며 그 과정에서 선택한 것이 '풀 샷 전시'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안봉주기자 bjahn@
 

"수명 100년의 문화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5년 전쯤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에 취임한 그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아무리 문화가 밥이 되는 시대라지만 아무것이나 밥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은 뻔 한 이치인데도 그것을 잊고 있었던 사실에 새삼 고개 끄덕여졌었다. '수명 100년 문화콘텐츠'를 내세운 그의 인터뷰는 그래서 더 흥미롭게 읽혀졌다. 고답적인 논리나 주장에만 의지하지 않고 생생한 문화현장의 안팎을 분석해낸 직관과 경험은 그냥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터였다. 들여다보니 그의 활동은 늘 현장, 그 중심에 놓여 있었다. 어느 분야에서 일하든 뚜렷한 자기직관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으로 탐구하며 방향을 제시하고 그 선택을 열정적으로 실천하면서 한국 문화의 흐름을 새롭게 열어온 사람.

지금은 2012여수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 현장에서 또다시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고석만 총감독(65)을 만났다. 개막 한지 20일째 되는 날이었다.

여수박람회는 비교적 무난한 출발이 안정적 운영을 예고하고 있지만, 널뛰기하듯 하는 초반의 방문객수 때문에 언론사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뷰 중에도 방문객숫자 등 현장 상황이 총감독의 휴대폰 문자보고로 쉴 새 없이 전달됐다. 긴장할 수밖에 없는 3개월 동안의 일상이 짐작되었지만, 그의 의지는 그래서 더 충만해보였다. 여수박람회의 가치 구현, 그 목표는 무엇인가 물었더니 망설임 없이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박람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문화적 일상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길을 모색해온 그와의 인터뷰는 그가 놓아온 삶의 궤적에서 돋보이는 한국문화사의 한 단편을 이야기로 듣는 기록 같았다. 정작 그는 손사래 치지만 한국문화의 지형이 그가 걸어온 노정위에서서 더 새로워졌음을 또한 알게 됐다.

-여수엑스포에는 언제 합류하셨습니까. 인연도 궁금합니다.

"엑스포조직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한 것이 4년 전인데 저는 2년 전에 합류했습니다. 조직위에서 연락이 와 강동석 조직위원장을 뵈었는데 총감독에 대한 의향을 물어보시더군요. 서슴지 않고 의향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도 추천된 이유가 궁금했는데 위원장님께서 '엑스포가 갖고 있는 타깃 층이 있다.

다른 어떤 예술문화 장르와는 다르게 불특정 대다수의 대단히 보편성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고 감독은 이미 방송을 통해 충분히 훈련되었다고 생각했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방송 쪽에서는 타율이 좋은 편이었거든요.(웃음)"

-개막식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혼신의 힘을 쏟았어요.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다른 영역의 개막식과는 차별성을 갖게 하는 것이 과제였는데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그 답을 지역적 특성에서 찾았습니다. 여수는 아름다운 풍광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주목했어요. 모든 분들이 실내 개막식을 기대했는데, 풍광에 대한 자신감으로 바닷가로 나갔고, 시간도 밤 시간대를 택했습니다. 공간의 새로운 확장, 그리고 시간에 대한 개념을 뛰어넘고 싶었습니다."



-엑스포에 담고 싶었던 콘텐츠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여수엑스포는 직전에 열렸던 상해엑스포와 차별성을 갖는 것이 과제였습니다. 규모도 그렇고 예산 면에서도 큰 차이가 나는데, 그래서 어떤 형식으로 다루어야 하는지 더 고민이 많았죠. 게다가 예전의 박람회는 산업박람회적인 성격이었지만 오늘날의 박람회는 국가들의 문화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경향으로 바뀌었습니다. 특히 융합시대에 진입하는 지금은 박람회도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객들의 패러다임도 그렇고요. 어떻든 '진일보' 해야 한다는 것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의 고민이었습니다."

-엑스포는 전시 형식이 가장 관심사인데요.

"여수엑스포는 새로운 인식과 감동을 전할 수 있는 전시 방식을 찾는데 오랜 시간 투자했습니다. 열어놓고 보니 그런 의도가 많이 비껴가진 않은 것 같아 다행스럽습니다. 사실 그동안 전시는 패널전시를 통한 주입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소개하고 설명하는 패널전시 대신 드라마 제작 용어로 보자면 '풀 샷(full shot) 형식'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을 저는 '풀 샷 전시'라고 표현하는데, 부분적으로 쪼개지 않고 전체적으로 철학과 가치관을 담아내는 형식입니다. 그 '풀 샷' 속에서 관객들이 '나만의 것'을 찾아낼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이제 좀 엑스포를 관전하시는 마음으로 돌아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워낙 개막식에 혼신의 힘을 다 쏟아서인지 개막식 끝나자마자 탈진해서 병원신세를 져야 했어요. 원래 무슨 일을 맡으면 '올 인'하는 스타일이어서 그것이 지나치면 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만큼 빠져버리죠. 엑스포가 끝날 때까지는 여유를 갖고 돌아보는 일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함께 일하는 분들은 좀 고달프겠는데요.

"힘들어하지요. 그래도 끝나고 나면 보람을 함께 나눌 수 있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연출자로서 스텝을 관리할 때도 쉴 때는 확실하게 쉬고 일할 때는 완벽하게 집중하게 하는 방식으로 일했습니다. 고도의 감각은 고도의 긴장감에서 나오는 것이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을 때 좋은 감각도 나오고 기억력도 더 잘 발동하거든요."

-젊은 시절 드라마 피디로 이름을 날렸던 소위 '스타 피디' 1세대신데 그 힘이 거기서 나온 것 같습니다.

"20대 후반부터 20여 년 동안 전성기를 구가했다고들 하는데 만약 그랬다면 늘 고도의 긴장감 속에서 보다 더 완벽한 준비를 하고, 다른 사람 보다 몇 배 노력했던 덕분일겁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것이 별로 없고 오히려 학식이나 재주도 부족하니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제 전공 분야에서 노력하는 길 밖에 없었거든요."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일을 해오셨는데, 항상 그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주도해 특정한 흐름을 만들어오셨습니다. EBS 사장으로 재직하실 때는 실험적인 사업들을 주도해 화제가 되었죠.

"그때는 어떻게 보면 만용에 가까울 만큼 용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성과도 좋았고요. 50-60년대와 70년대를 이어오는 한국 문화사를 담아내는 드라마를 제작한 것이나 일주일동안 하루 17시간씩 연속 방영하는 획기적 편성을 감행한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 1백만 명 동시 접속 수능방송 운영, '스페이스 공감' 같은 것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데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떠나시게 되었죠. 그래서 원망과 비판을 들으셨죠.

"결과적으로는 제 오판이었어요. 엠비시 사장 공모에 나서면서 사표를 내게 되었는데, 단순한 권력욕은 아니었어요. 제가 출발했던 엠비시를 성장시켜 새로운 터전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주위에서 권유도 있었지만 거기에만 휘둘린 것은 아니고요. 후에 회사에서 여러 통로로 함께 일 해줄 것을 강권해 제안 받은 여러 직책 중에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제작본부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사실 굴욕적 입성이었지만 제 소신을 펼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였어요. 무참한 세월이었습니다."

-무참한 세월이라는 표현이 얼마나 그 시절을 힘들게 보내셨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콘텐츠진흥원에 가셔서는 문화의 가치를 어떻게 담아내셨습니까.

"'문화는 앞으로 먹을거리'라는 부분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모든 사업을 그 위에서 기획하고 실행했죠. 100년 수명의 콘텐츠 만들기도 그 연상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성과는 어땠습니까.

"과제가 많았어요. 융합시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구조를 우선 만들어야 했습니다. 물리적 융합이 아니라 화학적 융합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현대미술을 보면 어느 시점에 와서는 '예술은 죽었다'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동의어 반복의 시대가 있었잖아요.

그런데 다행히 백남준 류의 융합 콘텐츠가 등장했지요. 새로운 미디어 아트 같은 것들이죠. 융합콘텐츠는 쌍방향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제1의 공간과 2의 공간이 만나 3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콘텐츠진흥원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제 3의 공간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방향은 유효하다고 봅니다."

-100년 수명의 문화콘텐츠를 제안하고 실행도 하셨는데, 지금 한국문화 세계화에 가장 절실한 과제는 무엇입니까.

"국가적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문화의 유통정책을 바로 잡는 일입니다. 한국 문화는 유통부분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어요. 이것이 바로 잡지 않으면 한국문화의 미래는 없습니다. 예컨대 한국최고의 종합유통문화회사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예요. 한국 문화 유통시장은 완벽하게 99대 1의 논리에 빠져 있습니다. 모든 문화가 번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1프로의 창작자는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는 아주 나쁜 구조지요.(그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안타까운 죽음을 예로 들었다) 정부도 정부지만 일본의 '덴츠' 처럼 오늘의 문화판을 주도하는 거대 문화 유통 회사들이 인식을 바꾸고 구조를 바꾸어 창작자와 현장이 같이 가는 구조를 만들어야합니다."

-거대자본이 독점하는 문화유통 구조가 가져오는 심각성은 어느 정도인가요.

"방송 쪽을 보죠. 문화콘텐츠, 한류와 관련 있는 회사가 아주 많습니다. 이들의 궁극적 목적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인데, 문광부에 등록된 것만 작년 기준 990개라고 하죠. 이중 케이블 회사에 프로그램을 납품하는 회사가 214개, 그 중에서 프로그램을 내고 돈을 받는 회사는 50여개에 그칩니다. 나머지는 전부 적자인데, 회사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죠. 초대형 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가 전체 85%를 차지하고 있는 유통구조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영화판도 마찬가지예요. 이러한 독점식 유통구조가 지속되는 한 한국문화의 미래는 없습니다."

-산업화에 뒤쳐진 전북은 오랜 세월 패배의식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나 문화가 밥먹여주는 시대를 맞았으니 가능성과 희망이 있지 않은가요.

"물론입니다. 그러나 과제가 좀 많은 것 같습니다. 약간 벗어난 이야기인데 같은 맥락으로 보고 한 가지 제안하고 싶군요. 오래전부터 UEC(Urban Eentertainment Center) 개념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왔습니다. 구체적인 콘텐츠도 제안 했었구요. 전라북도도 자원은 많은데 그것을 보편화 대중화하고 산업화 할 수 있는 뭔가가 빠져 있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전주만 해도 영화제와 대사습, 한옥마을 같은 자원이 있고 한스타일 자원도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그런 것들이 제각각 놓여있다는 것이에요. 전주가 가장 한국적인 도시로 가려고 한다면 특히 UEC의 개념이나 기구, 체계를 주목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전라북도에서 지금 대표적인 브랜드 공연물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조언을 해주신다면.

"장예모 감독이 제작한 '인상 유삼저(印象劉三姐)'가 도시 브랜드 공연이 성공한 예죠. 중국에서도 당초 3개 도시가 제작했던 것이 7개로 늘었다고 들었습니다. 성과가 좋으니 그러한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이겠죠. 여수 엑스포의 '빅오쇼'도 브랜드 공연물로 내세울 수 있습니다. 엄청난 예산이 투자되었고, 호응도 높아 귀하게 여기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어떤 작품을 어떻게 제작하느냐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브랜드 공연물을 만든다면 대형공연물이 될 텐데, 치밀한 논의와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규모에만 집착해 제작한다면 관객보다 출연자가 많은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부분들을 극복해야 하는데, 지역에서도 고민하는 분들이 많겠지만 우선은 호흡을 길게 가져갈 것을 권합니다. 예컨대 프랑스의 아방가르드가 일어나듯이 작은 것들로 시작해 문화의 큰 틀까지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구조이고 건강한 구조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콘텐츠라도 빛을 내기 어렵습니다."

2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 동안 그는 문화에 대한 깊고 넓은 식견을 거침없이 풀어냈다. 모두가 그가 체득한 생생한 현장으로부터 길어 올린 것들이었다. 엑스포가 끝난 후 계획을 물었더니 아직 마음에 놓아둔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문화가 밥 먹여주는 이 시대'에서 고 총감독이 쉴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아 보인다. 스스로는 이미 일할 수 있는 절정기가 끝났다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문화의 리더이고 첨병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 고석만 총감독은 한국문화시장의 왜곡된 유통구조를 바로 잡지않으면 한국문화의 미래는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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