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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저 인터뷰]게임법 전문 이권호 변호사

[법저 인터뷰]게임법 전문 이권호 변호사

 

“국내 법이론을 해외로 ‘수출’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최근 ‘리니지 게임머니 거래가 위법하지 않다’는 판결을 이끌어낸 한 변호사가 언론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이권호 변호사(사시 45회.법무법인 에이펙스). 그는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할 수 있는 ‘게임법’ 전문 변호사다. 이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대학원 시절 ‘게임 디지털콘텐츠에 대한 사법적 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는 등 게임법과 관련해 다년간의 연구를 해왔다.

이처럼 그는 국내 법학계에서는 최초로 게임 디지털콘텐츠와 게임 거래행위에 대한 체계적인 학문적 연구를 해온 점을 인정받아 ‘게임법의 선구자’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실제로 그는 현재 국내 유명 게임업체 블리자드(Blizzard: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넥슨(Nexon:마비노기, 카트라이더)의 자문을 맡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외에도 이 변호사는 한국 문화콘텐츠진흥원, 엔터테인먼트법학회, 디지털 자산유통협회에서 게임법과 관련된 강의를 하며 학술활동에도 힘써왔다.


게임법이라는 독특한 분야를 전문으로 하게 된 까닭을 묻자 이 변호사는 “내가 사실 게임을 매우 좋아한다”면서 “대학시절,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빠져서 고시공부를 등한시 한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요즘도 틈틈이 게임 ‘플레이스테이션 3’와 ‘스타크래프트 2’를 즐긴다는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게임 분야를 직업적 전문성과 연계해 다룰 수 있다는 게 큰 축복인 것 같다”고 말했다.


게임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몇몇 일반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단순히 즐기는 게임에 대체 어떤 법률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가?’하고 궁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2년간 이 변호사가 맡은 게임 관련 대형 소송건만 꼽아도 ‘게임머니 거래 무죄 판결 소송’(2009도7237, 7238) 등 무려 9건에 달한다. 이제 게임을 단순히 ‘가상 놀이’에 머문 수준이 아니라 ‘일상의 법률문제가 사이버 상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새로운 측면에서 바라봐야할 때가 온 것이다. 이 변호사를 만나 가상현실에서 펼쳐지는 법률의 세계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게임머니도 보호가능성 있는 재산적 이익


피고인 김모씨와 이모씨는 공모하여 지난 2007년 약 2000회에 걸쳐 리니지 게임의 게임머니인 ‘아덴’을 매입하고 환전하는 행위를 했다. 검찰은 김모씨와 이모씨를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진법’) 제44조 제1항 제2호, 제32조 제1항 제7호 위반으로 기소했고, 원심법원(부산지방법원 2008. 12. 24. 선고 2008고정1584)은 이를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나 이 변호사가 사건을 맡은 후부터 전세는 역전됐다. 평소 게임을 즐겨했던 터라 게임 특유의 메커니즘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던 그는 법정에서 ‘게임 이용자들이 투입하는 시간이나 노력을 단순한 오락적 차원이 아니라 보호가능성 있는 재산적 이익 내지 가치로써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리니지의 경우 고스톱, 포커 게임과 같이 배팅 또한 배당의 수단이 되는 사행성 게임이 아니라, 가상의 세계에서 게임 이용자들끼리의 상호작용을 통해 현실 세계를 모사하며 ‘룰(rule)’을 만드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가운데 발생된 노력의 결과물이 게임이용자에게 귀속되는 것은 당연히 위법이 아니라는 설명.


이에 항소심 법원(부산지방법원 2009. 7. 10. 선고 2009노99판결)은 ‘게진법’ 위반 혐의에 대한 원심의 유죄판단을 파기하고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의 게임머니는 게진법에서 정한 환전금지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 피고인들에게 무죄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 변호사는 “김씨 등이 거래한 게임머니는 게임기술의 발전에 따른 정상적인 재화의 거래인데도 검찰이 무리한 판단을 했던 것 같다”며 “문헌을 무리하게 확장 해석한 검찰의 주장을 죄형법정주의에 입각해 판결한 사법부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환전을 금지한 사행성 게임머니와 라덴의 차이에 대해서 그는 “사행성 게임은 배팅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누군가 원금 손실의 위험이 있는 반면 ‘MMORPG’는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방식으로 이용자의 노력에 의해 좌우될 뿐 우연적 획득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게진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게임을 통해 획득한 유 무형의 결과물들을 환전, 알선하는 행위를 법으로 금한다고 정했다. 그러나 그동안 이런 규정이 다소 추상적이었기 때문에 다의적인 해석의 여지가 있었는데 이번 판결을 통해 해석론이 잘 나왔다”면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법적 공백상태와 다름없었던 게임 디지털콘텐츠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법리적 연구가 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영화 ‘아바타’처럼 인생이 게임 그 자체?


아직은 미개척 분야라는 게임법. 그렇다면 게임 소송을 진행하면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을까?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게임을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이 갈린다는 게 문제”라면서 “쉽게 말해 비(非)게임 이용자들이 게임 이용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인 편이다. 특히 재판부에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몇이나 있겠는가? 따라서 게임의 구조라든지 내적인 부분을 비 게임자들에게 이해시키는 게 다소 어려운 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비게임자의 부정적인 시선이 있음에도 게임 소송에서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분명 있다. “영화 ‘아바타’처럼 인생이 게임이 아니겠냐”고 되 물으며 그는 “가상 세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적인 문제를 떠올려보면, 그 생각만으로도 골치가 아파올 정도로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이를 쉽게 외면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세계의 아바타에게 어디까지의 인격 혹은 권리를 인정할 수 있는지, 아바타가 취득한 가상세계의 물건에 소유권 개념을 인정할 수 있는지, 가상세계의 ‘설계자’, 예컨대 게임회사와 ‘참여자’ 사이의 관계는 법률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가상세계에 현실의 법을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는지 등 무수히 많은,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법률문제들이 법률가들 앞에 놓여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게임법 이론, 해외로 수출할 것”


이 변호사의 말처럼 실제로 가상 게임은 우리 일상과 그리 동 떨어져 있지 않다. 게임소송의 전망에 대해 묻자 이 변호사는 “단기적으로 봤을 땐 분쟁이 있긴 하나, 오직 게임 분야만 집중하기엔 아직은 그렇게 시장이 크진 않다”면서도 “기존의 선례가 없고 새롭게 연구해야 한다는 점이 게임법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분석했다. 선례를 마련한다는 궁극적인 과제가 주어진다는 점뿐만 아니라 게임 관련 소송가액이 억 단위에 이르는 경우도 많아 시장 가능성이 엿보이는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그는 또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앞으로는 콘텐츠가 화두로 떠오를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그동안 영화나 음반, 방송은 지속적인 성장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쇠퇴기를 맞고 있는데 반해 게임 산업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경쟁력 있는 엔터테이먼트 분야로 성장해왔다”고 설명했다. 국내 게임이 수출되며 전 세계 게임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가운데 이러한 시대적 현상을 외면하지 말고 게임법 분야에 많은 법조인들이 뛰어들어 개척할 것을 그는 권유한다. 게임과 관련해서 다양한 판결, 논문이 나오게 된다면 이렇게 마련된 법적 선례들이 국내 최초로 해외에서 인용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80,90년대 지적재산권 분야를 개척했던 선배 변호사들이 국내 최고의 전문변호사로 거듭난 것처럼 현재 변호사를 희망하는 예비 법조인들이 게임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도전, 연구한다면 분명 그 만큼의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게임과 관련한 새로운 법률문제에 대한 연구가 중요한 만큼 게임의 중독성이 가져올 수 있는 청소년 문제에 대해서도 항상 예의 주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포그니 기자 desk@le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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