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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동물? 인물의 본질에 다가가려 할 뿐”

“연기 동물? 인물의 본질에 다가가려 할 뿐”
영화 ‘의형제’ 송강호
한겨레 이재성 기자 김경호 기자
» 배우 송강호(43)




 ① 송강호는 동물이다. 연기를 위해 태어난 연기 동물.

 ② 송강호는 예술가다. 스스로 배역을 창조하는 예술가.

 

 ※ 알림 : 아래의 인터뷰 기사는 이 두가지 명제의 참과 거짓에 관한 판별식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인터뷰 시간(사진 촬영 포함 1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대신 여기에 동의하는 분들이 자신들의 논거를 풍부히 할 수 있는 몇 가지 시사점을 드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인터뷰는 일정한 편견을 갖고 시작한 인터뷰임을 알려드립니다.

지난 2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배우 송강호(43)를 만났다. 지금까지 배우를 인터뷰한 장소 중 최고급 호텔이었다. 먼저 이번에 출연한 영화 <의형제> 얘기부터 시작했다. <의형제>는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남파된 간첩과 그 간첩을 쫓는 국가정보원 요원 사이에 우정이 싹트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송강호는 공을 독식하려다 잘린 국가정보원 요원 이한규 역을 맡았다.



남파간첩과 국정원 요원
우정 싹트는 과정 그린 영화
같은 장면 매번 다른 연기…
“감정이 10초 전과 어떻게 같나”

-이한규는 그동안 송강호의 연기를 집대성한 인물로 보입니다. <살인의 추억>의 발로 뛰는 형사, <우아한 세계>의 생활인 조폭, <복수는 나의 것>의 집념에 불타는 아버지, 그리고 어느 영화에서나 조금씩 비쳤던 코믹함까지.

“강동원씨가 맡은 송지원이라는 배역이 단선적이잖아요. 감정 진폭이 없고 복잡하지 않지만 정서적으로 깊이 있는 울림을 주는 배역이죠. 제가 맡은 한규는 그런 깊이나 울림보다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죠. 긴장을 줬다가 풀었다가 리듬감 있게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이한규라는 인물이 간첩을 잡겠다는 투지에 불타는 인물이라 시대에 역행하는 내용이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엔 간첩이 너무 멋있게 묘사돼서 옛날 같으면 국가보안법으로 걸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여서, 오히려 기존의 남북 긴장 관계를 해체한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만.

“<쉬리>가 남북의 극단적 대치와 화합할 수 없는 현실을 그렸다면 <공동경비구역 JSA>는 전혀 다른 맥락이었잖아요. <의형제>는 분단 문제 자체보다는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하고 있어요. 체제나 이념보다 최후의 지향점은 사람이 아닌가, 그런 얘기를 무겁지 않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첩 잡는 일에 투철한 이한규를 보면 고문경찰의 대명사 이근안이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결국 그렇게 그려지지 않은 것은 송강호라는 배우 덕분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이분법으로 해석해서 연기했다면 무목적의 신념을 가진 단편적인 모습으로 나왔겠죠. 한규라는 인물이 그렇게 열심히 뛰는 것은 정말 반공정신과 국가관이 투철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인정받고 싶다, 가족도 먹여 살리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배우 송강호는 이른바 즉흥 연기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시나리오도 한번 이상 읽지 않는다면서요. 어떤 사람은 연기 동물이라고까지 표현하던데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연극할 때 묘사와 모사를 얘기했었는데, 과연 똑같이 하는 게 좋은 연기냐는 거죠. 최민식이 하든 송강호가 하든 똑 같은 연기가 나온다면 창의성과 개성은 없어지는 거잖아요. 대부분의 배우들이 행려병자나 장애인 등을 연기할 때 그 분들하고 같이 지낸다던가 하잖아요.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저는 태생적으로 그런 걸 안 좋아하는 거 같아요. 그런 것보다는 본질적으로 다가가야죠.

-본질적인 것이 뭔가요. 좀 더 풀어서 말씀하신다면.

“겉모습보다는 그 인물만이 가지고 있는 정서죠. 우리가 알고 있지만 밖으로 나와 있지 않은, 평상시에 볼 수 없는 어떤 걸 잡아내는 게 중요하죠.”

-그걸 어떻게 잡아내나요?

“그거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감이든 뭐든. 흐흐핫하.”

이 대목에서 그는 뒤로 갈 수록 억양이 올라가는 특유의 웃음 소리를 냈다. 그의 연기 원천이 동물적 ‘감’이라는 걸 확인한 순간이다.

-같은 장면을 열 번 찍는다고 하면 그 열 번을 모두 다르게 연기하는 걸로 유명합니다. 계산해서 그렇게 하는 건가요?

“일부러 다르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반이에요. 똑같이 한다고 해도 이상하게 저는 좀 다르게 나와요. 하~, 왜 그럴까? 어떤 배우는 백번 시켜도 백번 다 똑같이 하는데. 신인 감독님들은 당황스러워하죠. 이건 뭐야, 똑같이 해달라는데 조금씩 틀리니까. 나중엔 좋아들 하시죠. 열개면 열개 다 다르니까 (편집실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죠. 현장에서 우스개 소리로 이렇게 얘기해요. 우리가 느끼지 못하지만 지금도 지구가 돌고 있다. 사람 감정이 10초 전과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나. 이게 뭐 말이 되나 모르겠는데 저 혼자 변명으로. 흐흐핫하.”

같은 장면을 찍을 때마다 일부러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는 천재일 것이다. 아이큐를 물어봤더니 “아이큐 검사인지 모르고 (그냥 시험인 줄 알고) 자다가 일어나서 자동으로 옆자리 친구 거를 보고 썼다”고 한다. 그의 창의성은 머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 영화 ‘의형제’
-김영진 평론가는 배우 송강호에 대해 “어떤 역을 맡아도 자기화해서 송강호적 인간형을 만들어내고 그것으로 그 직업, 계층, 성격의 인물에 맞는 분위기를 절대적으로 창조한다는 점에서 아주 미세한 일상적인 결에서 감성을 창조하는 예술가”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술가라는 칭호를 얻는 배우는 많지 않은데요.

“아유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다른 배우들이 하면 다른 배우의 맛이 나겠죠. 제가 가지지 못한 장점이 보일 겁니다. 나밖에 못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인터뷰니까 그렇게 말씀하시겠죠.(웃음) 안 그랬다간 ‘네가지’ 논란에 휩쓸리실 테니까요. 송강호씨의 연기는 대체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이 하면 별로 웃기지 않는 말도 송강호씨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폭소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잖아요.

“<밀양> 때도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별 얘기 아닌데 첫 등장부터 웃으시니까 내가 그렇게 우스꽝스럽게 나왔나, 생각하게 되죠. 일부러 웃기려고는 안 해요. 아마도 너무 일상적이라서 웃으시는 게 아닐까요. 연기라기보다는 편안한 현장감 같은 거.”

-만약 사투리 때문에 웃는 거라면 외국인들은 웃지 않아야 맞잖아요. 그런데 외국인들도 같은 지점에서 웃고 반응합니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알 수가 없는 부분이에요. 자꾸 똑같은 말 써서 죄송합니다만, 본질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요.”

-학창시절에도 웃겼습니까?

“제가 낯가림이 심했어요. 대인관계도 폭 넓은 편이 아니었고요. 그냥 친한 친구 한두명 하고 사귀는 그런 성격이었어요. 그런 친구 몇명 앞에서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애들이 좋아하는 거에요. 아마 옆반 선생님 흉내거나 그랬겠죠. 그때 ‘아 나한테도 이런 재능이 있구나’하고 처음 의심하기 시작했죠.”

-배우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배우는 단거리 주자가 아닌 것 같아요. 몇 년 하고 말거라면 작품 할 때도 이번엔 이런 작품 했으니까 다음엔 이런 작품 해야지, 하고 (철저히 계산해서) 할 텐데, 배우라는 게 육신과 영혼이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하는 거니까, 기나긴 마라톤 선수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일희일비하지 말고 긴 인생을 사는 것처럼 생각하고 싶어요. 특히 요즘 들어서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는 거창한 얘기에 서툴렀다. 연기의 비결이나 인생의 포부 같은 걸 물으면 밥 먹으면 배부르다식의 답변을 반복했다. 그러나 자신이 맡은 배역에 대한 해석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정확하다. 영화 <박쥐> 시사회 뒤 기자간담회에서 성기 노출 장면이 왜 필요했는지에 대해 송강호가 답변한 적이 있었는데, 참석 기자들은 그 해석의 정확성에 깜짝 놀랐다. 그야말로 동물적인 직감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정확성. 화가로 치면 잭슨 폴록? 그러고보니 그의 아버지는 동양화가다. 그의 몸 속을 흐르는 예술가의 피는 아마도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닐까. 2월 4일 개봉.

글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