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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지성에서 영성으로` [연합]

이어령의 `지성에서 영성으로` [연합]

2010.03.08 19:2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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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 쓴 내면의 이야기입니다. 저의 약점, 슬픔을 고백한 일종의 일기장이라고 할까요. 그래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저술활동 50년을 기념한 우리 시대의 지성 이어령(76) 전 문화부장관이 개신교 신앙을 고백한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열림원)를 펴냈다.

문학평론에서 시작해 에세이, 소설, 드라마, 시나리오, 심지어 올림픽 개폐회식 대본까지 쓴 그가 신앙을 다룬 책을 내기는 처음이다.

책은 2007년 7월 온누리교회(담임목사 하용조) 등이 일본에서 개최한 문화선교집회 '러브소나타' 행사 때 하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은 지 약 3년 만에 펴낸 신앙고백서다. 이 전 장관은 당시 미국에서 검사로 활동하다 개신교 신앙을 갖게 된 딸 민아(50)씨에게 닥친 암과 실명 위기, 손자의 질병 등을 겪으면서 세례를 받았다고 전해진 바 있다.

이번 책은 세례를 받은 지 1년 만인 2008년 7월 냈던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구상한 2004년부터 세례를 받기까지의 내면을 담은 책이다. 개신교 신앙 이야기지만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지식이 담담한 문체 속에 녹아들어 가 비신앙인이나 이웃 종교인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이 전 장관은 8일 인터뷰에서 "종교는 개인적인 문제여서 책까지 쓸 생각은 아니었지만 믿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흔들릴 때 읽어보라고 권할 수 있고, 종교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비신자에게는 나의 내면을 추적한 글이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검사라는 직업을 가졌던, 지성을 자랑하던 딸이 어찌하여 기독교를 믿게 됐고,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됐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전혀 새로운 길을 가는 그 아이를 보면서 부녀지간이라도 몰랐던 면을 발견하게 됐고, 그것을 계기로 저도 변화를 겪은 과정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종교적인 책이라기보다는 저 내면의 지진과 그 지진으로 붕괴해버린 모습을 사진으로 찍듯이 언어로 찍은 것입니다."

글쓰는 지성 이어령으로서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와 함께 파격이라면 파격이다.

"사실 이 책은 시집과 한 세트입니다. 반기독교적인 글, 무신론적인 글을 쓰던 제가, 내면의 부끄러움 같은 것을 쓴 일기장 같은 것입니다. 거짓말하지 않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생각 그대로를 쓴 글입니다. 저의 약점, 저의 슬픔을 드러낸 작은 고백들이지요."

책 제목은 예사롭지 않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학자들의 저술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그런 저술들에 대한 논박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대표적인 지성이 직접 붙인 제목이라서 더욱 그렇다.

"저 스스로를 한 번도 '지성'이라고 불러본 적은 없습니다. 20대 때 냈던 '지성의 오솔길'에서 한번 언급했을 뿐이죠. 일흔 넘은 노인이 되어서 이런 책을 내려고 했던 건지… 어쨌거나 '지성인'이라고 불리면서 과학주의에 매몰된 분들에게 사고의 폭을 넓히는 데 반드시 영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 전 장관은 그래서 이 책을 젊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무신론자들이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자신의 일상에 닥친 도전에 대해 한편으로는 무신론적인 입장에서, 한편으로는 초월과 영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것. 또 "영성은 지성과의 피나는 결투 끝에 얻어지는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울러 '악마', '마귀' 운운하면서 조금도 의심을 하지 않는 광신적인 사람도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아직도 세속의 계단을 한발한발 올라가는 중입니다. 머뭇거리고 자신 없지만 필사적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돌아가실 때 '이 잔을 피하게 하소서'라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마더 테레사도 고뇌했습니다. 도그마에 갇혀 있거나, 기도했더니 성과가 있더라는 기복적인 신앙은 참다운 신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전 장관은 책의 각 페이지 하단에 계단을 올라가는 사람의 이미지를 넣었다. 그리고 각 장을 숫자로 나눠 자신의 영성이 아직 익어가는 진행형임을 표시했다.

그는 책 머리에 "책 제목은 대담하게 붙였지만 나는 아직도 지성과 영성의 문지방 위에 서 있다. 누구보다도 이 글들을 아직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위해 바치고자 한다"고 썼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