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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융합과학자였다”

아인슈타인은 융합과학자였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주최 제 1회 실험 세미나

2011년 06월 27일(월)

> 창의·인성 > 창의성의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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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서울대학교 신양인문학술정보관 301호에서는 전공, 나이, 직책에 관계없이 아무나 무슨 이야기든지 다 할 수 있는 세미나가 열려 큰 주목을 받았다. 주최측에 따르면 기존 세미나의 형식을 파괴한 새로운 방식의 실험세미나(Experimental Seminar)였다.

첫 발표자부터 파격적. 주제발표자가 아닌 3명의 토론자들이 먼저 세미나 주제에 대한 논평을 시작했다. 주제발표 후 질문 역시 색다르게 진행됐다. 가장 먼저 학부생이 발언을 한 후 대학원생, 교수 순으로 질문이 허용됐는데, 사회자는 전문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학부생들로 하여금 '용감한 질문'을 과감하게 해줄 것을 재차 주문했다.

남의 학문을 통해 해답을 찾다

그리고 마지막 '브레인 스토밍' 시간. 이 시간은 세미나 참석자 30여 명이 전공, 나이, 직책에 관계없이 아무나 무슨 이야기든지 다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회자는 이 세미나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참석자들이 모두 행복해하는 '즐거운 세미나'가 되도록 참석자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부여했다.

▲ 24일 서울대학교 신양인문학술정보관에서 열린 실험세미나(Experimental Seminar). '전문가의 불리함에 대해 재론함'이란 주제로 창의적 융합에 대한 열띤 토론이 있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최하고 서울대학교 과학기술과사회(STS) 미래사업단이 주관한 이날 세미나는 주제부터 매우 색달랐다. '전문가의 불리함에 대해 재론함'이란 주제로 창의적 융합연구에 있어 전문가가 과연 불리한가에 대해 탐색해보는 자리였다.

이와 관련 서울대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과학기술학)는 주제발표에서 다윈(Charles Darwin)의 예를 들었다. 그는 동물 사육사로부터 인위적인 선택을 통해 인위적인 적응(adaptation)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연에서도 이와 비슷한 '자연적인 선택'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연 안에 선택을 수행하는 사육사가 없다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맬서스(Thomas Malthus)의 인구론을 읽으면서 과포화 상태의 개체들 사이에서 먹이를 둘러싼 생존경쟁이 발생한다는 설명에 주목했다. 개체 사이, 종과 종 사이의 생존경쟁이 그가 찾던 자연선택의 기제였다.

이렇게 다윈은 생존경쟁을 통한 자연선택을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제시했다. 고민하고 있던 문제의 해답을 다른 분야의 학문에서 찾은 것이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사례는 더욱 극적이다. 그가 고등학생일 때 빛의 속도로 날아가면서 빛을 보기위해 가상의 시나리오를 사용하는 사고실험(思考實驗)을 한 적이 있었다. 이후 빛의 운동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인슈타인의 고민은 상대성 원리와 빛의 속도에 관한 몇 가지 실험결과 사이의 모순에 있었다.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가 성립되지 않는 모순적인 상황이 지속됐는데, 1904년에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생각을 버리기에 이른다. 그리고 1905년 그는 시간 문제를 혁명적으로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이 모순을 해결해냈다.

기계적 융합이 아니라 '열린 자세'

후에 사람들은 그의 혁명적인 시간 개념이 어디서 나왔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2000년 과학사학자인 피터 갤리슨(Peter Galison)은 아인슈타인의 시간개념이 그의 직업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부분적으로 그가 스위스 특허국 직원으로 일하면서 접했던 경험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보았다.

▲ 서울대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 

당시 스위스에서는 기차역마다 설치된 시계들을 동기화시키는 기술에 대해 관심이 높았다. 베른에 있는 스위스 특허국에서는 이 기술과 관련된 특허가 계속 출원되고 있었는데, 아인슈타인은 시계 동기화 기술로부터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얻었다는 것. 즉 정지한 사람과 직선으로 운동하는 사람이 관측하는 시간 사이의 관계를 두 사람이 지닌 시계들 사이의 관계로 바꾸어 생각했고, 그것으로부터 시간에 대한 새로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홍 교수는 또 전화를 발명한 벨(Alexander Graham Bell), 2극 진공관을 발명한 플레밍(John Ambrose Fleming), 증기기관을 발명한 와트(James Watt) 등의 융합 사례들을 제시했다. 이들이 융합의 관점을 취했을 때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관점을 취했을 때 더 분명해지는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복수전공이나 트리플전공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보다는 학생들과 예비 연구자들로 하여금 열린 자세로 문제를 대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 때 다른 분야를 탐색해보는 개방적인 자세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식융합 역시 매우 중요하지만 지식융합을 두 지식의 기계적 합성으로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식융합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에 골몰하다가 결국 이 분야에서 해결이 안 되는 문제를 다른 분야의 용어, 개념, 방법론, 이론, 담론, 실행, 기구, 실험 디자인이나 시스템을 빌어와 해결하는 것을 말하며, 이 방식을 통해 새로운 '잡종(hybrid)' 분야가 서서히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패러다임에 갇히면 안된다"는 경구는 창의적인 혁신이 그 패러다임 중심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주류가 아닌 주변부 엔지니어 집단이 혁명과 같은 기술 패러다임의 혁신적인 변화를 주도해왔다는 기술사학자 콘스탄트 2세의 말을 인용, 기존 패러다임에 다른 요소들을 접목하기 위해서는 기존 패러다임에서 멀어질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성에 기초한 융합이 필요하다

홍 교수는 혁신(innovation)과 관련, 발명과는 달리 혁신은 기존 방향과 다른 방향을 보고 기존 패러다임과의 연관이 아닌 새로운 연관을 본다는 점에서 창의적 활동이며, 창의적 발견·발명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고 말했다. 음극선관 실험 중 X선을 우연하게 발견한 뢴트겐의 사례를 들어 우연한 발견·발명 역시 혁신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이 또한 창의적 활동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 이날 세미나에는 과학기술, 경영, 심리, 철학, 교육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석해 창의적 융합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교환했다. 

한편 이날 토론과 질문 세션에서 한양대 철학과 이상옥 교수는 창의성을 발휘하는데 있어 전문가적인 능력이 매우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파천문학 연구에 있어 배경잡음과 진짜 신호를 구분해내는 전문성이 요구되듯이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에 있어 전문성이 매우 필요하지만 창의적 해석은 통상적 전문성을 넘어섬으로써만 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창의적인 결과가 탈경계적 융합연구에서 나오지만 융합연구을 하면 다 성공한다는 생각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국민대 경영학부 이은형 교수는 기업 내에서 어떤 창의적 인재가 필요한지에 대해 질문한 결과 '장기적 조직창의성에 영향을 미치는 역량'을 가장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비교하고 통합하는 능력,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 의사소통 능력, 유연성과 개방성, 분야를 넘나드는 융합능력 등을 말하는데, 개인적 창의력을 비교적 덜 중요시하는 한국 기업들의 상황을 고려해줄 것을 당부했다.

질문과 브레인 스토밍 세션에서 한 참석자는 융합연구에 있어 성공사례도 있지만 실패사례가 훨씬 더 많다며 그 실패사례에 대한 연구를 확대해줄 것을 요구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단기적 성과만을 주문하는 우리나라에서 과연 창의적인 환경조성이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강봉 편집위원 |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1.06.27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