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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한국 뮤지컬 객석을 채우다

외국인, 한국 뮤지컬 객석을 채우다

아시아권 관람객 늘어 차세대 한류로 부상… 일본·중국 진출도 줄이어

경향신문 | 박주연 기자 | 입력 2011.06.15 20:51 | 수정 2011.06.15 23:25

지난 12일 밤 서울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뮤지컬 < 지킬 앤 하이드 > 를 보고 나온 50대 일본인 여성 제이코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뮤지컬이 준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듯했다. 뮤지컬 관람을 위해 최근 3년 새 열여섯 차례나 한국을 방문했다는 그는 "올해만도 여러 번 < 지킬 앤 하이드 > 를 봤는데 볼수록 감동이 깊어진다"고 말했다. 40대 일본인 여성 마쓰카와 나오코는 "2006년 3월 < 지킬 앤 하이드 > 일본 공연을 보고 조승우씨의 팬이 된 후 1년에 서너 번씩 뮤지컬을 보러 한국에 오게 됐다"며 "일본 배우들과 달리 한국의 배우들은 주역부터 앙상블까지 풍부한 성량과 감정으로 대단한 가창력을 보여주고 있어 매혹적"이라고 감탄했다. 이 작품을 라이선스해 제작한 오디뮤지컬컴퍼니 관계자는 "지금까지 230회 공연에 2000명 정도의 외국인 관객이 관람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에서 최근 공연 중인 다른 뮤지컬들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난 14일 밤 일본 교토의 가부키 극장 미나미좌에서도 한국 뮤지컬을 향한 일본인 관객들의 열정은 쉽게 확인됐다. 창작 뮤지컬 < 궁 > 의 일본투어 공연 첫날인데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일본 관객은 물론, 대만 등 아시아 각지에서 찾아온 관객들로 1200석 전석이 매진됐다. 오사카에서 공연을 보러 왔다는 모리 히사에(31)는 "한국이 뮤지컬 대국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일본 뮤지컬과는 다른 큰 스케일과 박력감, 멋진 가창력을 가진 배우들의 실력에 놀랐다"고 말했다. < 궁 > 은 지난해 서울 초연 공연에서도 전체 관객의 60%가 일본인을 주축으로 한 아시아 관객이었다.

한국의 창작뮤지컬 < 궁 > 이 공연중인 일본 교토 미나미좌 극장에 14일 일본 각지에서 온 관객들이 몰려들었다. 뮤지컬 관람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도 늘고 있다.

드라마와 K팝에 이어 차세대 한류로 뮤지컬이 부상하고 있다. 아직은 아시아, 특히 일본인 관객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뮤지컬 관람을 목적으로 방한하는 외국인 수가 해마다 증가하는 등 한국 뮤지컬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인 관객이 많아 일본어 자막 서비스까지 하는 뮤지컬 < 잭더리퍼 > 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상원 M뮤지컬컴퍼니 제작부장은 " < 잭더리퍼 > 의 지난해 공연에는 일본관객을 주축으로 2000~3000명의 아시아 관객이 몰렸는데 이는 2009년 초연할 때보다 10배 이상 증가한 수치"라며 "올해는 전체 관객의 10% 정도를 외국인 관객이 점유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뮤지컬 공연장에서 외국인 관객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다. 이때만 해도 이들의 유일한 목적은 뮤지컬에 출연한 한류스타를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관람 경험을 통해 한국의 뮤지컬 자체에 빠져들면서 이들은 점차 한국에서 제작한 다른 뮤지컬들까지 섭렵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박용호 뮤지컬해븐 대표는 "요즘은 한국을 여행하는 일본인들에게 뮤지컬관람은 필수코스가 될 정도로 뮤지컬한류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터넷예매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구매가 많았던 뮤지컬은 < 락오브에이지 > (안재욱, 온유), < 홍길동 > (슈퍼주니어 예성, 성민), < 모차르트 > (김준수), < 잭더리퍼 > (안재욱) 등 한류스타가 출연한 작품이 많았지만, 한류스타가 없는 < 미스사이공 > < 쓰릴미 > < 시카고 > < 빌리엘리어트 > 등도 외국인 구매율이 높았다. 김선경 인터파크INT 과장은 "2010년 인터파크를 통해 뮤지컬 티켓을 구매한 외국인 관객은 2009년 대비 15% 증가했고 올해는 증가폭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뮤지컬 인기가 높아지면서 일본과 중국 공연 관계자들도 한국 뮤지컬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일본 프로듀서들의 발길이 잇따르고 있다.

창작뮤지컬 < 사랑은 비를 타고 > 는 일본 제작사가 정식으로 일본공연 판권을 사갔다. 일본의 대표적 연예기획사 호리프로는 한국에서 공연된 대본과 구조대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 쓰릴미 > 를 일본에서 오는 11월 공연하기 위해 한국 측과 공동 프로듀싱을 하기로 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 올슉업 > 의 일본공연 라이선스를 딴 일본 제작사도 한국이 각색하고 연출한 방식을 빌려 공연을 올렸다. 단순히 투어공연 형태의 한국 뮤지컬 유치를 넘어 한국의 제작 노하우를 구매하는 움직임인 것이다.

왼쪽부터 < 지킬 앤 하이드 > < 쓰릴미 > < 잭 더 리퍼 > .

한국보다 훨씬 앞선 1960년대부터 뮤지컬을 제작해 뮤지컬시장이 활성화된 일본에서 관객과 전문가들이 한국의 뮤지컬에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궁 > 등 최근 한국의 뮤지컬을 투어형태로 일본에 소개하고 있는 일본 최대 가부키 극단 쇼쓰쿠 프로듀서인 다에노 히시누마(53)는 한국의 뮤지컬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외국 뮤지컬의 한국 버전은 웨스트엔드 작품과 비교해도 퍼포먼스의 질이 높고 특히 배우들의 실력이 뛰어나다. 한국의 창작뮤지컬은 작품별로 수준차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좋은 작품에는 일본의 음악계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아름다운 멜로디, 정교한 각본이 있다."

한국 뮤지컬 제작자들의 대응도 빨라졌다. 내수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른 만큼 '아시아를 필두로 한 세계시장 진출만이 돌파구'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CJ E & M이 중국과 일본에서 거둔 성과다. CJ E & M은 지난 3월 중국의 전국 공연장 배급망과 네트워크를 가진 중국문화부 산하 기업인 CAEG, 중국 종합미디어 그룹 SMG와 함께 합자법인 '아주연창'을 설립하고 2000석 규모의 공연장 상하이대극원을 7월 개관한다. 이 극장에선 한국의 연출 등 스태프가 한국의 제작시스템으로 중국배우를 기용해 중국어로 공연하는 뮤지컬들이 올라간다. 이성훈 CJ E & M 제작부장은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는 소득수준이나 문화수준이 높은 지역으로 이미 상하이에는 < 오페라의 유령 > 등 해외 유명 작품의 투어공연이 잇따랐다"며 "이곳에서 한국이 아시아판권을 확보해 제작하는 뮤지컬과 한국의 창작뮤지컬들을 중국어로 올리는 현지화 전략을 통해 뮤지컬한류를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CJ E & M은 상하이대극장 개관작으로 7월 < 맘마미아 > 를 오픈런으로 공연한다. CJ E & M는 일본 쇼쓰쿠와도 다음달 양해각서(MOU)를 맺는다. 이를 통해 매년 최소 2편의 한국 뮤지컬을 일본에서 투어공연 형태로 올린다는 계획이다.

세계시장을 겨냥한 다각적 작업도 이어지고 있다. 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는 한·미 합작 뮤지컬 < 드림걸즈 > 를 만든 데 이어 지난 2월 호주 시드니에서 자신이 공동제작자로 참여한 뮤지컬 < 닥터 지바고 > 를 무대에 올려 호평을 받았다.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도 해외진출을 목표로 브로드웨이 스태프를 기용해 완성한 < 천국의 눈물 > 을 지난 2월 선보였다.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널 대표는 < 영웅 > 을 기획할 때부터 일본시장 진출을 염두에 뒀다.

신춘수 대표는 "시장규모는 크지만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 위주로 공연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다양성이 있고 배우들의 역량이 높아 아시아에서 뮤지컬로 선두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나라"라며 "문화부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소개하는 책자 등에 한국의 뮤지컬을 소개하는 등의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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