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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인들은 얕보지만 … 아시아 르네상스 오고 있다”

“서양인들은 얕보지만 … 아시아 르네상스 오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11.02.25

900만 부 팔린 『메가트렌드』 저자 존 나이스빗, 김영희 대기자와 대담

존 나이스빗(J. Naisbitt·82·사진)은 『메가트렌드』라는 책을 써서 세계적으로 900만 부가 팔린 아시아 전문가요 저술가다. 그는 2010년에만 중국을 열네 번 방문하고, 톈진(天津)대학에 나이스빗 연구소를 갖고 있는, 그의 표현으로 중국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다. 오스트리아의 출판전문가 도리스와 결혼한 그는 오스트리아와 중국에서 시간의 반반씩 생활한다. 강연하려 서울에 온 그를 시내 호텔의 식당에서 두 시간 동안 만났다. 조찬을 겸한 대담에서 부인 도리스 나이스빗도 대담에 참여하여 정담(鼎談)이 됐다.



“유럽인으로 미리 말할 게 있어요.” 기자가 질문을 시작하기 전에 도리스 나이스빗이 불쑥 말문을 열었다. “유럽은 남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가르치려 드는 사회랍니다. 그건 다른 지역, 특히 아시아인들을 얕보는 태도로 역겨워요.”

 김-고질적인 유럽 중심주의 말씀이군요.

 도리스-서양인들은 혼곤한 잠에 빠져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지 못한 거예요.

 김-(나이스빗 박사에게) 귀하는 1995년에 출판한 『메가트렌드 아시아』라는 책에서 서양이 아시아의 시각에서 세계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건 놀랍습니다. 그건 아시아를 후진국, 동양적 전제(專制), 반(反)자본주의적인 생산양식의 싱징으로만 내려다본 유럽 중심 역사기술(Historiography)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말입니다. 서양인들은 그들의 자본주의가 아시아인들을 흔들어 깨우기 전에는 아시아는 전통의 족쇄를 차고 침체했다고 썼어요. 막스 베버 같은 대학자도 아시아는 스스로의 힘으론 자본주의는 고사하고 경제도 제대로 꾸릴 능력이 없다는 편견을 전파했어요.

 나이스빗-서양이 세계적인 가치와 기준을 창조했다는 생각은 서양인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돼 떨치기 어려운 독단으로 굳어버렸어요.

 김-그들은 특별하다는 예외주의(Exceptionalism)인가요?

 나이스빗-맞아요. 안락한 일상에 만족한 그들은 국경 밖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요. 아시아에 대한 그들의 사색은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을 구술했던 1299년에 머물렀어요.

 김-귀하는 『메가트렌드 아시아』에서 아시아가 2000년까지는 세계를 지배하는 지역이 된다고 예언했는데 그런 아시아, 아시아의 르네상스 시대는 온 겁니까?

 나이스빗-천천히 오고 있어요.

 김-귀하는 아시아의 부상에 대한 화교들의 역할을 좀 과대평가한 것 같아요. 한국은 해외동포들의 큰 기여 없이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루지 않았습니까.

 나이스빗-그러나 필리핀의 화교 인구는 1% 정도지만 그 나라 경제의 70%를 장악하고 있어요. 말레이시아에는 2%의 화교들이 경제의 65%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화교자본은 중국과 아시아의 경제적 성장, 결과적으로 아시아 르네상스의 중추(Backbone)인 건 사실이죠.

 김-아시아에서 중국의 잠재적인 라이벌은 인도뿐인데 인도가 중국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설 날이 옵니까?

 나이스빗-인도 경제는 정보통신(IT) 한 분야에 집중됐다는 약점을 가졌어요. 외국인의 직접투자(FDI)를 보면 인도의 상대적인 약점은 더 극명하게 드러나요. 인도의 FDI 유치는 중국의 10분의 1에 불과해요.

 김-그래서 귀하는 언젠가 중국과 인도가 큰 레이스를 벌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한 겁니까?

 나이스빗-중국이 훨씬 앞섰어요. 중국에서 큰 성과를 내는 혁신(Innovation)을 인도는 착수도 하지 못했어요. 중국은 지금 교육제도를 개혁하고 있는데, 인도는 아직도 초대 총리 네루의 사회주의 철학을 청산하지 못해 의회는 사립학교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려고 합니다.

 김-장기적으로는 다원적인 민주주의를 하는 인도가 공산당 일당독재를 하는 중국을 추월하지 않을까요?

 나이스빗-중국도 지방에서부터 서서히 민주화되고 있어요. 우리는 중국의 여러 마을을 방문했는데 1200명 단위의 주민들이 대표를 직선하고 있었어요. 지금 직접선거를 하는 마을은 전국적으로 80만 개나 돼요. 인도가 세계 최대의 민주국가라고 하지만 아직도 세습적인 계급인 4성제도(Caste)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게 무슨 민주주의입니까. 중국에선 중앙에서도 지도부가 정책을 놓고 논쟁을 벌입니다. 논쟁으로 일단 정책이 결정되면 그 목표 달성을 위해 결속하는 겁니다. 의견이 통일되면 경제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가져와요.

 김-일본은 과거의 경제파워로 치부하십니까?

 나이스빗-내가 일본을 과거의 경제강국으로 치부한 건 오래전입니다. 기억하죠? 일본은 1990년대 초반 뉴욕 맨해튼의 록펠러 센터, 서해안의 페블비치 골프장, 할리우드의 영화사를 속속 사들여 일본이 미국을 몽땅 삼켜버린다고 시끄러웠지요. 그때 나는 일본은 쇠퇴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93년에 나온 내 책에 그렇게 썼어요. 일본의 문화적·경제적·정치적 침체는 심각해요.

 김-왜 그렇게 됐나요?

 나이스빗-정부가 물건 파는 일까지 챙기니까 그렇지. 내가 일본에서 주유소엘 갔는데 16명의 직원이 나와서 기름을 넣어줘요. 그래서 같이 간 미국인 친구가 일본에서 셀프 서비스 주유소를 열면 대박이 터지겠다고 생각했어요. 천만의 말씀. 일본 정부가 일정한 고용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셀프 서비스 주유소를 허가하지 않아요. 그게 일본 정부의 미시적인(Micro-managing) 경제정책입니다.

 김-귀하는 앞으로 4년 안에 중국의 중산층이 5000만 명 더 나올 것이라고 말했는데, 생활 걱정이 없는 그들이 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요구할 게 뻔하지 않습니까?

 나이스빗-이미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도리스-중국에는 지금의 정치제도가 맞아요. 서양의 근대 민주주의는 200년 전부터 발전했지만 중국이 개혁모델을 시작한 건 78년입니다. 경제발전이 우선이라 천천히 제도를 바꿔요. 중국과 인도를 비교해 봐요. 굶주린 아이가 있는데 아이에게 먹을 것 주는 게 먼저입니까 선거가 먼저입니까?

 김-언젠가는 정치도 민주화 쪽으로 개혁될 건데 정치의 민주화가 경제성장보다 얼마나 뒤처진 겁니까? 몇 십 년(Decades)?

 나이스빗-몇 십 년까지야.

 도리스-경제개혁도 정치개혁과 맞물렸다는 걸 알아야 해요. 중국에서 자유라고 하면 경제적인 자유, 기업하는 자유를 의미했는데 2000년을 기점으로 경제적인 자유가 정치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더 강한 욕구로 바뀌고 있어요.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김영희 대기자(왼쪽)와 미래학자 존 나이스빗이 대담하고 있다. 존 나이스빗의 거의 모든 저서에 공동 저자로 참여한 부인 도리스(오른쪽)도 함께 했다. [김형수 기자]


 나이스빗-중산층이 자유 수호세력인 것, 중산층이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는 것은 사실이에요. 중산층의 급속한 성장은 정치에 투영됩니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 이상으로 경제성장을 바라는 중산층의 이중성도 고려해야 해요.

 김-미국은 유일한 수퍼파워의 지위를 잃어갑니까?

 나이스빗-그래요. 그러나 중국이 G2가 된다고 흥분할 건 못 돼요.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으로 미국을 따라잡는 데는 20~25년 걸립니다. 세계경제가 통합되고 있어서 GDP의 중요성은 떨어지지만.

 김-유럽은 미국인들과 아시아인들을 위한 역사 테마 박물관으로 전락할 거라는 귀하의 예언은 가혹하게 들립니다.

 나이스빗-유럽 국가들은 상호 확실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어요. 아일랜드·그리스·포르투갈·스페인의 경제위기가 그걸 증명해요.

 김-문화혁명 때 천덕꾸러기였던 유교가 새삼 각광을 받고 있는데요?

 나이스빗-공산주의가 이데올로기의 기능을 잃어 공백이 생겼어요. 대체 이데올로기를 찾던 중국이 착안한 게 유교지요. 특히 젊은 층이 돈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배가 채워지니까 가슴과 머리를 채울 뭔가를 모색하게 된 거죠. 공산주의나 유물론이 중국인을 통합하는 이데올로기 구실을 못하는 틈새에 등장한 게 유교지요.

 김-노벨 평화상을 받은 류샤오보(劉曉波·유효파)를 투옥한 걸 어떻게 보십니까?

 도리스-정치적인 의견을 공표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감옥에 넣는 건 잘못이에요.

 나이스빗-중국 정부의 과잉반응이에요. 멍청한 짓이지.

 김-귀하는 보편적인 인권을 믿지 않는 것 같은데?

 나이스빗-인권에 대해 나는 실용적인 입장입니다. 가령 류샤오보의 행동이 효과를 내느냐, 적절하냐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고려하자는 거죠. 그는 언론의 자유만 행사한 게 아니라 인권에 관한 진정서에 1만 명의 서명을 받아 중국 정부가 그어놓은 금지선을 넘었어요. 악법이라도 그건 범법행위지요.

 김-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존 나이스빗과 메가트렌드=1929년 미국 솔트레이크 시티 출생. 미국 미래학자 겸 저술가다. 10여 년간의 연구와 준비 작업을 거쳐 82년 『메가트렌드』를 펴내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무려 2년간 올려놓는 기록을 세웠다.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900만 권 이상 팔렸다. 나이스빗은 이 책에서 ‘메가트렌드’를 현대 사회의 거대한 시대적 조류로 정의했다. 탈산업화·글로벌화·분권화·네트워크형 조직이 특징이다. 95년에는 『메가트렌드 아시아』를 펴냈다. 하버드·코넬·유타대에서 공부하고 IBM과 코닥에서 일했다. 케네디 대통령 보좌관과 린든 존슨 대통령의 특보 등으로도 활동했다.

김영희 대기자
정리=최지영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ctg=13&total_id=5108757
 

 

 

중국경제 콘서트(45) ' 중화DNA '

[조인스 블로그] 입력 2011-02-24

 앞 콘서트에서 연결됩니다. 이어서 감상하기시 바랍니다.
http://blog.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woodyhan&folder=1&list_id=12058204
http://blog.joinsmsn.com/media/folderListSlide.asp?uid=woodyhan&folder=1&list_id=12070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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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무작 발전했지요. 세계 2위 경제 대국이랍니다. 일본을 제쳤습니다.
중국인들은 그런 중국의 부상을 '새로운 강국의 탄생'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대신 '부흥(復興)'이라고 합니다. 중국이 '부흥의 길(復興之路)'을 걷고
있다는 겁니다. '부흥'이 뜻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옛 영광을 되 찾자는
것이지요. 서방 세력이 중국을 침탈하기 이전의 시기, 즉 중화 민족이 
 세계의 중심이었던 시기입니다.

 마틴 자크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에서 바로 이 같은 중국인들의
생각을 간파합니다. 중국인들의 머리 속에는 과거 전통을 현재에 적용하는
'역사 현시적 사고'가 뚜렷하다는 것이지요. 그는 '중국인들은 과거를 마치
 현재의 일처럼 해석하고, 문제 해석의 방법을 항상 역사에서 찾는다'고
했습니다.(아래 사진은 2009년 중국건국 60주년을 기념해 베이징
 국가대극원(國家大劇院)에서 에서 열린 대형 뮤지컬 '復興之路'의 한 장면)

부흥지로.jpg

 그는 중국의 부상이 세계에 가져올 변화를 얘기하며 '조공(Tribute)
시스템'이라는 말을 꺼냅니다. 중국의 영향력이 시작되는 곳은 동아시아가
 될 것이고, 핵심 키워드는 바로 '조공'이라는 거지요.

 "국민국가의 옷을 입은 문명국가 중국은 내재된 본성과 정체성을 점점 더
드러낼 것이다. 중국이 동아시의 경제의 중심으로 새롭게 부상한다면,
과거 조공 제도가 현대적인 형태로 부활,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낼 것이다."

 마틴 자크는 '중국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아시아의 이웃 나라들을 주변국
이라고 부르고 있고, 자신들이 중심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조공이 뭐간데?

 봉건 왕조시대 중국인들이 뜻하는 '세계'는 오늘 우리가 말하는
글로벌(Global)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들이 생각한 세계는 중국의 주변,
즉 아시아였습니다. 천자(天子)가 버티고 있는 중원 땅은 그 세계의 중심
이었지요. 자신들이 온 천하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문화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바로 중화(中華)입니다.

 그 주변의 나라와 민족은 오랑케였을 뿐입니다. 남쪽 오랑케는
남만(南蠻)이라고 했고, 북쪽은 북적(北狄)이었습니다. 동쪽 오랑케들은
동이(東夷)라고 불렀고, 서쪽에는 서융(西戎)이 있었지요. 그들의 시각에
한국은 동쪽 오랑케일 뿐입니다. 오랑케가 말을 듣지 않으면 중국은 창을
씁니다. '버릇을 고쳐준다'며 군대를 파견하지요.그러고는 문명을 전수하기
 위해 정벌단을 보냈을 뿐이랍니다. 고구려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오랑케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으면 '아이구 내 새끼'하면서
다독입니다. 물론 분명한 요구 조건이 있지요. 중국의 천자(天子)를
인정하라는 겁니다. '중국은 천자(황제)나라, 너희는 그 천자의 명을 받은
왕(王) 또는 군(君)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내 새끼'대접을
 받습니다. 불평등한 관계입니다.

 그렇게 등장한 게 '조공 시스템'입니다. 중국의 문화적 위계를 인정하며
조공을 바치면 정치적인 독립을 보장해주는 겁니다. 여기에 책봉을 더하게
되면 완벽한 '조공-책봉'이 되는 것이지요. 춘추시대이후 중국인들의 사고에
박힌 정치 패러다임이지요. 이 관계가 형성되면 주변국은 조공단을 보냅니다. 공물을 바치러 가는 것이지요. 그 때 중심국 중국은 받은 것보다 더 두둑히 줘 조공단을 돌려보냅니다. 천자의 큰 은혜를
배푸려는 것이지요. 그게 조공무역입니다. 민간무역의 원할하지 않던 시기의
중요한 무역 패턴이었지요.

 거꾸로도 있습니다. 드믄 경우였지만 주변 오랑케가 강하다 싶으면 조공
시스템은 거꾸로 작용합니다. 오랑케 나라에 물건을 줘 보내면서 '제말
문제만 일으키지 말아달라'고 빕니다. 어쨌든 그것도 조공시스템이었습니다.

 자딘 마크는 중국이 성장할 수록 조공시스템 복구에 대한 욕구가 커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 그들에게는 중화DNA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족은 다른 민족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거나 존중하지 않으며 자신의
 문화가 우월하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흡수, 동화, 정착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들은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야 말로 중국이 있어야할 자리라고 믿고 있으며,
 지난 2세기 역사는 정상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마틴 자크는 이같은 중국의 움직임에 우려를 표합니다.

 "중국이 세계 강국으로 부상하는 것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바로 오랜 세월
 중국인의 의식속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우월의식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이
 중국의 행동과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그 심지가
매우 단단하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내달리고 있는 중국, 그 과정에서 주변
국과의 충돌은 불가피 해보입니다.

 그들의 중화DNA는 오늘 현실에 어떻게 표출되고 있을까요?

 다음 칼럼에 계속됩니다.

 한우덕
 Woody Han

중앙일보 중국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