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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CEO

[CEO & CEO] 변대규 휴맥스 사장…1세대 벤처 1조매출 첫 돌파

[CEO & CEO] 변대규 휴맥스 사장…1세대 벤처 1조매출 첫 돌파
시장이 원하는 제품…그게 정답이더군요
한국경제는 `늙은 경제` 구조적으로 변화 없어
법ㆍ제도나 산업생태계대기업이 독과점 누려
혁신적 기업 찾기 힘든 일본 전철 밟을까 걱정
기사입력 2011.02.06 17:11:56 | 최종수정 2011.02.06 20:13:08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지난 1일 오전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휴맥스 본사 아트홀.

600명 남짓한 휴맥스 본사 임직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창립 22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작년 말 처음으로 연매출 1조원을 돌파하고 맞은 창립기념일 행사라서 분위기가 고조돼 있었다. 이 자리에서 휴맥스는 새로운 미션, 핵심가치, 비전 등을 선포했다.

새 미션은 `현재를 뛰어넘는 디지털 기술을 창조하여 세계시장을 기반으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다`로 정했다.

2015년에는 매출 2조3000억원 달성, 글로벌 TV셋톱박스 시장에서 톱3 진입이라는 새로운 목표도 발표했다. 기자는 이 행사 직후 변대규 휴맥스 사장에게 소감을 물었다.

"그동안 우리 모두가 열심히 해왔다는 걸 새삼 느꼈다. 휴맥스 직원들은 함께 1조원 매출을 꿈꿨고 오랫동안 함께 일해왔다. (이 같은 성공은)좋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은 덕분이다."

휴맥스 시작은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초 어느 밤 서울 신림동 289번 버스종점에 위치한 한 포장마차에서 서울공대 제어계측공학과 대학원생들이 소주잔을 기울였다. 변대규 사장과 동기ㆍ후배들은 함께 창업하자고 의기투합했다.

그해 2월 서울대 부근에 조그만 사무실을 내고 `주식회사 건인(建人)시스템`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사람을 세우는 기업`이란 의미에서다. 지금 회사명 역시 `휴먼(Human)을 맥시마이즈(Maximizeㆍ극대화)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변 사장은 창업자금을 구하러 기술신용보증기금을 찾아갔다. 5000만원짜리 보증서를 신청하자 집 등기부등본을 떼어 오라고 했다. 본인은 하숙을 하고 있다고 말하자 창구 직원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하숙생이 보증을 받으러 온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창업 이후 5년 동안은 공장자동화 관련 용역사업, 비디오 신호처리보드 등에 치중했다. 뚜렷한 목표 없이 시장이 원하는 제품보다는 자사가 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에 몰두했다.

이런저런 시도 끝에 `PC용 영상처리보드`라는 제품을 개발했다.

제품 개발 후 내보낸 광고에 여러 용도를 나열하고 마지막에 `영상 위에 자막을 넣을 수 있다`는 문구를 넣었다.

엔지니어로서는 이 기능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고객 반응은 전혀 뜻밖이었다.

문의전화는 마지막 문구에 집중됐다. 노래방 붐이 일면서 이 제품은 노래방 영상에 가사를 띄우는 데 사용됐다. 변 사장은 무릎을 쳤다.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계기가 됐다.

휴맥스는 창업 당시부터 카메라에서 들어오는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바꾸는 기술을 갖고 있었는데 1993년 처음으로 사업상 의미 있는 의사결정을 내렸다. 디지털가전을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결정한 것이다.

변 사장은 아날로그 기술에 기반을 둔 가전산업이 디지털기술과 결합되면서 업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시작한 사업이 셋톱박스 사업의 기초가 된 가요 반주기 사업이었다. 95년부터 다른 사업을 모두 접고 셋톱박스 사업에만 올인했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사업이 되는 듯했으나 위기가 한꺼번에 찾아왔다. 유럽 대형 방송사업자에게 납품하려고 뛰고 있었는데 1997년 초 해당 방송사가 또 다른 유럽 대형 업체에 합병됐다. 갑자기 시장이 사라진 것이다. 이탈리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수출했던 제품에 심각한 품질 문제가 터졌다. 1997년 상반기 중에는 제품을 단 한 개도 수출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1997년 말 해태전자가 도산했다.

당시 해태전자에 CD 가라오케를 납품하던 휴맥스도 덩달아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대기업이어서 담보를 잡지 않고 거래했는데 24억원을 회수할 길이 막힌 것이다. 당시 변 사장과 함께 분당중앙공원을 걷고 있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쯤에서 사업을 접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두 달 후 나온 신제품이 구세주 노릇을 했다. 위기를 넘기자 곧바로 성장을 시작했다.

매출액이 1997년 142억원에서 2001년 3151억원으로 늘었다. 그러나 매출액이 5000억원을 넘어가면서 회사 내부 효율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그러자 변 사장은 내부를 혁신하고 시스템적으로 일을 처리하도록 운영 측면에서 효율을 높였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지난해 휴맥스 매출은 1조52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지금은 전 세계 15개국에 법인과 지사를, 7개국에 외주생산업체(EMS)를 두고 있다. 폴란드에는 자체 생산공장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셋톱박스를 전 세계 80개국에 수출 중이다. 필립스를 통해 북한에도 셋톱박스를 판매하고 있으며 이라크에도 휴맥스 셋톱박스가 수출돼 후세인 궁에도 설치돼 있을 정도다. 변 사장은 산전수전을 겪은 벤처 1세대로서 상생협력이나 한국 산업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다.

대기업 실무자들도 실적을 올려야 하니까 중소기업을 혹독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그런 만큼 대기업 경영자들이 나서서 중소기업과 상생하는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는 "젊은 경제라는 건 큰 기업이 망할 수도, 작은 기업이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구조적으로 변화가 없는 늙은 경제다. 과연 이게 건강한 경제 모습인지 안타깝다"고 호소했다.

자칫하면 일본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내놓았다.

미국에는 구글이나 애플 같은 창의적인 기업이 있는데 일본에서는 혁신적인 기업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은 법이나 제도, 산업생태계 측면에서 독과점 상태가 심각해 일본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삼성이나 포스코처럼 (선두주자를)따라 하는 걸 잘하는 기업들이 있다. 그런데 향후에는 미국식 혁신 기업이 나올 수 있을까, 아니면 일본처럼 혁신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질까?"

휴맥스 성공 요인

지난 40년간 한국에서 창업한 기업 중 살아남아서 매출 1조원을 돌파한 곳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휴맥스를 비롯해 NHN, 웅진, 이랜드 정도다. 대부분의 벤처기업이 매출 1조원이 되기 전에 도산했거나 어려움에 처했다.

그렇다면 휴맥스가 1조원 클럽에 가입하며 성공을 이룬 요인은 뭘까. 크게 4가지를 꼽을 수 있다.

우선 사업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다는 점이다. 이 회사는 축적된 자본이 없었으며 규모도 작았지만 글로벌 시장을 기반으로 회사를 키우겠다고 결정했다. 국내에서 돈을 번 후 그 돈으로 국외시장 개척에 나선 대부분의 한국 기업과는 출발부터 달랐다. 물론 여기에는 `술 사주고 밥 사주고 돈 주고` 영업을 하기 싫어하는 변대규 사장의 태도나 철학이 한몫했다. 휴맥스는 현지에 나가 법인과 생산공장을 짓고 철저한 현지 위주로 사업을 했다.

두 번째 성공 요인은 한 우물 파기다. 다른 기업들과 달리 휴맥스는 `셋톱박스`라는 한 품목에 전력투구했다.

국내 많은 중소기업이 특정 시장에 진출해 취급 품목이나 사업 분야를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하지만, 휴맥스는 한 품목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생존 확률을 높여줄 것으로 판단했다. 제품이나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가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마켓을 확대하는 결정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셋톱박스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정용 CD 반주기 사업 등 기존 사업을 접고 회사의 모든 역량을 셋톱박스에만 집중했다.

아울러 많은 중소기업이 주문자 상표를 부착해서 생산하는 OEM 방식을 택했지만 휴맥스는 `HUMAX`라는 독자적인 브랜드를 고집스럽게 사용했다.

세 번째 성공 요인은 기술 변혁기라는 기회를 제대로 포착했다는 점이다. 휴맥스는 사업 초기 디지털 기술이 아날로그 가전과 결합되면서 기존 산업이 크게 변화할 것으로 내다봤는데 이것이 적중했다.

네 번째 성공 요인은 좋은 인재를 계속 유지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회사가 몇 차례 위기에 처했을 때도 대부분의 핵심 인력이 퇴사하지 않고 남았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지식과 기술, 경험이 축적됐고 비슷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게 됐으며 새로운 사업 기회를 넓히는 원동력이 됐다.

■ He is…

△1960년 경남 거창 출생 △1983년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졸업 △1985년 서울대 대학원 석사 △1989년 서울대 박사 △1989년 건인시스템(현재 휴맥스) 설립 △1998년~현재 휴맥스로 사명 변경 후 대표이사 사장 △1999~2005년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2001년 벤처리더스클럽 회장 △2001~2008년 SK텔레콤 사외이사 △2008~2010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 △2006년~현재 KAIST 사외이사

[김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