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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지식

아이폰 창조 지혜 禪房에서 나왔다

아이폰 창조 지혜 禪房에서 나왔다

애플의 다빈치 ‘스티브 잡스’ 다시보기

이코노믹리뷰 | 박영환 | 입력 2011.01.17 14:39 |

야인 시절 할리우드서 성장의 법칙 벤치마킹

"애플이 기술과 인문학 사이의 교차로에 서 있다." 2010년, 아이패드를 처음 소개하던 날 스티브 잡스가 던진 말이다. 이 회사는 아이팟, 아이폰 등 연타석 홈런을 치며 글로벌 정보통신 기업 중 시가총액 기준 두 번째 기업으로 성장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약진의 일등공신이다.
그는 활력을 상실한 채 낡아가는 비즈니스 모델을 황금으로 바꾸는 미다스의 손이다. 소니 워크맨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아이팟은 아이폰으로 바뀌고, 아이폰은 아이패드로 날아올랐다. 하얀 백지에 난을 치는 동양화가를 떠올리게 하는 스티브 잡스 경쟁력의 비밀을 분석했다. < 편집자 주 >

지난 1985년, 스티브 잡스 최고경영자는 자신이 창업한 애플컴퓨터(현 애플)에서 무기력하게 쫓겨났다. 그가 장인 정신을 발휘해 만든 매킨토시 컴퓨터는 소수 마니아들의 제품으로 전락했다. IBM 호환 컴퓨터는 애플 컴퓨터를 변방으로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 위기를 타개할 뚜렷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존 스컬리가 주도하는 반란군에 축출된 그가 당시 선택한 것은 '유럽 여행.' 집에서 두문불출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친구인 '마이크 머레이(Mike Murray)'는 그가 권총 자살을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스티브 잡스가 도착한 첫 기착지는 프랑스 파리 시내. 자전거 한 대와 두툼한 침낭이 그를 달래줄 유일한 벗이었다. 그는 유럽을 떠돌며 노숙 생활을 한다. 이 스타 경영자는 애플과의 불화가 자신을 만들었다고 훗날 회고한다. 그는 하드웨어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난다.

유럽에서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승부수를 던진다.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가 재정난으로 루카스 필름을 매각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그는 이 회사를 인수해 이름을 픽사로 바꾼다. 꿈 공장으로 불리던 할리우드는 이 경영자의 시야를 넓혀준 일등 공신이었다.

그는 할리우드 제작사, 메이저 음반사들과 교유하며 훗날 아이팟 성공시대를 준비한다. 또 기술 지상주의에 빠져 처음부터 끝까지 사내에서 모든 것을 만들던 과거를 되돌아본다.

그가 애플에 컴백한 뒤 발표한 제품이 바로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이었다. 아이팟은 아이튠스와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드웨어이자, 소프트웨어 '플랫폼'이었다. 그는 픽사에 근무하면서, 이 원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토이스토리는 프로덕션, 작가, 금융가 등이 모여드는 실크로드였다.

'아이팟'에서 청취할 수 있는 음악파일 음원의 주요 공급자들이 바로 5대 메이저 음반사였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을 플랫폼으로 이해했다. 소프트웨어, 서비스의 교차로다.

스티브 잡스도 한때 기술 지상주의에 빠져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해결하려 했다. 아집에 빠져 소비자를 바라보지 못한 소니의 기술 장인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는 달라졌다. 기술개발을 외부에 맡기는 네트워크 방식 활용에 눈을 떴다.

하드웨어 몰입한 아집을 버리다

"우리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작업을 함께 합니다. 단순히 카메라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상을 함께 편집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이것은 하나의 완결된 솔루션에 해당합니다." 그가 애플에 복귀해 야심차게 선보인 첫 작품이 바로 아이팟이었다.

하드웨어(아이팟),소프트웨어(아이튠스)를 성공적으로 결합했다. 양덕준 레인콤 사장이 주도하던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의 주도권은 순식간에 스티브 잡스의 손으로 넘어갔다. 하드웨어 성능과 디자인으로 승부하던 양 사장에게 스티브 잡스는 감당하기 힘든 적수였다.

스티브 잡스는 할리우드에서 '플랫폼'에 눈을 뜬다. 5대 메이저 음반사를 모두 아이튠스에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할리우드 낭인 생활이 한몫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는 이러한 성공 방정식을 인접 분야로 꾸준히 확대한다. 애플은 패션 분야의 매장 관리 방법을 애플스토어에 접목했다. 아이팟의 편리한 인터페이스도 이 회사 부사장이 자신이 쓰고 있는 기기에서 영감을 얻어 아이팟에 접목한 것.

고집 세고 타협할 줄 모르던 기술자를 떠올리게 하던 그는 스스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다. 스티브 잡스가 픽사를 인수한 뒤 보고 배운 네트워킹의 원리를 인접 분야로 활발히 적용한 결과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젊은 시절 선불교의 가르침에 눈을 떴다.

"직관을 따르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당신의 가슴, 그리고 직관이야말로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젊은 시절 그를 촬영한 사진에 등장하는 방은 단출하다. 마치 동안거에 들어간 선사의 선방을 떠올리게 한다. 방 안에는 책을 한 권도 찾아 볼 수 없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도 눈을 감고 있다. 대한민국 사찰에 있는 선방과 차이점은 음악이 흐른다는 것이다.

망상을 털고 반야(般若)에 눈을 뜨다

"포커스 그룹을 통해 제품을 디자인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영자가 미국의 주간지인 < 비즈니스위크 > 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 회사 제품 뒷면의 매끈한 '경면'은 이러한 철학을 잘 보여주는 실례다.

애플의 제품은 노트북에서 아이팟, 아이폰까지, 제품 뒷면이 '경면' 처리돼 있는 것이 특징. 소비자들을 상대로 서면이나 전화 조사를 통해 얻은 결과를 반영한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은 경면에 '지문이 잘 묻는다' '잘 더러워진다' 등 불평을 쏟아내었다.

아이폰, 아이팟 제품의 경면이 시사하는 바는 리더의 통찰력이다. 사용자의 바람이나 원망에 아무리 귀를 기울인다고 해도 경면 처리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애플이 소비자 조사를 좀처럼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험 영역에서 벗어난 통찰을 일컫는 불교 용어가 바로 반야다. 스티브 잡스는 바로 이 반야에 눈을 뜬 경영자다. 이 제품의 뒷면을 반짝반짝 광을 내는 도요이 화학연구소는 니가타현에 있는 일본 회사.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을 만들 때도 시장 조사는 따로 하지 않았다. 자신이 음악을 즐기는 장면을 떠올리며 이 MP3 플레이어를 기획했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의 콘셉트, 형상을 스스로 정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당시만 해도 폐쇄적인 태도를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했다. 아이팟 제품은 매킨토시와는 완벽하게 호환이 됐으나, IBM 호환 컴퓨터와는 궁합이 잘 맞지 않았던 것. 애플이 음악 산업을 바꿀 수 있던 것은 바로 이러한 태도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3세대 아이팟부터 윈도와 호환성을 대폭 높였다. 지난 1997년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우선 순위를 둔 일이 구성원들을 경험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작업이었다.

심플 코드로 디자인·브랜드를 잡다

"애플의 제품은 로고를 가리고 봐도 제작사를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뚜렷합니다. 디자인의 정체성이 경쟁사에 비해 명확하다는 얘긴데요. 삼성전자의 제품에서는 이러한 특징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삼성전자 전직 연구원인 안광호(40) 전자 부품연구원 팀장의 평가다.

애플 디자인의 철학은 '단순함'과 '디테일'이다. 불필요한 부분이 하나도 없는 단순한 디자인이 이 회사이 지향점이다. 이 회사의 제품은 잘 그린 수묵화 한 점을 보는 듯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이 제품의 로고를 가리고 봐도 제품 제작사를 단박에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디자인을 향한 집착은 대단하다. 그의 이러한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팟이나 아이폰4 제품의 매끈한 뒷면. 애플은 아이팟의 경면 부위를 일일이 장인의 손을 거쳐 연마했다.

"디자인은 얼마나 잘 기능하는지의 문제다. 어떻게 보이는가에 관한 것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밝히는 디자인론은 명쾌하다. 그는 이러한 전략으로 애플을 전자제품의 루이 뷔통이나, 자동차 업계의 벤츠, 혹은 재규어에 필적하는 브랜드에 올려놓았다.

"다른 브랜드들은 해마다, 분기마다 디자인을 바꾸지만 매킨토시는 바뀌지 않는 디자인으로 금속처럼 가치가 오래 간다는 인상을 소비자에게 심어주었다. 스티브 잡스가 복귀하기 전부터 해오던 전략이다." 지상현 한성대 디자인 콘텐츠 학부 교수는 스티브 잡스의 디자인 전략을 이같이 설명한다.

아이팟은 경쟁사 제품에 비해 기능이 특별히 뛰어나지 않은데다 가격은 더 비쌌지만, MP3 플레이어 시장을 장악했다. 이 제품이 성공을 거둔 배경으로는 '디자인'과 '패션' 요소를 꼽을 수 있다.

아이팟은 목걸이나 반지 같은 소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었다. 애플 CEO의 화려한 브랜드 '확장'의 노하우는 아이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이폰이 명품 핸드백이나, 옷에 비유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김중태 IT문화원 연구원장은 "일본에서는 패션 잡지들이 아이폰을 조명했다"며 "여성들은 아이폰을 패션 소품으로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애니메이션 회사에 근무하면서,
유기적 결합을 통한 할리우드 흥행 성공의 법칙
몸으로 부대끼며 체득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조합해
새로운 제품을 창조하는 저력을 보였다.

페덱스 방식으로 정보 소통 효율성 높여

스티브 잡스는 회사를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 방식으로 운영한다. 애플 임직원 100여명과 소통하며 이들의 아이디어를 구하고, 지시사항을 하달한다. 직급이 낮은 엔지니어도 직접 연결한다. 특송업체인 페덱스의 물류 시스템에서 힌트를 얻은 의사소통 방식이다.

이 네트워크는 쌍방향 정보가 흐르는 애플 임직원들의 광장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마케팅 사관학교로 불리는 프록터앤갬블(P & G)은 이러한 개방형 모델을 세계 각지로 넓힌 'C & D(Connect & Development)' 모델로 히트 작품 '프링글스'를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글로벌 기업들이 세계와 교유하는 실크로드'이다. 회사 가치사슬을 외부에 개방해 사고의 폭을 넓히고 사업 기회를 포착하기 위한 기회의 공간이다. 아웃소싱은 기본이며, 아이디어도 빌린다. 하지만 의사결정의 주인공은 최고경영자이다. 옥석을 구분하는 것도 CEO이다.

스티브 잡스의 일방적인 지시로 개발된 제품 중에는 애플 공전의 히트작이 많다. 이 고집 센 최고경영자는 정보통신업계의 철인(鐵人)으로, 수많은 민의 중에 옥석을 가리는 책임을 담당하고 있다. 때로는 처음부터 자신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킨다. 아이맥이 대표적인 실례다.

스티브 잡스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전화번호부 크기의 컴퓨터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고, 엔지니어들은 그의 지시에 38가지 반대 사유를 조목조목 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이 제품은 시장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스티브 잡스의 통찰력이 빛을 발한 대목이다.

그가 픽사에서 돌아오기 전만 해도 애플은 위원회에서 제품 개발을 결정했다. 임직원들이 모든 사안을 서로 합의해서 진행했고, 모두가 결정한 것을 따랐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다수결 방식의 의사결정 시스템은 때로 아이디어를 사장시켰다.

스티브 잡스는 이 모든 것을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그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 플랫폼을 꿰뚫고 있는 다빈치형 최고경영자인 반면, 임직원들은 대개 이 중 한 가지를 파고든 전문가들이었다. 주요 현안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야는 잡스에 비해 좁았다.

"소프트웨어에 정말 진지하다면 독자적인 하드웨어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바일 기기에 처음으로 소프트웨어라는 돌파구를 도입한 것입니다."(맥월드 2007 스티브 잡스 키노트)

스티브 잡스 장점 Best 5

■하드웨어 지상주의에서 벗어나다
■반야(般若)의 세계에 눈을 뜨다
■디자인·브랜드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소프트웨어, 서비스 시너지를 파악
■페덱스 방식 정보소통 효율성 높여

스티브 잡스의 단점 Worst 5

■독선적인 성격으로 주변과 불화
■韓日 전자 경쟁사들과 '양면전' 자초
■'췌장암' 극복했지만 건강 악화
■회사 주가에 주는 영향 절대적
■경쟁우위 통찰력 영원하지 않아

박영환 기자 yungh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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