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켓 생태계/지식

과학자는 상아탑에 갇힌 학자가 아니다 과학의 ‘잊혀진 전통’을 찾아서 2011년 01월 12일(수)

 

과학자는 상아탑에 갇힌 학자가 아니다 과학의 ‘잊혀진 전통’을 찾아서 2011년 01월 12일(수)

사이언스타임즈는 새 기획시리즈, '과학지식인 열전'을 게재한다. '과학지식인 열전'은 19~20세기를 살았던 과학지식인들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과학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자 하는 기획이다. 각 분과를 넘나들었던 진정한 통섭인으로서의 과학자, 철학에 영향을 미쳤던 과학자, 사회운동을 했던 과학자 등 '상아탑에 갇힌 학자'가 아닌, 지식인으로서의 과학자의 모습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편집자 註]

과학지식인 열전 “홉스, 로크, 버클리, 라이프니츠,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칸트,

제퍼슨, 프랭클린. 지성사의 위대했던 시기는 당대의 세계상에 대한 과학적 이해

없이는 절대로 교양인이 될 수 없다고 여겼던 지식인들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이러한 전통은 깨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사와 상호작용하는 방향으로

과학을 다시 복귀시키는 것, 과학이 지식인들의 전통에서 벗어나는 대신 그 궤도

속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늘날의 지식인들에게 남겨진

가장 중요한 책무가 될 것이다.1

현대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은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전 세계의 국가

지도자들 중 그 누구도 이러한 상식을 거부하지 않는다. 과학은 그 탄생의

과정에서부터 특수성을 인정받으며 지성사(intellectual history) 속에 등장했다.

기술의 발전은 반드시 과학에 종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과 기술이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

이 엄청난 과학과 기술의 상호작용이 인류에 미친 영향은 분명 대단한 것이었다.

때로는 인류의 생활에 도움을 주었고, 때로는 전쟁무기를 개발하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과학과 연관된 기술은 양날의 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과학과 기술의 주체로 인식되지 못하고,

단순한 운반체로만 인식되었다. 결국 때때로 그들은 미친 과학자 혹은 악마와

같은 이미지로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게 된다.

▲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과학과 기술의 주체로 인식되지 못하고, 단순한 운반체로만 인식되었다. 결국 때때로 그들은 미친 과학자 혹은 악마와 같은 이미지로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게 된다. 그림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미친 과학자' 


이처럼 과학과 기술을 그 주체인 과학자와 기술자들로부터 분리시켜 사고하는

방식은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것이다. 과학자라는 직업이 제도화되고, 과학자들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던 19세기에,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발견한 이론이나 그

이론으로부터 개발된 기술과 분리되어 생각될 수 없었다. 그 당시의 과학자들은

사회 속에서 당당한 발언권을 지닌, 지식인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이 국가라는 틀 속에서 거대화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모습은

잊혀지기 시작했다. 과학과 기술은 도구로서 인식되기 시작했고,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사회 속에서 발언하고 지식인들과 동등하게 대화하던 전통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보통 과학이 극도로 전문화되면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과학과 기술이 국가경쟁력의 기준 속에서만

평가될 때, 그 주체로서의 과학자와 기술자의 역사 속 생생한 모습이 잊혀지게

된다.

지식인으로서의 과학자는 어디에 있을까

이러한 현상은 과학과 기술을 도구 이상으로 인식할만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전문가로

인식되지만, 그들의 전문분야를 제외한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발언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지식인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범주에서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암묵적으로 제외되어 있다.

이러한 인식에는 대중의 편견도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대중은 지식인으로 당당하게

 활동했던 과학의 전통을 마주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의 정치적 민주화 과정에서 역할을 다한 과학자를 찾아볼 수 없다.

우리에게 과학자와 기술자란 기껏해야 전문가, 사회와는 담을 쌓고 사는 상아탑

속의 학자로만 인식될 뿐이다.

하지만 과학의 역사는 그러한 편견을 부정한다. 과학자들은 지식인으로 등장했고,

지식인으로 살았고, 과학이 탄생했던 유럽이라는 시공간 속에서 그러한 인식은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 그것이 ‘문화로서의 과학’이라는 전통이다.

과학과 기술이 거대화되었지만, 그러한 문화가 정착된 서구사회에서는 여전히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당당한 지식인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한 국가의 ‘과학문화’를 말하고자 한다면, ‘과학의 대중화’나

‘대중의 과학화’ 이전에 과학이 탄생하던 당시 그대로의 모습이 존재하는지의

여부, 즉 ‘과학의 과학화’를 말할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에겐 아직 그러한 모습이 존재하지 않다. 한국사회는 이제 막 그런 모습들을

찾아내려 하고 있다.

▲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다윈도 아인슈타인도 아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역할은 사회 속에서 다양하게 드러날 수 있다. 

지식인으로서의 과학자, 사회와 상호작용하던 과학자들의 모습, 우리는 과학을 수입하면서 그 측면을 간과했다. 그러한 측면이 충족되어야만, 기초과학의 증진을 통한 노벨상 수상도, 과학을 함께 호흡하는 대중의 모습도 가능하게 된다. 우리에겐 ‘잊혀진 전통’이 있다. 물론 세계적으로 ‘문화로서의 과학’, ‘지식인으로서의 과학자’라는 모습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한번 마주한 일도 없었다. 과학자들은 그 ‘잊혀진 전통’을 마주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과학은 정치의 도구가 되지 않고, 과학자들은 스스로의 도덕적 기준을 마련할 수 있으며, 사회 속에서 당당한 지식인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 그것이 한국의 과학자들에게 ‘잊혀진 전통’의 부활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 연재는 대중, 인문학자, 정치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 속의

주인으로, 그 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갔던 과학자들의 모습을 다시금 되살리는 것은

 오로지 과학자들을 향해 있다. 한국의 과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많은 공헌을 해왔다. 하지만 그들에겐 언제나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불만이 내재해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잊혀진 전통’ 속에서 분명해

질 것이다. 한국사회의 과학 수입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과학자들도 그

과정에서 수동적인 태도만을 지녔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하나의 해답, 그것이 ‘잊혀진 전통’을 통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만 기억되는 세상은 불행하다

다윈과 아인슈타인처럼 대중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만으로는 잊혀진 전통이

드러나지 않는다. 대중들에게 유명하게 인식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당당하게 호흡했던 과학자들의 모습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그들이야말로 잊혀진 전통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다윈도 아인슈타인도 아니다. 과학자들의 역할은 사회

속에서 다양하게 드러날 수 있다.

영웅만이 기억되는 세상은, 과학자들에게도 불행이 된다.

과학자들도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라는 인본주의의 미덕 속에서 행복했고,

또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 김우재 UCSF 박사후연구원 

역사 속에서 과학자들이 여러 분과 학문들과 상호작용했던 역사가 구체적인 사례들 속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때로는 철학자로, 때로는 사상가로, 때로는 사회운동가로 과학자들은 사회 속에서 숨쉬어 왔다. 과학과 인문학의 갈등을 상징하는 ‘두 문화’란 이러한 역사 속에는 존재하지 않다. 두 문화란 과학자들이 확립해온 전통이 깨지던 순간에 나타난 개념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언제나 인문학과 소통해 왔고,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 주체로서의 과학자들의 모습은 아인슈타인이나 다윈처럼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을 다시 되살리는 것은, 국가와 대중과 과학자들 모두가 원하는 한국의 과학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과학은 사회 속에서 도구가 아니라 문화로 기능하는 학문이다.

과학자는 전문가가 아니라 지식인으로 활동해왔던 사람들이었다.

한국의 과학자들은 그 잊혀진 전통을 발견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잊혀진 전통’은

여전히 숨쉬고 있다.

이제 한국의 과학자들 스스로가 그것을 발견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나갈

때이다. 역사는 한국의 과학자들에게 열려 있다.

1. Gerald Holton, 'Modern science and the intellectual tradition.' Science 131, no. 3408 (1960): pp. 1192.

김우재 UCSF 박사후연구원

저작권자 2011.01.12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