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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창의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양방향 소통’

과학창의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양방향 소통’ 2011년 01월 21일(금)

과학창의 칼럼 ‘과학창의사회’라고 하면 사회 전(全) 분야에서 과학문화가 창달(暢達)되어 창의적인 활동이 활발히 일어나는 사회를 말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과학문화’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과학문화활동이 바람직한 것일까? 과거의 과학문화활동이 지금도 유효한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맞아 과학문화활동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할까? 21세기의 두 번째 십년(十年)의 문 앞에 서 있는 지금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과학문화’라는 말이 널리 사용된 것은 아마도 1990년대 중반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전신인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출범하여 활동하기 시작한 때쯤일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국과학기술후원회’와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이라는 이름으로 과학기술 대중화 사업 등의 활동을 해왔으나, 그 규모와 체계 면에서 미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과학문화’ 혹은 ‘과학기술문화’ 라는 말을 여러 자리에서 어색하지 않게 들을 수 있으며, 특히 현대사회의 두 가지 주요 화두라고 할 수 있는 ‘과학기술’과 ‘대중참여’와 연관되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모든 사람이 피부로 느끼듯이 현대사회는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문화’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물론 과학문화활동도 예외일 수 없다. 과거의 방식은 이제 효과적이 아닐 수 있으며, 미래 사회에서는 과학문화활동에서도 현재와 전혀 다른 수요가 존재할 것이기에 이에 미리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우선 미래사회의 커다란 발전방향(megatrend)를 살펴보고, 이에 따른 미래사회에서의 바람직한 과학문화 활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메가트렌드(Megatrend)라는 말을 유행시킨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와 패트리셔 애버딘(Patricia Aburdene)은 유명한 ‘Megatrends’라는 저서(1982년 출판)에서 미래사회의 커다란 변화 방향으로 10가지를 제시하였다. 그 중 몇 가지만 추려보면 1. 산업사회(Industrial Society)로부터 정보사회(Information Society)로 2. 강제기술(Forced Technology)에서 하이테크/하이터치(High Tech/High Touch)로 3. 국가경제(National Economy)에서 세계경제(World Economy)로 4. 중앙집권화(Centralization)에서 분권화(Decentralization)로 5.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에서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로 6. 위계조직(Hierarchies)에서 네트워크(Networking)사회로 7. 이분법(Either/Or)에서 다양화(Multiple Option) 등이 있다.

30년 가까운 시일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이러한 예측이 상당히 정확하였음에 감탄하게 된다. 세계화와 정보화를 주축으로 하고, 이 움직임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으로서 네트워크사회, 참여민주주의, 감성 중시, 다양화 등을 예측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실제로 현재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그 후 1990년 출간된 ‘Megatrends 2000’에서 저자들은 1. 생물학의 시대(The Age of Biology) 2. 여성 리더십의 시대(Women in Leadership) 3. 개인의 승리(The Triumph of the Individual) 등을 추가하였고, ‘Megatrends 2010’(2005년 출간)에서는 1. 깨어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 2. 사회책임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의 시대 3. 가치 추구의 소비자(Valuedriven Consumer) 4. 중간계층의 부상(Leading from the Middle) 등을 언급하면서, 앞으로는 기업과 개인의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이 강조되고 중간 계층의 역할이 중요시 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는데, 이 역시 현대 사회의 발전 방향을 제대로 짚고 있다고 생각된다.

전문가 권위 추락하고, 대중 참여 늘어나 

이러한 메가트렌드 중 과학기술과 문화와 관련된 것을 추려내어 보면 다음과 같은 점이 미래사회에서 중요해질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들은 이미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영향력이 커질 것이 확실하다.

첫째로 개인의 다양성이 중시되고 활발한 대중참여가 이루어지면서 과학기술 면에서도 소수 전문가의 절대적 권위가 추락할 것이다. 실제로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고 있으며, 전문적인 지식도 위키피디아로 대표되는 집단지성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황우석 사건 때 젊은 생물학 연구자들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BRIC가 커다란 역할을 하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의 천안함 사태 때에도 소위 전문가들이 발표한 정부의 공식적인 조사보고서에 대하여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칭·타칭의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하였으며, 이들의 영향력이 공식적인 보고서에 못지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물론 광우병 사태 때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둘째로 과학기술연구개발과 과학기술자들의 활동에 있어서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ibility)이 강조될 것이다. 연구 활동에서 과학기술자들은 연구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준수할 것이 요구되고, 특히 생명윤리에 관한 일반인의 감시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또한 연구 과제를 선정함에 있어서도 기후변화와 환경, 에너지 등 지구 전체의 문제 해결을 고려하라는 압력이 거세지고, 인류 복지와 건강 등 1999년 부다페스트 과학자선언에서 언급되었던 ‘사회를 위한 과학’(Science for Society)연구도 강조될 것이라고 예측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동안 경제발전을 위한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정부 연구개발투자의 절반이상이 투입되어 왔는데, 앞으로는 이러한 방향에 상당히 큰 변화가 요구될 것이다.

셋째로 과학기술정책 결정에 일반 대중의 참여가 점점 많아질 것이다. 과거에 과학기술은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치부되어서 국가의 과학기술정책도 소수의 관료와 전문가들이 모여 결정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방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일반 국민들은 인터넷을 통해 얻은 지식과 정보를 이용하여 국가의 과학기술정책에 좀더 많은 인풋을 넣고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려 할 것이다. 참여민주주의와 분권화는 이처럼 과학기술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참여민주주의 시대의 과학소통

그러면 이러한 미래사회의 변화는 과학문화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사실 ‘과학문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영어로 ‛Science Culture’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Scienceas Culture’, ‛Science and Culture’, ‘Scientific Culture’ 등이 나온다. 한국말로 ‘과학문화’를 입력해도 마찬가지이다. 서울대의 홍성욱 교수는 한 저서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2008)에서 ‛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 가 가장 근사한 개념인 듯 하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나는 미래의 분권화가 진행된 참여민주주의 시대에는 ‘Public Understanding and Engagement of Science’ 라고 개념을 확장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새로운 과학문화 활동의 패러다임은 다음과 같은 면이 강조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첫째는 양(兩)방향(bi-directional)의 소통이다. 현재까지의 과학문화사업은 대부분 ‘잘 아는 전문가’가 ‘잘 모르는 대중 혹은 어린이’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쳐 주는 개념의 사업이 많았다. 강연이나 전시가 주축이 된 과학대중화사업, 우수 과학도서와 방송·신문의 우수 과학프로그램 선정 사업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본인도 이러한 사업에 참여한 일이 종종 있었지만, 항상 이러한 일방적인 홍보·계몽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특히 전자민주주의가 발달하고 인터넷 공간에 정보가 널려있는 미래사회에서는 그 효용성이 더욱 떨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오히려 반발심을 일으킬 위험성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과학문화활동은 일반대중과 더불어 가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존중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둘째로는 과학문화 활동에서 과학 지식의 공급자는 수요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원자력발전소의 핵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이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논란을 보면,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객관적 사실과 일반 대중이 받아들이는 입장은 확연히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학적인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면 상대방이 궁금해 하는 것이 무엇이고 우려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이 납득하고 받아드릴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앞으로 융합의 시대를 맞아 점점 많아질 과학기술과 인문사회분야 혹은 예술분야와의 소통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셋째로 과학기술정책 결정과정에서 일반 대중의 참여가 확대될 수 있도록 과학기술자들이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앞으로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는 과학기술적 결정들은 과학자·전문가들끼리만 모여 폐쇄적으로 하지 말고, 일반 대중을 그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과학자의 전문가적 권위가 떨어진 상황에서 일반 국민들을 납득시키는 방법은 결정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과학자들이 좀더 열린 마음과 자세를 갖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문화’ 활동은 일반 대중만을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과학기술자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과학기술자들이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좀 더 넓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자세와 능력을 길러주는 일이 과학문화의 창달을 위해 필요한 일인 것이다.

시대가 급변함에 따라 과학문화 활동도 이처럼 새로운 시대에 맞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양방향 소통”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이러한 일에 노력을 기울여서 한국의 과학문화 창달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제공: 월간 과학창의 |

글: 오세정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저작권자 2011.01.21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