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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체계/상상력

왜곡 수입된 ‘융합 과학기술’의 틀을 바로 세워야

왜곡 수입된 ‘융합 과학기술’의 틀을 바로 세워야
이정모의 "인지과학, 미래, 테크놀로지"
죽었다 깨어나도 애플 못 따라잡는다
■ 한겨레 과학마당 <사이언스온>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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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의 융합 과학기술‘을 설명하는 미국 과학재단의 자료에 나오는 그림. 출처/ www.nsf.gov
미래 융합과학기술 틀: 서구와 한국은 무엇이 다른가?

요즈음 대학에서도, 과학기술계에서도, 기업에서도,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영역 간, 분야 간의 융합이 하나의 화두이다. 이러한 경향은 올해에도, 또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서울대학교 미래학문 콜로키움 모임의 논의에 의하면, 미래 학문 체계에서는 현재 대학 학문체제나 국가기관의 학문 분류 체계를 넘어서서 학문 간, 분야 간의 새로운 융합과 재구성이 멀지 않아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융합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미래 국가 발전 일반과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하여 중요한 주제로 계속 남을 것 같다.

미래 과학기술의 화두 ‘융합’… 한국만의 ‘다른 길’

미래 과학기술은 어떠한 과학기술이어야 하고 어떤 목표를 지녀야 하는가? 미래 과학기술의 특징은 인간의 삶, 사회, 문화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것인가? 국내 과학기술계, 사회, 대학, 기업은 어떻게 이에 대비하고 생각을 재구성하여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은 과학기술의 앞날과 미래 인류사회를 생각하는, 깨어 있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질문들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지금까지 융합 과학기술(converging technologies)의 논의에는 서구의 융합 과학기술 논의와는 크게 다른 면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과학기술은 상당히 발전한 듯하지만, 최근에 국내 일부 기업 지도자들이 부각하였듯이 지난 몇 년 동안에 보여준 한국적 융합 과학기술의 틀은 미래 한국에서 과학기술의 긍정적 발전의 틀로는 부적절하다. 왜 그럴까?

단도직입으로 말하자면, 21세기의 융합 과학기술 논의에 불을 붙인 개념 틀인, 미국 과학재단(NSF)이 2003년에 제시한 미래 융합 과학기술 틀의 핵심을 한국은 곡해하여 수입한 탓이라고 볼 수 있다. 바로 그러한 점이 한국의 과학기술이 비록 메모리 칩 같은 일부 제품의 개발과 생산에서는 서구 국가에 비해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서구의 과학기술을 넘어서지 못하는 까닭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면 21세기 미래 융합 과학기술 틀의 핵심을 한국은 어떻게, 왜 왜곡하여 수입하여 이 자리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리고 지금의 그 대안은 무엇인가?

» 나노기술, 생명공학, 정보기술, 인지과학의 융합 테크놀로지를 형상화한 그림. 출처/ www.nsf.gov

개인의 능력 향상에 초점 맞춘 ‘융합 과학기술의 틀’

21세기에 들어서자마자 미국에서는 국립과학기술원 나노과학공학기술위원회의 요청을 받아들여, 과학재단과 상무성이 공동으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미래 과학기술의 틀을 개발하였다. 이것이 2003년에 미국 과학재단이 “21세기 미래 과학기술의 틀”로 제시한 “NBIC 융합 과학기술의 틀”이고, 이로부터 캐나다, 유럽연합 등의 미래 융합 과학기술 틀이 형성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융합’ 논의가 과학기술계, 학계, 산업계에 널리 퍼졌다.

이 틀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미래 과학기술(특히 테크놀로지)의 핵심이 4대 축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즉 N(나노과학기술), B(생명과학기술), I(정보과학기술), C(인지과학기술)라는 4대 핵심 축의 수렴적 연결에 의하여 미래 과학기술이 발전될 것이며, 혁신적, 창의적 발견과 발명은 이 네 영역의 변두리와 접점에서 주로 나온다는 것이다.

둘째 핵심은 미래 테크놀로지의 궁극적 목표가, 신물질이나 기계의 생산에 있지 않고 인간 개개인의 지적, 활동적 퍼포먼스(performanc: 수행 능력)의 향상에 있다는 것이다. 시민 개개인의 인지적, 직무적, 그리고 일상적인 활동 퍼포먼스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고 할까. 유럽언합은 이러한 미국의 틀에 ‘인문사회 테크놀로지’를 추가하고 생태적 환경 개선 측면을 가미한 틀을 제안하였다.

곡해되어 수입된, 한국의 ‘융합 과학기술’ 논의

한국에서는 2004년부터 과학기술 융합에 관한 논의가 시작하였고, 2005년의 최재천, 장대익 교수가 제시한 ‘통섭’ 개념에 힘입어 융합 논의는 이제 우리 사회의, 특히 과학기술계, 대학, 산업체의 구도를 지배하는 핵심 개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데 국내 융합 과학기술의 틀에 문제점이 있다. 서구의 융합 틀에서 강조된 두 측면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즉, 서구에서는 미래 과학기술 틀의 핵심 축이 나노과학, 생명과학, 정보과학, 인지과학인 ‘4륜구동’의 미래 테크놀로지 틀이라면, 한국 틀은 아직도 나노, 생명, 정보(NT, BT .IT)라는 ’3륜구동’의 미래 테크놀로지 틀이라는 것이다. 인지과학에 의해 연결되는 인문-사회과학이 제공하는 소프트 테크놀로지의 중요성이 미래 과학기술에서 무시된 틀이다.

서구의 미래 융합 과학기술 틀을 한국이 왜곡한 또 다른 측면은, 서구는 개개인의 퍼포먼스 향상이라는 소프트적 목표를 궁극적으로 추구하는데, 한국은 컴퓨터 칩 같은 하드 기기의 생산에서 앞서가려 하는 20세기 식의 목표를 궁극 목표로 추구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소프트 테크놀로지를 무시한 3륜차가 4륜차를 따라가거나 흉내낼 수는 있지만 앞서가지는 못한다. 애플의 스마트 기기의 성공과 같은 변혁을 과거의 한국적 틀의 3륜차가 내어 놓을 수는 없다. 한계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인간 삶에 눈 돌리는 테크놀로지를

21세기에 미국 과학재단이 융합 과학기술의 틀을 내어 놓으면서 인류가 추구해야 할 과학기술의 궁극적 목표 개념은 크게 변화하였다. 20세기까지 추구해온 물질과 기계 중심의 ‘하드’ 과학기술의 관점에서 이제 ‘소프트’ 과학, ‘소프트’ 테크놀로지로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유의할 점이 있다. 과거의 ‘하드’ 과학, 테크놀로지는 쓸데없거나 중단하거나 버리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하드’ 테크놀로지는, 우리 인간의 일상 삶에서 중요한 물이나 공기처럼, 이미 삶의 조건의 하나가 되어 삶으로 통합되어 있으며 비탕을 이루고 있기에 그 자체의 중요성을 인정하며 계속 연구 발전시켜야 함을 인정하되, 궁극 목표로 삼거나 하는 것을 넘어서자는 의미이다.

그것을 넘어서서 인간 삶의 본질적 측면에, 인간 중심으로, 인간-인공물 상호작용의 본질 중심으로 눈을 돌리자는 의미이다. 바로 이것이 ‘소프트’ 과학기술. ‘소프트’ 테크놀로지의 핵심 아이디어이며(이런 아이디어는 국내에서도 1996년에 과학기술부 프로젝트로 제시되었으나 빛을 보지는 못하였다), 서구는 그런 궁극 목표를 향하여 2003년 이래로 저만큼 달려가고 있고, 2010 년에 비로소 한국에서는 삼성 등이 ‘소프트웨어’를 강조하며 궤도를 수정하고 있다.

‘소프트 과학’ ‘소프트 공학’의 중요성

물질, 기계 중심의 과거 과학기술관, 테크놀로지관의 낡은 껍질을 벗어버려야 하는 것이다. 신묘년의 토끼가 털갈이를 하듯이, 아시아 용의 하나가 껍질을 벗고 승천하듯이, 우리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낡은 틀을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태블릿 피시(PC), 앱,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이 빠져들어간 소셜네트워크… 이러한 하드, 소프트 인공물들, 그리고 이 모두를 수렴, 통합, 융합하여 이를 넘어서 미래에 창출될 새로운 창의적 테크놀로지를 위하여 우리는 발상의 전환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소프트 과학’, ‘소트트 공학’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이 중요성은 나노과학, 생명과학, 정보과학, 인지과학이 핵심 축이 된 미국 과학재단의 ‘NBIC 융합 과학기술 틀’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당시 미국 하원의 지도자 중의 한 명으로 널리 인정받은 뉴트 깅리치 의원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잘 표현된다.

“이러한 큰 변화의 본질과 양상을 연구하고, 이해하고, 투자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무시하는 자들보다 드라마틱하게 더 잘 살 것이다. (…중략…) 이러한 변화의 본질(패턴)을 무시하는 국가들은 변화를 지향하는 더 현명한 이웃 국가보다 더 뒤떨어지며, 더욱 약하고, 가난하며, 쇠퇴하며, 결국은 망각될 것이다.”

이정모 / 성균관대 명예교수(심리학, 인지과학). 여러 인지과학 관련 포럼과 세미나 운영 또는 참여 중. 홈페이지 http://cogpsy.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