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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체계/상상력

영화 ‘트론’으로 본 과학 소통의 중요성 영화와 과학이 소통할 때 모두에게 혜택

영화 ‘트론’으로 본 과학 소통의 중요성 영화와 과학이 소통할 때 모두에게 혜택 2010년 12월 28일(화)

영화의 흥행조건으로 많은 감독들이 ‘관객의 몰입’을 꼽는다. 관객의 몰입이란 쉽게 말하면 ‘얼마나 현실에서 있을법한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었느냐’이다.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이면 관객에게 외면당하고, 너무 현실과 똑같은 이야기면 진부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현실에 있을법한 이야기를 감독의 상상력으로 독창적으로 그려내는 것’이 영화 흥행의 관건이란 얘기다.

첨단 과학기술을 소재로 다루는 SF영화의 경우에도 이 ‘있을법한 이야기’는 고스란히 적용된다. 쥬라기 시대의 티라노사우루스 공룡을 스크린으로 옮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도 과학적으로 있을법한 소재를 다뤘기 때문이다.

영화 흥행 조건, 있을법한 이야기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학적으로 있을법한 소재를 다뤘기 때문이다. 
쥬라기 공원에서 쥬라기 공룡을 재현할 수 있었던 과학적 배경은 쥬라기 시대 공룡의 피를 빨아 먹은 모기에 있다.
 
그 모기는 수십 억 년의 세월동안 공룡의 DNA를 보관한 채 호박이라는 보석 속에 갇혔다.

영화에서는 이 호박을 찾아 모기를 끄집어내고 모기에서 공룡의 DNA를 뽑아내 쥬라기 공룡을 재현했다. 유전공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얼핏 있을법한 이야기이다.

기실 쥬라기 공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SF영화가 제작될 때 영화제작진과 과학자들 사이의 소통은 영화 제작의 중요한 과정이다. 제작자들은 과학에 대해 잘 모르고 과학자들은 영화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들 두 그룹간의 대화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저널리스트 수잔 칼린은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어메리칸’ 최신호를 통해 “30일 개봉 예정인 ‘트론, 새로운 시작’이 제작자와 과학자 사이의 소통을 통해 전작인 ‘트론’을 뛰어넘는 영상혁명과 잘 짜여진 스토리를 선보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영화 ‘트론, 새로운 시작’은 1982년 디즈니가 제작한 ‘트론’의 속편으로 컴퓨터 속 가상세계에 갇힌 아버지(케빈 플린)를 찾아 나선 아들(샘 플린)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컴퓨터 속 가상세계는 그리드(Grid)라고 불린다. 그리드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업 ‘엔컴’의 창시자 케빈 플린이 만든 게임 속 가상 세계이다.

이 그리드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프로그램이 인간 형상을 한 채 목숨을 건 게임을 펼치는 공간이다. 마치 로마시대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들이 결투를 벌이는 것처럼 샘은 가상 세계의 가상 캐릭터들과 승부를 벌인다. 아버지인 케빈 플린이 자신을 형상화해 만든 클루가 창조자인 아버지를 배신하고 그리드를 지배하는 트론의 세계에서 샘은 클루와 클루의 부하들에 맞서 한 판 승부를 펼친다.

영화 트론 제작진, 있을법한 이야기 위해 과학계와 소통

영화의 감독을 맡은 조 코진스키는 “우리는 과학기술 자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들을 통해 과학기술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SF영화이지만 새로운 법칙이 통용되는 영화로 그려내려 했다”고 덧붙였다. 코진스키 감독이 말한 새로운 법칙이란 다름 아닌 ‘있을법한 이야기’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코진스키 감독과 제작자 숀 베일리는 영화 촬영에 앞서 물리학자, 신경과학자, 로봇공학자 등 일련의 과학자들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캘리포니아공과대 물리학자 숀 캐럴과 전 제트 프로펄젼 연구소 물리학자 존 딕은 이들이 만난 과학자들의 한 사람들이다.

코진스키 감독은 “우리는 영화의 핵심 장면을 강력한 과학적 근거로 뒷받침할 수 있기를 원했다”며 “일련의 과학자들과의 토론은 영화의 이야기를 향상시키고 영화를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일종의 도약대가 됐다”고 술회했다.

제작진과 과학자들이 고민한 부분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영화 트론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들이 그리드라는 가상세계에서 인간의 형상을 한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어떻게 인공지능을 인간의 형태로 묘사할 것인가’, ‘어떻게 인간을 컴퓨터 세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표현할 것인가’, ‘과거 실적을 기반으로 스스로 진화하는 컴퓨터 알고리즘은 어떻게 그릴 것인가’, 그리고 ‘퀀텀 공간이동은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이다.

퀀텀 공간이동은 순간적으로 어떤 물체가 매우 긴 거리를 이동하는 기술로 객체를 분해한 뒤 공간이동 이후 객체를 다시 재건하는 기술이다. 트론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 속으로 인간이 들어가는 기술에 퀀텀 공간이동이 응용됐다.

“1982년 첫 번째 트론 이후의 과학적 변화는 퀀텀 컴퓨팅과 공간이동”이라며 “우리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영화제작자들에게 전달했다”고 딕 박사는 말했다. ‘당신이 어느 날 어떤 조각을 퀀텀 컴퓨터 속으로 공간 이동시키는 것’은 현재 현실세계에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공간이동은 수소와 산소가 현실세계에 남아있는 동안 조각의 정보를 컴퓨터로 보내는 과정과 매우 흡사할 수 있다”고 딕 박사는 설명했다.

프로그램의 인간 형상화, 퀀텀 공간이동 등 논의

▲ 30일 개봉 예정인 ‘트론, 새로운 시작’이 제작자와 과학자 사이의 소통을 통해 전작인 ‘트론’을 뛰어넘는 영상혁명과 잘 짜여진 스토리를 선보일 수 있었다. 
과학자들과의 일련의 정보교류는 코진스키 감독이 트론 세계를 상상하는 데 또 다른 활력소로 작용했다. 이를테면 현실세계와 트론의 가상세계를 구별하기 위해 물리학의 법칙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다.

캐럴 박사는 “과학자들로부터의 정보는 스토리를 보다 일관성 있게 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현저하게 지능적으로 변했을 때 그리고 알고리즘이 프로그램 그 자체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때 프로그래머들이 배우고 변하고 그들이 처음에 했던 것을 뛰어 넘어 무엇을 할지에 대해 연구했다”고 말했다.

“‘이런 연구를 통해 과연 컴퓨터 프로그램이 인간처럼 지능을 갖추며 열정과 개성이라는 인간 특유의 특성을 가질 수 있을까’ 또는 ‘당신이 만약에 컴퓨터 속으로 업로드가 된다면 당신은 그 전의 당신과 똑같은 사람일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고 캐럴 박사는 덧붙였다.

과학자들이 이른바 컴퓨터 프로그램의 인간화에 대해 고민하는 동안 코진스키 감독은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사용한 3D 카메라 시스템을 활용했다. 그의 CG 기술팀은 케빈 플린의 젊은 시절을 형상화한 프로그램인 클루를 묘사하기 위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적용됐던 노화기술보다 한 차원 진보된 기술을 사용했다.

제작진은 케빈 플린역을 맡은 제프 브리지스의 얼굴에 모션 캡처 센서를 달았다. 이 센서는 디지털 얼굴을 그려내는 역할을 한다. 디지털 얼굴은 이후 젊은 케빈의 몸에 디지털로 합성된다. 코진스키 감독은 “배우가 그 자신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영화가 과학을 이해할 때

과학자들과 트론 제작팀 사이의 모임은 국립과학아카데미의 과학과 오락의 교환 프로그램(Science and Entertainment Exchange)으로 시작됐다. 이 프로그램은 영화 또는 TV 프로그램의 과학적 원리를 보다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도록 과학자와 제작자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프로그램이다. 디지털 시대에서 태어나서 자란 많은 관객들과 떠오르는 신예 감독들을 엮어줌으로써 영화작품이 보다 과학기술적으로 정교해지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캐럴 박사는 “대부분의 할리우드 사람들은 과학자들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 둘 사이에는 문화적 장벽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가 어떻게 과학이 작동하는지에 충실해지면 질수록 과학은 그에 따라 혜택을 입고 과학을 보다 심도있게 다룰 때 영화 역시 그에 따른 혜택을 입을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저작권자 2010.12.28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