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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39) “굴삭기, 지진 현장으로 집합 ! ” [중앙일보]

[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39) “굴삭기, 지진 현장으로 집합 ! ” [중앙일보]

입력시각 : 2010-12-24 오전 10:04:59

중국 내수시장 공략의 핵심은 유통망입니다. 당연하지요. 아무리 좋은 제품도 유통망이 부실하다면 소비자에게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내 제품 유통을 남에게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맞기는 것과 같습니다. 중국 진출 기업 중 실패한 회사를 분석해보면 상당수 업체들이 중국 파트너에게 유통을 맡겼다가 낭패를 당했습니다. 한국 투자사는 생산을 담당하고, 유통은 중국 파트너가 맡는 식의 합작사업은 대부분 깨집니다. 어렵더라도 '내 제품은 내 손으로 소비자에게 전해준다'라는 생각이 절대 필요합니다.

10년을 내다본 유통망 수립 전략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두산인프라코어 사례를 보지요.

2008년 5월 쓰촨(四川)대지진 때 일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지진 피해 복구에 참여했습니다. 고마쓰 캐터필러 등 다른 나라 굴삭기 기업들은 '30대를 보내기로 했다', '50대를 지원한다'는 등의 보도자료를 경쟁적으로 내놨습니다. 굴삭기 한 대에 보통 1억 원. 30~50억 원을 지원한다는 얘깁니다.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기업이 '자선'에 나설 때는 이유가 있는 법, 이들은 중국정부에 확실하게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만큼 중국 사회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라는 것을 선전하려고 한 것이지요.

두산인프라코어옌타이(延台)법인도 무엇인가 해야 했습니다.
한 100대를 지원할까? 그러면 저들이 '악~'소리 나겠지?

아닙니다. 10년 이상 중국사업을 해온 이 회사 영업 베테랑들은 다른 전략을 쓰기로 합니다. 복구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굴삭기 지진 현장으로 집합!'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중국에서도 굴삭기 주인은 그것으로 사업을 합니다. 제3자에게 임대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직접 공사장에서 운전하며 돈을 벌지요. 두산인프라코어는 쓰촨지역에 있는 굴삭기 주인들에게 긴급 통보를 합니다.

"지금 당장 굴삭기를 지진 현장으로 투입하라. 그리고 복구에 참여해라. 그 비용은 모두 두산이 지원하겠다."

이 통보를 받은 굴삭기 주인들이 지진현장으로 모입니다. 200여 대에 이르렀습니다. '복구 현장에 두산굴삭기 밖에 없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습니다. 두산의 중국사업을 지휘하고 있는 김동철 부사장은 "굴삭기를 한 대도 공짜로 주지 않았으면서도 중국과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심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남들은 50억 원을 써도 표시가 나지 않았지만, 두산은 5000만 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생색을 낸 겁니다.

그것도 아주 '뽄때나게'말입니다.

이것을 가능케 했던 게 바로 유통망입니다. '거미줄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본사의 정책이 저 멀리 쓰촨 시골마을에 있는 굴삭기에까지 미칠 수 있었던 겁니다.

이 회사의 유통네트워크는 공장(본사)-지사(6개)-대리상(38개)-영업점(360개)로 짜여져 있습니다. 이중 지사까지만 한국인이 맡고 그 이하는 모두 중국인들이 담당하지요. 대리상은 핵심 조직. 중국사업을 이끌고 있는 김동철 부사장(아래 사진)은 "각 대리상들은 지난 10년 이상 두산과 한 솥밥을 먹은 사이어어 끈끈한 연대의식이 형성되어 있다"며 "이들은 운영하고 있는 360개 영업점은 중국 건설시장에 퍼져있는 실핏줄과 같은 존재"라고 말합니다. 본사의 판매정책은 지사-대리상-영업점으로 이어지면서 중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겁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중국에 공장을 세운 게 1996년이었습니다. 그 시장에는 이미 고마쓰 캐터필라 등 외국 업체들이 진출해 있었지요. 어떻게 이 시장을 빼앗을 수 있을까. 그래서 선택한 게 바로 24시간 AS시스템입니다.

굴삭기는 흙을 파고, 흙을 트럭에 실는, 흙에서 일하는 장비입니다. 당연히 고장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고장이 났을 때 얼마나 빨리 복구를 해주느냐가 핵심입니다. 고장나도 걱정하지 않고, 빨리 고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좋은 굴삭기입니다.

두산은 수리주문을 받으면 기술자를 24시간 내 파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른 경쟁업체로서는 엄두도 못낼 속도입니다. 그만큼 시장 파고드는 속도도 빨랐습니다. 이 회사는 한 해 2만3000대의 굴삭기를 중국에서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시장점유율 15%. 고마쓰와 1,2위를 놓고 다투고 있습니다. 이것을 가능케 했던 것이 바로 '내 손 유통망'입니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제품을 당신의 손으로 소비자에게 전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 말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지금, 10년을 내다본 유통망 깔기에 나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