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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혁명을 '터치'하다

[Weekly BIZ] [Cover Story] 혁명을 '터치'하다

이지훈 기자 jhl@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정철환 기자 plomat@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태블릿PC, 세상을 바꿀 것인가 자신이 바뀔 것인가

장점만 버무린 잡탕제품인줄 알았는데…
읽고 보고 듣는 삶의 방식 바꿔
남녀노소 모두 쉽게 다룰 수 있어 새 문화 창조할 듯

"뭐야, 이건…."

처음 아이패드와 갤럭시탭을 손에 만진 뒤 든 생각이 그랬다. 메모지첩처럼 생겼다고 해서 같은 뜻의 영어 단어 '태블릿(tablet)'이란 통칭으로 불리는 이런 기기들은 덩치만 큰 스마트폰, 혹은 덩치 작은 노트북 PC 정도로만 비쳤다. 특유의 개성이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사실 마케팅의 역사엔 이 제품 저 제품의 장점만 버무려 놓은 잡탕찌개식 제품의 실패 사례가 넘쳐난다.



/ 일러스트= 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하지만 얼마 동안 직접 써보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태블릿은 묵을수록 맛이 나는 된장 같다. 곁에 두고 이런저런 앱들을 설치해 써보니 태블릿만의 맛깔스러운 느낌이 전해져 왔다.

지난 1월 애플이 아이패드를 처음 공개했을 때 회의론에 치우쳤던 IT 전문가들의 반응도 시간이 갈수록 달라졌다.

뉴스위크(Newsweek)의 칼럼니스트 다니엘 리용스는 처음엔 "애플이 기대와는 달리 뭔가 정말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망했다"고 했지만, 석 달 후엔 "아이패드는 모든 것이 정말 대단하다. 이 기기는 컴퓨터를 사용하고, 책을 읽으며, TV를 보는 방법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말을 뒤집었다. 태블릿은 스마트폰 같은 폭발력을 보여주고 있진 않지만, 우리 생활 속을 서서히 파고들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의 대학입학정보박람회에선 한성대가 애플의 아이패드를 이용한 입학 상담을 벌였다. 교직원과 고3 학생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화면을 들여다보며 어떤 학과에 지원 가능할지 이야기를 나눈다. 무선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학과 소개 자료도 볼 수 있다.

박윤지(18)양은 "교직원과 함께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상담을 하니 훨씬 분위기가 부드럽고 이야기도 자연스러웠다"라고 말했다.

모바일게임 개발업체인 넥슨부산게임개발스튜디오의 이병욱 대표는 아이패드를 이용하면서 PC를 쓰는 일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PC 켜려면 번거롭잖아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반면 아이패드는 항상 켜져 있는 상태니까, 뉴스나 이메일 확인, 인터넷 서핑을 즉시 할 수 있죠. 스마트폰도 있지만, 아이패드가 화면이 더 넓어 더 편해요."

올해 4월 미국에서 처음 출시된 아이패드는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850만대 이상이 팔렸고, 국내에선 발매 한 달 만에 7만5000여대가 팔렸다.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은 해외에서 100만대 이상, 국내에선 10만 대가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태블릿 기기의 강점은 생산보다는 소비에서 발휘된다. 화면에 뜬 자판을 터치해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거나, 분당 300타의 속도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 같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영화를 보고, 책과 신문을 읽고, 게임을 즐기는 콘텐츠 소비 활동엔 그지없이 편하다. 이 대목에선 잡탕찌개가 위력을 발휘한다. 노트북에 비해선 만만한 크기, 최대 10시간을 버티는 배터리, 스마트폰에 비해선 훨씬 넓은 화면이 잡탕찌개의 레시피를 구성한다.

하지만 태블릿엔 잡탕찌개로는 설명 안 되는 엄청난 매력이 내재해 있다. 바로 직관적이라는 점이다. 서너 살밖에 안 되는 아이들도 아이패드를 주고 놀게 하면 화면을 여기저기 터치하며 금방 익힌다. 미국 오리건주에 사는 올해 100세의 할머니가 생애 첫 컴퓨터로 아이패드를 구입해 능숙하게 전자책을 읽는다.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다는 점이야말로 태블릿의 진정한 힘이다.

소비는 시장을 낳는다. 태블릿이 몰고 온 새로운 소비 패턴은 새로운 시장을 낳거나, 기존 시장을 바꿀 것이다. 태풍의 눈엔 출판·게임·미디어 등 콘텐츠 시장과 교육시장이 있다. 김영걸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태블릿은 어린아이도 손가락으로 조작할 수 있는 직관적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갖고 있어 특히 교육용으로 파워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이패드와 갤럭시탭은 조금은 다른 용도로 분화하고 있다. 갤럭시탭의 경우 휴대가 편리하고 전화 통화도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스마트폰 대용으로 쓰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과연 태블릿 기기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뒤흔들 메가 쓰나미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한때 사람들의 열광으로 기억되고 사라질 찻잔 속 태풍일까? 태블릿이 바꾸고 있는 세상을 Weekly BIZ가 들여다봤다.

태블릿 쇼크

"식당에서 메뉴판이 사라졌어요"  "100세 할머니가 다시 책을 읽어요"

■메뉴판이 사라진 식당, 차트가 없는 병원

호주의 고급 레스토랑 '문도 글로벌 타파스'는 메뉴판 대신 아이패드를 쓴다. 고객이 아이패드 화면 속의 메뉴를 골라 '완료' 버튼을 터치하면 주문이 주방에 전송되면서 주문이 자동으로 끝난다. 힘들게 웨이터를 부르거나 기다릴 필요가 없다. 식당 입장에서는 웨이터가 주문을 엉터리로 받거나 주방에서 주문을 잘못 이해해 엉뚱한 음식을 내놓을 가능성을 줄일 수 있고, 주문을 받는 웨이터의 수도 줄일 수 있어 좋다. 앞으로는 화면 속 메뉴를 터치하면 그 음식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칼로리는 어느 정도이고, 어떤 영양분이 많은지 자세한 정보가 펼쳐져 나오고, 동영상으로 요리를 하는 과정을 소개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병원에서는 태블릿으로 인해 '차트가 없는 병원'의 현실화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예를 들어 의사가 회진을 돌 때 태블릿을 들고 다니며 환자의 용태(容態)를 입력하고, 무선 인터넷을 통해 엑스레이나 혈액 검사 결과 등을 바로 체크할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이 갤럭시탭을 이용해 곧 이러한 시스템을 가동할 예정이다.

■여행 길잡이가 필요 없다

2011년 여름 유럽 배낭여행에 나선 대학생 김나라씨. 유럽 여행 가이드 앱을 내려받은 태블릿 덕분에 마치 개인 여행 가이드를 둔 것처럼 편리한 여행을 즐기고 있다. 미리 여행 경로를 입력해 놓으면 무선 인터넷에 연결된 태블릿이 교통 정보를 검색해 최적화된 이동 수단과 타는 방법은 물론 요금도 알려준다. 또한 가는 길 내내 내장된 GPS 기능을 이용해 주변 명소에 대한 깊이 있는 정보를 전해 준다. 명소를 소개한 사진을 클릭하면 동영상이 나오고, 앞서 이곳을 방문했던 사람들이 올려 놓은 소감도 볼 수 있다.

태블릿은 간단한 여행 회화나 일상 회화를 현지 언어로 통역해 주기도 한다. 추천 레스토랑 소개 페이지의 '예약' 버튼을 누르면 단번에 예약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전 같으면 두꺼운 여행안내 책자에 커다란 지도, 여행 회화 책자와 카메라까지 너무나도 무거웠을 여행자의 짐이 태블릿 하나로 가벼워진다.

■다시 읽고 쓰게 된 할머니

태블릿은 IT의 사각지대에 있던 노인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 오리건(Oregon)주의 버지니아 캠벨(Campbell·100) 할머니는 녹내장과 노안으로 거의 책을 읽을 엄두를 못 냈지만, 최근 아이패드의 도움을 받아 십여 년 만에 다시 책읽기를 시작했다. 아이패드는 캠벨 할머니가 평생 처음으로 쓰게 된 컴퓨터였지만, 직관적인 사용법 덕분에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어도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캠벨 할머니는 아이패드를 이용해 직접 시까지 썼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기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100살 늙은이가 아이패드 덕분에 다시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어요." 아이패드를 이용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할머니의 모습은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도 올라왔다.

아이북스(iBooks) 앱으로 전자책을 내려받아 밝은 액정화면(LCD)에 띄우면 글자가 또렷이 보인다. 활자가 너무 작으면 엄지와 검지를 화면에 대고 벌려 내용을 확대해 볼 수도 있다.

■편리해진 비즈니스 현장

메르세데스벤츠 미국 법인은 지난 5월부터 자동차를 리스한 고객이 차를 반납할 때 '파일럿(Pilot)'이라는 아이패드용 앱을 이용하고 있다. 고객이 아이패드를 통해 몇 가지 체크 사항을 점검한 뒤 손가락으로 화면에 사인을 하면 된다. 이전엔 네댓 가지나 되는 서류를 일일이 읽어 보고 서명해야 했다. 벤츠는 수십여종의 판매 차량을 일목요연하게 비교 소개하고, 각 차종과 옵션별 판매 가격을 알려주는 앱도 내놨다. 고객은 쇼룸을 일일이 둘러보지 않고도 미리 관심 가는 차를 추려낼 수 있다.

일본 의류업체 뉴요커는 총 1200여종의 옷이 입력된 앱을 개발했다. 직접 입어보지 않아도 여러 종류의 옷을 매치해 내게 어울리는 조합을 찾아낼 수 있다. 고객들은 쇼핑이 편리해지고, 매장은 손님들이 입어 본 수많은 옷을 다시 진열해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태블릿은 기업의 회의실 풍경도 바꾸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의 회의실에선 종이 자료를 뭉텅이로 들고 들어와 뒤적이는 장면이 사라지고 있다. 참가자들은 각자 들고 온 아이패드를 이용해 자료를 보고, 아이패드에 메모를 한다. 현대카드·캐피탈은 내년부터 신입사원 교육용 종이 교재를 모두 없애고, 이를 아이패드용 앱으로 개발해 제공할 계획이다.

■분필 가루 없는 맞춤형 교실

교육 현장에 태블릿 기기가 도입되면 교과서와 참고서가 전자책 형태로 태블릿 속으로 들어가면서 학생들의 가방이 지금보다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또 태블릿은 선생님의 강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모두 음성으로 기록할 수 있는 첨단 공책의 역할도 하게 된다. 태블릿은 특히 유아 교육 현장을 크게 뒤바꿔 놓는다. 직관적인 사용법 덕분에 특별한 교육 없이도 아이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아이들의 관심을 끄는 예쁜 그림과 동영상, 소리가 함께 나오는 멀티미디어 그림책 앱과 교육용 게임 앱을 이용해 아이들은 글과 숫자, 전래 동화 등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중·고등학교 수업 시간엔 무선 인터넷을 통해 교사와 학생의 콘텐츠가 공유되면서 맞춤형 지도가 가능해진다. 예컨대 수학 시간에 학생들에게 "교과서 90페이지의 2번 문제를 풀어 보라"고 주문한 다음 학생들이 태블릿에 입력한 문제 풀이와 답안을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강의를 할 수 있게 된다.

머지않아 전자책을 읽는 독자들이 소감과 요점 정리, 주석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소셜 리딩(social reading)' 기능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인터넷의 집단 지성을 이용한 이른바 '집단 학습(collective learning)'의 현장이다. 이른바 교육과 IT의 융복합(convergence)이다.

■고객과 직원이 머리를 맞대는 은행 창구

일본 미즈호 은행은 영업 창구에서 고객에게 각종 금융상품을 안내하거나, 고객의 자산 운용 상황을 상담할 때 아이패드를 이용한다. "PC 모니터 너머로 고객을 바라보며 상담하는 것보다, 함께 아이패드 화면을 보면서 서로 머리를 맞대는 편이 분위기가 훨씬 부드럽다"는 것이 은행측의 설명. 종이 사용량까지 줄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모바일 뱅킹도 태블릿을 이용하면 훨씬 편리해진다. 스마트폰으로는 자신이 이용 중인 예금·대출·펀드·보험·카드 등 다양한 금융 상품을 같이 보여주기가 힘들어 내 재무·자산 상황을 한 눈에 살펴보기 힘들다. 하지만 태블릿에서는 넓은 화면 덕택에 한 번에 열람이 가능하고, 각 금융상품과 연계된 다른 상품의 소개와 추천도 가능하다.

■태블릿(Tablet)

노트북에 비해 휴대가 간편하고 스마트폰보다 큰 화면을 가진 휴대용 디지털 기기를 말한다. 대개 7~10인치 화면을 가지고 있으며, 마우스나 키보드 없이 손가락을 이용한 터치 방식으로 간편하게 조작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2001년 처음으로 제품을 내놓았으나 시장 형성에 실패했다. 올해 애플과 삼성전자가 아이패드와 갤럭시탭을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각자의 컴퓨터가 아니라 여러 개의 대형 서버에 저장해 놓고 필요할 때마다 인터넷을 통해 빌려 쓰고 사용료를 내는 혁신적인 IT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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