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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지식

‘최후 비밀’과 게임 중독 마약 중독보다 무서운 게임 중독의 비밀

‘최후 비밀’과 게임 중독 마약 중독보다 무서운 게임 중독의 비밀 2010년 11월 26일(금)

사타 라운지 과학 저널리스트 출신인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소재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그가 2002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뇌’를 보면 인간에게 가장 큰 동기를 부여하는 ‘최후 비밀’이 나온다.

마약이나 섹스보다 더한 지고의 쾌락을 인간에게 선사하는 그 ‘최후 비밀’은 뇌의 변연계에 위치하는 비밀스런 부위이다. 거기에 전기 자극을 가하면 이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을 얻게 된다.

▲ 게임 중독자의 뇌파가 마약 중독자의 뇌와 유사하게 활동한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사무엘 핀처는 그 쾌락을 동기로 부여하자 연습에 열중해 마침내 ‘딥 블루 Ⅳ’라는 컴퓨터와의 체스 게임에서 승리를 거둔다. 최후 비밀에 가해지는 쾌감은 그를 컴퓨터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게 할 정도로 중독성이 강했던 것이다.

물론 이 최후 비밀은 베르나르가 지어낸 허구이다. 하지만 쥐를 이용해 그와 상당히 유사한 실험을 실제로 한 적이 있다.

1954년 올즈와 밀너는 실험쥐를 이용해 뇌의 변연계 중 쾌락중추인 중격핵 부근에 전기회로를 부착했다. 그 후 쥐에게 스위치를 마음대로 켤 수 있게끔 장치했다. 그러자 실험에 참가 쥐들은 먹이 따위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고 오로지 전기 스위치만 눌러대다가 탈진해서 죽어갔다.

변연계에는 쾌락과 충동을 조절하는 부분인 ‘뇌 보상체계’가 존재한다. 뇌신경 세포의 흥분 전달 역할을 하는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거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약이나 도박 같은 중독 메커니즘도 도파민과 결합하는 수용체의 유전자가 밀접하게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약이나 도박 중독자들은 결국 뇌 보상체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마약과 도박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이 동기로 부여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부산에서 중학생이 밤늦게 게임에 몰두한다고 타이르던 어머니를 살해한 후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참혹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중학생에게는 게임이 바로 ‘최후 비밀’이었던 셈이다.

그 지고한 쾌락을 얻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게임에 열중했고, 어머니가 그것을 막자 그처럼 엄청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가장 강력한 동기를 위해서라면 순간적으로 물불을 가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물질중독 vs 과정중독

중독에는 물질중독과 과정중독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물질중독이란 마약이나 알코올, 니코틴, 카페인 등 기분을 전환시키는 물질에 대해 의존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섹스나 도박, 도벽, 종교, 쇼핑 등 일련의 행동이나 상호작용의 과정에 빠져드는 것을 과정중독이라 한다. 게임 중독의 경우 과정중독에 속한다.

그런데 과정중독인 게임 중독자의 뇌파가 물질중독인 마약 중독자의 뇌와 유사하게 활동한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지난해 12월 분당서울대병원 김상은 교수팀이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기법으로 게임 과다 사용자들의 대뇌 포도당 대사 등을 측정한 결과 안와 전두피질, 미상핵, 도회의 기능이 정상인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부분들은 각각 충돌 조절, 보상 처리, 중독을 담당하는 대뇌 영역으로서, 마약 중독 환자들의 뇌도 유사한 작동 기제를 보인다. 즉, 게임 중독자들이 게임에 몰입할 때 보이는 뇌 부위는 마약을 섭취하면서 쾌감을 느낄 때 갖는 뇌 활동과 똑같다는 의미이다.

게임 중독은 마약 중독처럼 위험할 뿐만 아니라 치료도 더 어렵다. 마약 중독은 약물 치료가 가능하지만, 게임 중독은 작동하는 실체가 없어 치료하기가 더욱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게임 중독은 신체를 불구로 만들거나 갑작스런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게임에 중독된 어느 대학생은 장시간 게임을 한 후유증으로 머리가 돌아가 5초 이상 정면을 바라볼 수 없는 신체 불구가 됐다.

입도 비뚤어지고 식사할 때 음식을 흘리는 등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 됐다. 진단 결과, 그는 게임 중독으로 인한 ‘경련성사경’이라는 병명으로 판정 받았다.

장시간 게임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사고도 속출하고 있다. 6시간 이상 게임을 하면 혈류 속도가 느려지게 되며, 8시간이 지나면 혈액이 역류하면서 혈관 내에서 혈액이 응고되는 혈전이 생기게 된다.

의료계에서는 이렇게 형성된 혈전이 갑작스런 사망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게임에 중독되면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많이 나와서 뇌의 구조와 기능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특히 뇌가 한창 성장하는 시기에 게임을 오래하면 뇌의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게임 중독은 학습 효과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우울증과 같은 심각한 정신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또 현실감이 적어져 친구나 취미활동 등에 흥미를 잃게 되며, 폭력적인 게임의 경우 공격적인 성향도 강해진다.

게임 속 세상이 진짜 세상?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게임에 그처럼 빠져드는 것일까? 게임은 따분한 현대의 일상에서 벗어나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좋다. 끝없는 경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두려움을 잊게 해주는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 폭력적인 게임을 많이 하면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진다. 
게임에 몰입하면 스트레스와 긴장이 해소되면서 게임의 난이도와 개인의 수행 능력이 적절한 균형을 이룰 경우 최적의 심리 상태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게임 중독에 빠진 이들의 경험에 의하면 게임 속 세상이 진짜 세상 같으며 게임을 할 때 가장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국내 게임산업이 다중접속 역할수행게임 위주의 온라인 게임에 너무 집중돼 있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런 게임의 경우 시간 투자를 많이 할수록 등급이 올라가다 보니 사용자들이 게임 중독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럼 과연 사람들을 게임에 중독되게 만드는 것은 재미라는 요소만일까? 2007년 미국 로체스터 대의 리처드 리안 박사팀은 게임을 계속하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1천 명의 게이머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수많은 네티즌과 동시에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의 경우 유대감을 충족시켜 게임을 더 하고 싶도록 욕구를 자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게임을 하면서 누릴 수 있는 자율성과 권능, 성취감 등이 게임에 빠져들게 하는 요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게임 중독자들은 게임 속 세상에서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의 쾌감에 젖어들게 된다. 그러니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이들을 용서할 수 없다. 권력의 무서운 속성이 게임 안으로까지 파고들어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0.11.26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