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리더] 이천도자기 명장 藝松 유기정 | |||||||||||||||||||||
도예는 魂과 功의 예술 神·자연이 만드는 결정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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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살이 바람개비 되어 춤춘다. 불살춤은 가마의 여신이 사기장에게 신내림을 하는 춤이다. 여신이 불살을 휘두르며 나비처럼 사뿐사뿐, 춤사위를 펼쳐 보인다. 나는 장작으로 장단을 맞춘다. 불살은 강한 회오리가 되어 가마칸을 휘감았다. 휘감은 불살이 크게 용솟음치고 춤사위는 점점 격렬해진다.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휘몰아치는 불살이 폭풍이 되어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나를 삼킬 듯이 날름거린다. 몸이 움찔해졌다. 질세라 사정없이 장작을 불통으로 던졌다. 뻥! 불살이 굴뚝 위로 치솟아 불기둥이 되었다. 불기둥이 밤하늘로 솟구쳤다. 여의주를 입에 문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덕분이다. 도자판에다 목단이 피고 폭포수가 흐르는 자연을 조각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책 1권에서 주인공 신석이 아버지로부터 “용은 가마의 불때기를 보고 만들어낸 상상의 동물이다.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는 가마 속의 도자기다”고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소설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사기장(도공)의 삶을 그린’ 예술가적 소설이었는데 한국과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을 읽어서인지 예송(藝松) 유기정(柳基靖·53) 이천도자기 명장의 첫 인상은 기대가 컸다. 꽁지머리를 매고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채 백발의 한복을 걸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예측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예송(藝松)은 마치 백자처럼 깨끗한 피부색에 소년같이 환한 미소, 분청사기처럼 품성과 음성도 아주 차분하고 고왔다. 평생 도공(陶工)으로 오로지 도자기만을 빚고 구워서일까. 심성 착하고 인자한 영락없는 시골 분교의 선생님이었다. 이천시 신둔면 소정리 92-3번지 그의 아호(雅號)를 딴 ‘예송요(藝松窯)’ 였다. 동네 어귀 2~3곳에 ‘예송(藝訟) 유기정 선생의 젊은 명장 탄생을 축하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이 눈길을 끌었다.
길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어요. 이제와 생각해보니 제 운명같아요” 예송(藝松)은 1975년 故 도암 지순택 선생의 문하로 들어가 요장의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꼬박 3년을 보낸 끝에 4년째 물레를 잡고 조선백자 성형을 완성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4월 제대한 그는 대한민국 명장인 항산 임항택(現사단법인 한국전승도예협회장) 선생의 문하로 다시 들어가 1995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분청사기와 백자를 사사한 후 자신의 아호(雅號)를 따 ‘예송요(藝松窯)’란 이름을 걸고 독립했다. 길은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는 거예요. 선생님의 예술 기법을 따라할 수도 없고요. 오로지 나만의 독특한 창안과 예술 기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하는 것이지요. 뼈를 깍는 아픔이 이때부터 다시 시작돼요. 밤잠을 안자고 빚고 굽고 깨고 칠하고…” 사실 그의 천재적 재능은 1991년 제26회 전국기능경기대회 도자기 공예부문 1위를 수상하면서부터다. 작품이 아닌 기능대회에 참가해 이같이 당당히 입상했다. 예송(藝松)은 이때부터 ‘될 성부른 떡잎’이었고 명장 탄생을 일찌감치 예고했다. 어려움과 갈등의 문제가 새로운 시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1차 체력의 한계점이다. 아마 정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송(藝松)이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7부 능선까지 박찰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반려자인 아내 조경래(50)씨의 덕분이다. 아내가 아닌 동업자다. 폭포수가 흐르는 자연을 조각하기 때문이다. 일컬어 부창부수다. 도자로 맺은 기막힌 부부의 인연이다. 물어봤다. 나오지 않아요. 모든 것을 신과 자연에게 맡기고 그저 결과를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 도공의 진정한 자세입니다. 앞으로의 소망도 오직 일념으로 도자를 만드는 거에요. 특히 분청사기에 각별한 얘정을 갖고 있어요. 도공의 길은 끝이 없어요. 죽는 순간까지 전통과 혼을 잇고 우리 도자가 첨단길술지 어엿한 문화콘텐츠로 주목받을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1958년 경기 이천 출생 1975년 도암 지순택 선생 문하 입문 1983~95년 대한민국 명장 항산 임항택 선생 사사 1995년 예송요 설립 2005년 제3회 세계도자비엔날레 국제교류작가 워크숍 참가 2007년 명지대 산업대학원 도자기 기술학과 수료 2008년 제22회 이천도자기축제 한중교류작가 워크숍 참가 2008년 중국 경덕진 국제교류작가 워크숍 참가 ▲수상 경력 1991년 제26회 전국기능경기대회 도자기 공예부문 1위 1998년 동앙일보사 주최 제26회 동아공예대전 동아공예상 1999년 제10회 여주도자기박람회 세종도예공모전 우수상 2001년 제26회 전승공예대전 장려상 2002년 제2회 강진청자공모전 대상 2002년 제3회 경기도 우수관광기념품 공모전 동상 2003년 제33회 전국공예품대전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 회장상 2004년 제2회 청주공예문화 상품대전 특별상 2008년 제2회 이천도자공모전 동상 ▲전시 2001년 대구 푸른방송 주최 도자기엑스포 참여 명품전 2005년 동아공예동우회 회원전(한국공예문화진흥원) 2006~08년 제11~13회 전승도예협회 회원전 2007~08년 중국 경덕진 현대국제도예전 ▲작품 소장 강진청자박물관, 노르웨이 대사관, 이천시, 명지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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