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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크리에이터

[주간조선] 박칼린 "내가 독하다고? 한밤에 펑펑 울기도 해요"

[주간조선] 박칼린 "내가 독하다고? 한밤에 펑펑 울기도 해요"

  • 입력 : 2010.10.17 15:56 / 수정 : 2010.10.17 17:39
photo 김승완 영상미디어 기자

박칼린 음악감독과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 인터뷰

<이 기사는 주간조선 2126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두 사람, 외모는 다르지만 꼭 오누이 같다. 박칼린(43) 뮤지컬 음악감독과 신시컴퍼니 박명성(47) 대표 이야기다. 박 감독은 최근 KBS 2TV 예능 프로그램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으로 떴고, 박 대표는 ‘아이다’ ‘시카고’ ‘맘마미아’ 등 인기 뮤지컬을 제작해 왔다. 박칼린 감독은 ‘남자의 자격’에서 연예인을 포함한 급조된 합창단을 이끌면서 뛰어난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박 감독은 10월 5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박명성 대표와 자리를 함께 하자 부드럽고 여성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남격’에서 보인 강한 이미지와 좀 달라보였다. 10년 이상 뮤지컬 제작을 통해 팀워크를 맞춰온 두 사람은 업계에서 “연인 사이 아니냐”라는 말까지 듣기도 했다. 박 대표는 “오래도록 둘이서만 작업하니까 그런 것 같다. 박칼린과 작품을 위해 자주 만나다 보니 사귀는 느낌도 든다고만 대답한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이에 대해 “박 대표님은 오빠, 아버지 같은 분이자 제 멘토다. 밤 12시에 전화를 걸어 울면서 고민을 토로한 적도 여러 번 있다”고 말했다. 충무아트홀에서는 박 대표와 박 감독이 힘을 모아 만든 뮤지컬 ‘틱틱붐’이 공연 중이다.
 
박명성/ 뮤지컬계에서는 이미 스타였던 박칼린 감독이 ‘남자의 자격’을 통해 국민적 스타가 됐어요. TV를 잘 안 보는 저도 ‘남자의 자격’은 봤습니다. 저 같은 사람까지 봤으니 시청률이 30%가 넘었겠죠. 박 감독을 TV로 보니까 더 예뻐보이더라고요. 그동안 제게는 화장 안하고 부스스한 모습을 자주 보여줘서 그런가 봐요. 등잔 밑이 어두웠던 거죠. 그건 그렇고 TV는 박 감독 능력을 조금밖에 보여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박 감독은 TV에 나온 것보다 더 ‘고품질 인간’이에요. 그리고 칼린이가 유명해진 건 좋은데 박 감독 인터뷰 섭외가 안 되니까 저한테까지 연락이 많이 와요. 제가 칼린이 매니저도 아닌데 말입니다. (웃음) 아무튼 박 감독과 둘이서 인터뷰 코너에 출연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박칼린/ 박 대표님과는 2000년부터 뮤지컬 작업을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당시 박 대표께서 제게 전화를 걸어 “잠깐 얼굴 볼 수 있을까요?”라며 다가오셨죠. ‘시카고’를 시작으로 이후 ‘렌트’ ‘사운드 오브 뮤직’ ‘아이다’ ‘댄싱 섀도우’ ‘틱틱붐’ 등을 함께 작업하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박 대표님은 제게 ‘밥을 주시는 분’이세요.

박명성/ 박 감독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욕심 내는 스타일이 아니고, 자기와 마음이 맞는 제작사와 꾸준히 작업하는 ‘의리녀’예요. 저는 박 감독과 와인 마시면서 ‘한국 최초의 뮤지컬 음악감독’이고 ‘뮤지컬계의 인간문화재가 될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죠. 박 감독과는 국내 무대에 올릴 해외 작품을 고르기 위해 외국에도 많이 같이 갔어요. 제가 영어를 잘 못하니까 통역도 해줬죠.

박칼린/ 작품 문제로 박 대표님과 단 한 번도 부딪쳐 본 적이 없습니다. 음악에 대한 권한은 모두 제게 넘기세요. 배우 오디션장에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면서도 무대를 진지하게 사랑하고 항상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죠. 수익만 생각했다면 차범석 선생님의 ‘산불’을 뮤지컬로 만든 ‘댄싱 섀도우’ 같은 대작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항상 돈이 목적이라면 일반 사업을 하는 게 낫다고 하시죠.

박명성/ 우리는 부딪칠 것 같으면 서로를 피했어요. 추구하는 곳은 같은데 방법이 잠시 다른 거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저는 지금까지 칼린이가 음악감독을 많이 했으니 뮤지컬 연출 쪽으로 옮겨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작품해석 능력이 뛰어나거든요. 박 감독은 이미 김영하씨의 동명소설을 무대에 올린 ‘퀴즈쇼’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를 연출한 바 있고, 12월부터는 ‘아이다’를 연출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겸직을 했는데 내년부터는 진로를 아예 바꿔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내년에는 ‘렌트’도 맡기고 싶고, 본인만 수락한다면 2012년 무대에 올릴 대형 창작 뮤지컬을 박 감독에게 맡겨볼 생각입니다. 한 예술가의 일대기를 다룬 대작입니다. 원래 오늘 둘이서 저녁 먹으면서 할 얘기였는데 지금 해버렸네요.

박칼린/  저도 오늘 처음 듣는 얘기예요. 하지만 도전하고 싶은 욕구는 있어요. 박 대표님 아니면 대한민국의 어느 제작자가 저를 연출자로 쓰겠어요? 저를 연출자로 쓴다는 것은 모험이거든요. 뮤지컬은 음악, 안무, 연출이 함께 조화를 이뤄 움직이는 것인데, 저는 그중 음악을 주로 맡아왔죠.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 같은 경우 음악 중심으로 이뤄진 작품이고, 워낙 여러 번 무대에 올리다 보니까 제가 연출을 하고 싶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 작품과 ‘노틀담의 꼽추’는 제가 꼭 연출을 해보고 싶었는데, 하나는 이미 했고 다른 하나도 언젠가 하겠죠. 그리고 또 욕심이 생길 겁니다. 저는 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박명성/  도전정신이 강한 박 감독은 신인 발굴에도 적극적이에요. 그리고 박 감독의 장점은 배우들의 소리를 잘 끄집어낸다는 겁니다. ‘남자의 자격’에서 배다해씨(대중가요 가수) 훈련시키는 것 보세요. 실제로 자기 속의 소리를 못 끌어내는 배우가 90%가 넘어요. 박 감독은 정서적으로 이들을 잘 요리해서 소리를 잘 끄집어내죠.

박칼린/  지인들 중에는 TV 보다가 “어쩌면 실생활에서처럼 똑같이 해요?”라고 연락을 해오기도 했어요. 사실 배우들 훈련시킬 때는 TV에서보다 더 심하게 합니다. ‘남자의 자격’ 촬영 때는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뮤지컬 연습 때는 대부분 제가 아는 사람이니까 한마디를 해도 빨리 알아들을 수 있게 하죠. 어떨 때에는 독설처럼 들릴 거예요. 그래서인지 초창기에는 ‘마녀’라는 별명도 있었어요.

박명성/ 마녀라는 말은 박 감독에게 사사하고 성공하지 못한 배우들이 만들어낸 것일 겁니다. 박 감독은 일을 즐기면서 합리적으로 배우의 정서를 이끌어내는 스타일이지 무조건 윽박지르진 않아요.

박칼린/ 가끔 제가 조금 심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제한적으로 약속된 시간과 공간에서 연습하기도 바쁜데 흐트러지게 되면 참을 수 없어서입니다. 적어도 연습실 안에서 흐트러지는 꼴은 잘 못 봐요. 그리고 무섭기는 저보다 박 대표님이 더 무서워요. 내내 참다가 한 방에 날려버리죠.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박칼린 리더십은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가 됐다. ‘여자 히딩크’ ‘칼마에(제2의 강마에-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박 감독은 엄격하면서 공정했고, 신뢰와 소통을 중시했다. 긴장을 풀어줄 때는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안아주었다. ‘남자의 자격’ 합창단이 9월 3일 거제에서 열린 전국합창대회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긴장한 단원들에게 ‘I 믿 You(나는 너를 믿는다)’라며 따뜻한 포옹을 해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따뜻한 카리스마’다. 박 감독은 신뢰할 만한 리더십으로 구성원을 차별하거나 핍박하거나 배제하지 않았고, 그것이 합창단과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신경민 MBC 전 앵커는 최근 트위터를 통해 “박칼린은 매력적인 지도자”라며 “두 달 만에 오합지졸을 근사한 합창단으로 승격시킨 요소는 실력, 열정, 피, 땀이었죠. 혈연, 지연, 학연, 근무연, 술 실력이 아니었죠. 바로 이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박 감독은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저는 항상 반대로 생각해요. 제가 리더가 되겠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에요. 구성원들에게 올바른 언행을 보여줬을 때 비로소 믿음이 생깁니다. 그랬을 때 리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박 대표님 리더십의 경우는 ‘믿음의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을 한번 믿으면 끝까지 믿죠. 또 한번 믿은 사람에게는 잔소리도 안 해요. 그야말로 ‘대인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속이 무척 깊고 크세요.”
 
박칼린/  ‘남자의 자격’도 믿음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구성 자체가 없었어요. 담당 PD와 미팅할 때 저는 ‘진짜 목적이 9월 3일 거제도 합창대회가 맞냐’고 거듭 물었죠. 그러자 PD는 ‘사전 구성도 없고, 아무 요구도 않겠다. 이건 예능이 아니라 다큐’라고 하더라고요. 첫 미팅 세 시간 중 두 시간은 그에 대한 확답을 듣는 거였습니다. 촬영 중 ‘이쪽으로 서주세요’ ‘웃겨주세요’라는 말을 들은 적도 없고, 촬영 현장에서 대본을 본 적도 없어요. 강요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더 큰 인상을 남긴 것 같습니다.

박명성/ 스포츠 명승부처럼 각본 없는 드라마였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이었어요.

박칼린/  방송이 나간 후 저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늘어서 좋지만 사실 방송으로 얻은 인기는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저는 지금 경기도 성남 산골마을에서 애완견 해태와 둘이 살고 있어요. 버스도 안 들어오는 곳입니다. 그만큼 조용히 살고 싶어한다는 거죠. 방송이 나간 후 인터뷰 요청이 수백 건은 들어왔을 거예요. 하지만 했던 얘기를 또 해야 하는 인터뷰는 이제 정중하게 사양하고 싶습니다. 오늘 인터뷰는 박 대표님과 함께 해서 신선한 것 같아요. 저도 몰랐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명성/  저희에게는 강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어요. 대부분의 뮤지컬 제작사 대표는 오디션장에 들어갑니다. 저는 박 감독을 믿기 때문에 안 들어가요. 2배수 정도 뽑아 놓고 저와 상의하지만 그때도 박 감독이 추천한 사람을 다 뽑아요. 나는 칼린이를 믿으니까. 그리고 신시컴퍼니는 대중스타 기용률이 낮습니다. 실력 위주로 뽑기 때문입니다. 대표가 관여하다 보면 대중스타를 더 많이 뽑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스타 마케팅을 통한 홍보가 되니까요.

박칼린/ 가요계에서 온 옥주현의 경우는 노래도 잘하고 머리도 좋아서 뮤지컬 배우로 잘 정착한 케이스입니다. 연말부터 8개월간 무대에 올릴 ‘아이다’에서도 주인공 역을 맡았어요. 요즘은 더블 캐스팅(2인), 트리플 캐스팅(3인)은 물론 쿼드러플 캐스팅(4인)까지 하지만 옥주현은 8개월간 혼자 공연할 겁니다.

박명성/ 주현이를 발탁할 때 주변에서 반대가 많았지만 그녀는 성실함으로 캐릭터를 자기 것으로 소화시킬 줄 아는 배우예요. 저와 박 감독은 인성을 중시해요.

카리스마, 리더십, 무대 사랑 외에도 두 사람의 닮은점이 너무나 많다. 무용으로 예술을 시작했고, 도전 정신이 투철하며, 신체적으로 큰 위기도 겪었다.

박명성 대표는 2005년 위암선고를 받았다. 박 대표는 ‘갬블러’ 일본 초청공연과 ‘아이다’ 국내 초연을 앞둔 시점에 스태프와 직원들에게 부담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해서 40일간의 ‘갬블러’ 공연을 마칠 때까지 수술을 받지 않고 끝까지 그의 임무를 다했다. 이후 10개월 지난 뒤 우연하게 그의 위암수술 사실이 밝혀지면서 ‘아이다’ 쫑파티는 눈물의 파티가 됐다고 한다.

박명성/ 2005년에 위암수술을 했는데 다 나았습니다. 그때 아무에게도 말 안 했어요. 2주 동안 영국에 갔다 온다고 해놓고 수술을 받았죠. 지금은 폭탄주 30잔까지 마실 수 있어요.

박칼린/ 당시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제게도 말씀을 안 하셨어요. 큰 공연을 앞두고 우리가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이야기를 안 하신 거죠. 제 건강에 대해서는 이미 언론에서 관까지 짜주셨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끄떡없습니다. 신장이 조금 안 좋지만 아픈 사람 치고는 매우 건강해요. 박 대표님과 제 체력을 배우들이 못 따라갈 정도입니다.

박명성/ 전 서울예대 무용과를 나와 배우를 잠시 했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아 빨리 접었어요. 무용은 배우가 되기 위해 시작했죠. 그러다가 극단 신시의 김상열 대표님을 만났는데, 선생님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 제가 극단을 맡게 됐고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그 과정은 제가 쓴 책 ‘뮤지컬 드림’에 모두 담았습니다.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기 전에 항상 메모를 해두는 습관이 있어요. 술을 마시고 늦게 집에 들어가도 잊어버릴까봐 꼭 노트에 메모를 해두죠. 그 메모들이 모여서 책이 됐습니다.

박칼린/ 저는 어릴 적에 한국 무용을 했어요. 뮤지컬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했습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공부했어요. 부산 초량초등학교를 2학년까지 다니다가 미국으로 갔고, 다시 한국으로 와서 경남여고에 다녔어요. 대학은 미국에서 나왔고, 대학원은 한국에서 다녔어요. 대학교 때 잠시 항공기 조종을 배우기도 했어요. 어려서부터 우주를 탐험하고 싶었고, 첫 단계로 비행기를 조종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자들만 다니는 파일럿 학교에 들어갔고, 혼자서 비행기를 조종해서 하늘을 날아봤어요. 요즘에 뮤지컬 작품을 올리는 것처럼 짜릿했어요.
 
박 감독은 1967년 미국 LA서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아이렌)에게서 언니들(킴벌리, 캘리)과 함께 첼로와 피아노를 배웠다. 칼린이라는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셨다. 칼린은 ‘아일랜드 소녀’라는 뜻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예술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했고 서울대 대학원(국악 작곡)에서 명창 박동진으로부터 판소리를 사사했다. 지금은 ‘킥 뮤지컬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으며 호원대 방송연예학부 뮤지컬학과 교수이다.
 
박칼린/  딸만 셋인데 집에서는 차별이라는 게 없었어요. 모든 게 실력 순이었죠. 부모님께서는 당신들의 잘못도 이야기할 수 있게 하셨고, 어떤 일이든 충분히 설명해주셨어요. 충분한 설명을 들으니 매사 불평이 없었고, 세상에 말로 해서 안 될 일이 없다는 믿음도 생겼습니다. 진심 어린 말로 소통해서 안 되는 일은 없죠.

박명성/  박 감독은 모험정신이 무척 강합니다. 저는 박 감독이 앞으로 연극 연출도 하길 바라요. 저희 회사는 연극도 많이 제작하기 위해 2009년 이름을 신시뮤지컬컴퍼니에서 신시컴퍼니로 바꿨어요. 작년에는 최정원의 ‘피아프’, 손숙·추상미의 ‘가을 소나타’ 등을 올렸고, 올해는 ‘대학살의 신’ ‘33변주곡’ ‘엄마를 부탁해’ 등을 올립니다.

박칼린/ 제 좌우명은 ‘어제처럼 살지 말자’입니다. 그리고 ‘일할 때는 열심히, 놀 때도 열심히’가 삶의 모토예요. 놀 때는 확실히 놀아요. 지난 6월에는 2주 동안 완전히 사라졌었죠.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나라의 섬에 가서 2주 동안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요. 수영하고, 먹고 잔 게 전부였죠.

박명성/ 앞으로 박 감독은 연출자로 진로를 바꿨으면 좋겠고, 나중에는 뮤지컬 배우도 했으면 좋겠어요. 노래를 잘하니까 전혀 문제 없을 겁니다.

박칼린/ 오늘 인터뷰를 통해 처음 알았어요. 저도 무용으로 시작했고 대표님도 무용으로 시작했네요. 우리는 정말 여러모로 비슷한 게 많아요. 저도 최근 배우로 무대에서 서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저랑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네요.

박명성/ 박 감독은 뭐든지 열심히 잘하는 사람이에요. 음식도 참 잘해요. 빵도 맛있게 굽고. 

박칼린/ 요리를 좋아해요.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거잖아요. 그리고 마트에서 식품 살 때 뒤에 적힌 재료를 보는 걸 좋아해요. 어떤 성분으로 이뤄졌는지를 보는게 재미있어요. 요리를 좋아하는 제게 나이도 꽉 찼는데 왜 결혼 안 하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주변에 남자가 없어요. 심지어 키우는 개도 암컷이에요. 하지만 저는 외로웠던 적이 없어요. 제 군단(킥 뮤지컬 스튜디오 직원들)이 있어서 항상 행복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왜 브로드웨이에 가지 사서 고생이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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