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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명사

"세계 10억명 문맹 해방 위한 국제기구 만들 것"

"세계 10억명 문맹 해방 위한 국제기구 만들 것"
[인터뷰] 전택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 "문화유산엔 패자부활전 없다"
10.11.06 17:13 ㅣ최종 업데이트 10.11.06 17:13 최육상 (run63) / 김준희 (thewho)

  
전택수 사무총장은 "유네스코에서 우리나라 위원회가 탁월한 1등"이라고 강조했다.
ⓒ 최육상
전택수

"전 세계 문맹 인구가 10억 명에 달하는데, 이들은 글을 읽지 못함으로써 자신들의 인권이 어떻게

짓밟히는지도 모르고 있다. 더구나 문맹자 중 3분의 2에 달하는 여성들은 글을 몰라서 피임기구 등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에이즈(AIDS)에 쉽게 노출된다. 앞으로 문맹퇴치를 위해, 우리나라에 '전 세계

 문해교육 양성소 국제기구'를 만들 생각이다."

 

전택수(59)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은 4년 임기의 반환점을 막 찍은 지금, 남은 2년의 임기 동안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구로 '문해(文解)교육 양성소'를 한국에 세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유네스코에 족적을 남긴다면 문해교육이 될 것"

 

전 총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1945년 80%에 달하던 문맹률이 소설 <상록수>에 나오는 것처럼 청년들의

 노력 덕택에 2010년 현재 1.5%로 줄었다"며 "내가 유네스코에 족적을 남긴다면 바로 문해교육 사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기구 설립에 대한 전 총장의 자신감은 이미 검증된 바 있다. 지난 5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문화예술

교육대회'의 결과물인 '서울 어젠다: 예술교육 발전목표'를 골자로 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이 내년에 유네스코 총회 인준을 받게 될 예정인데, 바로 이것이 전 총장의 작품이다.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쥐고 국제기구에 정책 제안을 하고 이 같은 평가를 받은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인 것 같다. 애초 우리나라의 주도로 미국, 라트비아 등 5개국이 공동발의를 했다. 그런데 내가

유네스코에서 제안연설을 7분 정도 하니까 각국 대표자들이 서로 끼워달라고 해서 27개국 정도로

늘어났다. 문화예술교육주간이 선포되면 우리나라의 위상도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다."

 

전체 직원 90명의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이하 위원회)는 유네스코에 가입한 194개 국가 중 최대

인원을 자랑한다. 전 총장은 "독일이 40명, 일본이 20명 정도에 머물러 여러 사업을 진행하기 힘들지만,

 우리 위원회는 유네스코 본부의 거의 모든 사업에 1대1로 대응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가장 저렴한

외교무대'인 유네스코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한국이 유네스코에 납부하는 2년 분담금은 90억 원 남짓. 전 총장은 "90억 원을 납부하고 우리나라가

거둬들이는 성과는 엄청나다"며 "유네스코는 유엔과 달리 모든 결정이 1국 1표로 행사되는데,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를 돕고 있는 우리나라의 영향력은 유엔에서 행사하는 영향력과 비교했을 때

몇 십 배 효과가 더 나온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는 교육, 자연과학,
 인문사회과학, 문화, 정보커뮤니케이션 등 5개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문해교육,
에이즈 예방 교육, 자연재해 감축, 유산 보호, 표현의 자유, 모든 이를 위한 정보 프로그램 등은
유네스코의 후원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네스코 가입 60년 만에 달라진 한국의 위상

 

  
서울 명동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건물 앞에 새겨진 '유네스코 길' 동판.
ⓒ 최육상
유네스코

한국은 1950년 6월 14일 세계에서 55번째 국가로

유네스코에 가입했다. 그러나 유네스코에 가입한 지

불과 11일 만에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마주하고 만다.

전쟁으로 한국은 잿더미가 되었지만, 유네스코는

국가위원회 설치 여부에 관계없이 한국에 대한 긴급

원조를 결의해 교과서 인쇄공장 설립을 지원하는 등 

한국 교육 재건에 기여했다.

 

한국위원회는 1954년에 설립되었고, 이후 1967년에는

명동 한복판에 유네스코 회관을 짓기에 이른다. 전쟁 후

세계의 지원을 받던 가난한 국가였던 한국은 지금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여러 후진국을 돕고 있다. 실제로 전

총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

 

다음은 유네스코 가입 6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27일 유네스코 사무총장 접견실에서 약 2시간에 걸쳐 전택수

 총장과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시종일관 진지하면서도 활력이 넘치는 전 총장의 답변에서는 

한국위원회의 위상이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것이 물씬 묻어났다. 전 총장의 자부심이 잔뜩 묻어나온

것도 당연한 일.

 

전택수 사무총장은?

1951년 출생.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금융정책) 석사.

뉴욕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금융정책) 박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서울문화재단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한국문화경제학회 회장과 한국경제교육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 올해가 유네스코 가입 60주년인데 위원회는 어떤 사업에 주력하고 있나.

"유네스코는 전체 사업 중 교육사업이 40% 정도를 차지한다. 유네스코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로서 교육에 우선적 가치를 두고 있다. 2005부터 '지속가능발전교육(Education for Sustainable Development, ESD)'과 '모든 이를 위한 교육(Education For All, EFA)'을 10개년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지속가능발전에 대해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믿지 않는다. 그들은 '환경 보호'는 경제가 발전하면 자연스레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속가능발전에 경제논리를 접목하려고 계속 노력해 왔다. 나는 대학교에서 사범대학을 나왔고, 경제학으로 박사를 받아 교육과 경제의 접목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 위원회의 국내외 활동과 위상은 어떠한가.

"내가 초등학교 때 공부했던 교과서가 알고 보니 바로 유네스코가 지원한 것이었다. 1961년 버클리대

한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당시 후진국 74개국을 뽑았는데 우리나라는 밑에서 14번째였다. 그런데

봐라. 우리나라는 50년 만에 실로 놀라울 정도로 성장해서 이제는 아프리카에 문맹 퇴치를 위해

청년단을 파견하고, 북한에 종이와 인쇄기를 지원하고 있다. 북한은 우리의 인쇄기로 3년 전에야 처

음으로 컬러로 된 책을 찍을 수 있었다.

 

지난해 위원회는 '모의 유네스코 총회'를 최초로 도입해 진행했다. 국외 40명, 국내 40명 등 80명의

학생들을 일주일간 합숙시키며, 4명씩 일본, 중국 등의 국가대표로 세워 20개국의 의견을 반영하도록

 토론을 시킨다. 무조건 자신이 맡은 나라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방식이다. 그 결과물을 가지고

 선언문을 만들고. 또한 위원회는 우리와 네트워크 협정을 맺은 전 세계 200~300개 NGO를 통해

1년에 500~600명의 대학생들을 참여시키는 '워크 캠프(Work Camp)'도 운영하고 있다."

 

  
1950년대 유네스코가 지원해 제작한 초등학교 교과서와 지원 내용을 담은 판권지.
ⓒ 최육상
유네스코

 

"문화유산에는 패자부활전이 없다... 세계유산 지정의 목적은 '보존'"

 

- 최근 유네스코와 관련해 좋은 일이 많다. 유네스코가 광릉숲은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양동과

하회마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제주도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정했는데, 어떻게 추진했나.

"'양동과 하회마을'은 처음에 '보류' 판정을 받았다. 세계유산은 등재 가능, 보류, 반려, 불가 등 4단계의

 권고안으로 나뉘는데, 보류 판정을 받게 되면 통상적으로 보완해서 다음해에 등재 신청을 한다.

 

그러나, 지난번에 브라질에서 열린 21개 국가로 구성된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토론 없이 100%

찬성으로 통과됐다. 문화재청, 경주시 등과 함께 발 빠르게 문제점을 해결하고, 21개 국가 대표들에게

편지를 보내 협조를 구한 게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는 걸 보여준다."

 

- 위원회는 세계유산 등을 보존하도록 돕고 있나.

"문화유산에는 패자부활전이 없다. 세계유산을 지정하는 기본 목적은 당연히 '보존'에 있다. 한 번

훼손되면 다른 분야처럼 부활할 수 없다. 경주 양동마을의 경우, 하루에 몇 천 명씩 다녀간다는데…

세계문화유산이 아니었다면 사람들이 알았겠는가. 보존한다며 무조건 차단할 수는 없지만, 소화할 수

 있는 시설, 견딜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은 30분 단위로 예약을 받아 관람을 시킨다. 한 달 전에 예약해야 하고.

중국의 '둔황 막고굴'도 적절한 통제를 하고 있다. 정확하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영어로 쓰인

홍보물을 보니 '막고굴 모조품'을 만들어 자유롭게 관람을 시키기도 하고.

 

우리도 석굴암을 완전 복제해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니면 체험관을 3D로 만들어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문화유산은 창의성의 원천이다. 그것도 수백, 수천 년의 체험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창의성은 훌륭하지만 수십년간의 경험과 체험에 머무르지

 않나. 화순 고인돌만 봐도 스토리텔링이 무궁무진하다. 세계유산은 좋은 방안을 만들어 체험하도록

해야 한다."

 

  
1950년대 유네스코에게 받았던 따뜻한 손길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북한에 인쇄용지를 공급하며 되돌려주고 있다.
ⓒ 최육상
유네스코

평화를 위하자는 세계유산이 분쟁의 씨앗, 공동 등재로 해결 노력

 

- 최근 세계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아졌다.

"인류무형문화유산은 우리의 인간문화재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고, 세계기록유산도 우리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많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세계유산은 기본적으로

보존하며 평화에 이바지하자는 것인데, 최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마찰이 생기고 있다. 특히 싸움이

심한 분야가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단오제(2009년 한국)에 문제를 제기하는 중국이 그렇고, 거꾸로

조선족농악(2009년 중국)를 바라보는 우리가 그렇다.

 

평화를 위하자는 것이 분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공동 등재' 아이디어를 유네스코에 주고 있다.

바레인이 추진하고 있는 '매 사냥'을 몽골과 한국도 공동으로 등재하려고 한다. '실크로드'도 1단계로

중앙아시아를 먼저 등재한 뒤 2단계로 한국과 일본을 함께 넣으려고 한다."

 

- 어떤 계기로 유네스코 일을 하게 됐나.

"'문화경제학 논리'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원에서 경제를 공부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19년을 일하면서, '전통문화와 경제발전'에 대한 연구를 했다. 김구 선생은

일찍이 '문화강국'을 말씀하셨지만, 문화는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20세기 문화예술이

소비와 여가였다면, 21세기 문화예술은 소득이 증가하고 인터넷망이 발달하면서 감성을 자극하고

다양성을 충족할 수 있는 형태로 바뀌었다.

 

문화와 경제를 연구하고 논리를 만들다 보니 '한국문화경제학회' 회장도 맡게 되고, 문화예술의

창의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게 됐다. 창의성은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소규모 창의성이라도

쓰인다. 예술가들은 절대로 똑같은 것은 안 한다. 예술교육은 모든 것의 기본이다. 문화예술가들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 위원회의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과거에 공부를 좀 하려고 했던 사람은 반드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 들려 쿠폰으로 바꿔 원서를 사야 했다고 한다.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유네스코

"전체 예산은 156억 원 정도 된다. 위원회 건물 임대수익이 70억 원, 정부 보조금이 올해의 경우 9억5000만 원이고, 나머지 70억 원 정도는 자치단체나 기업 등에서 협조를 받고 있다. 건물관리에 20억 원 정도, 인건비에 40억 원 정도를 쓰고 있는데, 우리 위원회는 고정적인 임대수익이 있어 어떤 사업을 벌여도 그나마 탄력 있게 운용할 수 있다. 자기 건물이 있는 건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

 

아시안게임과 관련해서 '체육을 통한 평화' 세미나를 열자는 인천시의 제안, 유네스코 창의도시에 선정된 전 세계 25개 시장단 회의를 주최하자는 서울시의 제안, '5·18 인권도시'를 만들자는 광주시의 제안 등 유네스코의 사업이 주목을 받으면서 최근 사업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 인원이 부족한데, 예산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인원을 늘리기 어려운 고민이 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유네스코에서 탁월한 1등"

 

- 지난 10월 22일 취임 2주년을 막 넘겼다. 2년간을 돌아보면 어떤가.

"우선 직원들의 탁월함에 고맙게 생각한다. 말이 좀 그렇지만, 훈련이 잘돼 있다. 삼성전자, 엘지

엘시디, 현대자동차, 포스코 철강 등이 세계 1등이라는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세계에서 탁월한 1

등이다. 직원 90명이 유네스코 본부에서 벌이는 사업들에 1대1로 대응하고 있다.

 

세계에서 우리의 위상은 생각보다 대단하다는 걸 많이 느낀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유네스코에서

지원금을 받았는데, 이젠 졸업해서 오히려 문화재청, 강릉시(단오제) 등이 특별 분담금을 지원하고

있다. 북한의 고구려 고분벽화가 많이 훼손되었는데, 유네스코에 자금 지원을 해서 이탈리아 전문가를

파견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민간단체인 위원회를 통해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전택수 사무총장은 유네스코 산하 '문해교육 양성소 국제기구'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최육상
전택수

- 끝으로 하실 말씀은.

"우리나라의 위상은 유네스코에서 매우 높다. 아프리카 10개국에 청년단을 파견하는 것이나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의 나라에 우리의 노하우를 지원하는 것 등은 여러 가지로 중요하다. 나중에 우리와 일본이 문제가 생겼을 때 이들은 우리 편을 들 것이 확실하다. 1인 1표니까.

 

'봉사활동을 통한 글로벌한 지역전문가 양성(브릿지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후진국 전문가는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기업도 투자를 안 한다. 그래서 우리가 하자고 그랬다. 올해 18명을 선발해 해외로 보냈다. 내년에는 25명, 그리고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와 협조가 이뤄지면 400명을 보내려고 한다. 2년에 2년을 추가해서 4년 정도 있게 되면 지역전문가가 되어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면 외교 인재로서 외교부나 삼성, 엘지 등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