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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된 연출로 뜬 韓流도 스토리 없으면 오래 못 가"

"세련된 연출로 뜬 韓流도 스토리 없으면 오래 못 가"

콘텐츠진흥원 스토리 창작센터 운영위원 윤석호 PD
우린 희로애락 강한 민족, 그게 터지면 막강한 힘
인물·대사·설정은 작가 몫… 자신이 공감했던 걸 써야

"한류(韓流) 드라마가 가능했던 건 우리나라 특유의 세련된 연출력 때문이었죠. 하지만 스토리가 받쳐주지 못하면 그 인기도 단명하고 맙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원작'을 발견해야 진정한 중심을 잡을 수 있죠."

'영상미의 대가'이자 '원조 한류 드라마 연출가'인 윤석호(53·윤스칼라 대표) PD는 "현재 우리나라 드라마는 극적인 강도(强度)를 높이는 데만 치우쳐 있고 밀도(密度)를 높이는 데는 소홀하다"며 "최근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가 넘치고, 막장·대작 드라마만 나오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라고 했다. 그는 현재 한국콘텐츠진흥원 스토리창작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 스토리공모대전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다.

‘가을동화’‘겨울연가’로‘드라마 한류 시대’를 열었던 윤석호 PD. 한국콘텐츠진흥원 스토리창작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개발 중이다. /윤스칼라 제공

2000년대 초반 '가을동화' '겨울연가'로 본격적인 한류 시대를 연 연출가이지만 그는 "영화든, 드라마든 기본적으로 모든 대중예술은 스토리의 예술"이라며 작가의 역할을 크게 평가했다. "왜 정부와 언론사가 나서 스토리를 공모할까요? 그만큼 문화 콘텐츠가 강력한 파워를 갖는 시대가 됐다는 거죠." 그는 "스토리창작센터에서 작가들은 서로의 작품을 비평하며 자극을 주고, 운영위원(멘토)들은 작가들에게 더 나은 콘텐츠가 되는 방향을 제시해준다"고 했다.

25년 경력 드라마 연출가의 눈으로 봤을 때, 호흡이 짧고 빠른 우리나라 드라마 제작 여건상 스토리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스타 PD가 작가에게 개략적인 기획을 던질 수는 있겠죠. 하지만 캐릭터를 구체화하고 안타까운 대사와 상황을 만드는 건 결국 스토리를 만드는 작가의 힘이에요. 게다가 영화처럼 드라마는 대본을 다 써놓고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에 대한 의존도가 심해지죠."

그는 '요즘 한류 열풍이 한풀 꺾였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오직 '수익'을 목적으로 만든 드라마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겨울연가'의 엄청난 성공 신화를 노린 '맞춤형 드라마'들이 잇따라 제작되면서 오히려 한류 경쟁력을 깎아 먹고 있다는 것이다. 윤 PD는 "'겨울연가'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하면 더 감동을 줄까'라는 일차적인 고민만 했다"며 "하지만 지금 제작사들은 '해외에 먹히려면 누굴 캐스팅해야 하나' '어떻게 만들어야 투자를 이끌어내나'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자극적인 설정이 넘치는 '막장 드라마'에 대해서도 "길 가다 불구경, 싸움구경 하고 의미 없이 흩어지는 대중 심리와 비슷한 것 아니겠느냐"며 "당장 눈길을 끌기 위해 강렬함만 강조하는 작품은 절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제2의 한류'에 대해선 비교적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한국인의 감성'만큼 드라마틱한 힘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희로애락이 강한 민족 아닙니까. 쉽게 흥분하고 쉽게 슬퍼하는 감정의 진폭이 큰 사람들인데, 이게 바로 드라마에서 터지면 엄청난 힘이 되죠."

그는 "최근 '한류 드라마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기존에 있는 소재를 너무 편하게만 발굴하려고 하는 안이함도 한몫했다"며 "개인적으로 최근 방송된 '제빵왕 김탁구'처럼 긍정의 에너지와 창작의 힘을 동시에 보여준 스토리를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순수한 사랑과 동화 같은 영상미로 자기 색깔을 확고히 한 그이지만, 최근엔 작품 활동을 쉬고 있다. 사계절 연작 시리즈 중 마지막 편인 '봄의 왈츠'(2006)를 끝으로 만 4년째다. 그는 "급변하는 시청자 요구를 어떻게 담아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 중"이라고 했다. "사랑에 대한 꿈과 동화 같은 판타지를 버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 꿈은 그대로 유지하되,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서 고심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스토리공모대전에 지원하는 이들에게 "가짜를 하지 말고 진짜를 하라"고 당부했다. "내가 가장 공감하는 부분을 써야 잘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처럼 하겠다'가 아니라, 내가 경험했거나 공감했던 것을 붙들어야 합니다. 화려한 스킬이나 테크닉은 나중에 얼마든지 익힐 수 있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마치 내 이야기하듯 하는 진정성을 발휘하면 통할 겁니다."

● 스토리 창작센터는…
작가 31명 집필 공간… 공모대전 입상작 영상화·상품화도 추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은 입상 작가들에 대한 체계적 관리를 통해 거대한 이야기의 씨앗이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 7월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에 스토리 창작센터를 개관했다. 1회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입상한 작품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영상화, 상품화하기 위해 마련된 시설이다.

서울 목동의 스토리 창작센터에서 입주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간담회를 갖고 있다. 이곳에는 모두 8개의 공동작업실이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제공

이곳에서는 드라마 '겨울연가'의 윤석호 PD, 금강 한국대중문학작가협회장, 김태원 푸른 여름 콘텐츠 홀딩스 대표이사 등 9명의 운영위원이 개별 스토리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발전 전략을 수립하며 각 작가들을 직접 지도하고 있다. 총 743㎡의 이 시설은 3인실, 4인실, 6인실 등 모두 8개의 공동작업실을 갖추고 있다. 31명의 작가들이 동시에 의견을 나누며 집필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런 과정을 밟고 있는 1회 스토리 공모대전 입상 작가들은 지난 11일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에서 제작사, 투자사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가졌다. 대상 수상작 '철수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양제혁 작가를 비롯, '침묵'의 박영두 작가, '금녀의 집'의 송수연 작가 등이 자신들이 쓴 작품의 매력과 상업적 가능성을 일목요연하게 알렸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등 주요 투자·제작사에서 나온 120여명이 신인 작가들의 상상력을 평가하기 위해 모여들었다"며 "이날 행사 과정에서 작가들에게 많은 질문이 쏟아졌으며 비즈니스 미팅이 20건 이상 잡히는 등 긍정적으로 투자를 검토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스토리 창작센터는 공모대전 입상 작가들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PD, 작가들을 위해 각종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올해 말까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 사이버 범죄, 우주항공, 생명공학, 뇌과학, 국제교류사 등 드라마가 다룰 수 있는 이색 소재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콘텐츠 창의 워크숍'을 진행한다. 법의학자, 의사, 과학자, 심리학자, 보안전문가 등이 강사진으로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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