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로컬 /중국

[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23) “현미경으로 본 혼다 파업”

[한우덕의 13억 경제학] 중국경제 콘서트(23) “현미경으로 본 혼다 파업” [JOINS_디지털뉴스센터]

입력시각 : 2010-09-13 오전 9:23:52

중국 진출 업체에 노무관리 비상이 걸렸습니다. 파업을 걱정해야 하고, 임금 인상에 골치를 썪습니다. 그러나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무엇인가 대책을 세워야하고,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현장에서 배워야 합니다. 분규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지요. 타산지석입니다.
저는 오늘 현미경을 가져옵니다. 현미경을 통해 '난하이(南海)혼다'의 파업을 보고자 합니다. 왜냐고요? 지난 5월 17일 터져 6월 4일 끝난 이 회사 노동자들의 파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 노동파업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알아야 대책을 세울 것 아닙니까? 난하이혼다를 통해 내일 중국 투자사업의 노사관계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5월 광둥(廣東)성 노동계는 뒤숭숭했습니다. 올해들어 대만 계 전자부품 업체인 폭스콘에서 노동자들의 자살이 이따랐던 때문입니다. 신문에 보도된 것 만 벌써 1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함께 근무했던 친구가 죽어나가고 있는데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삼삼오오 오오 모여앉아 수근거리는 게 전부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을 죽음으로 내 몬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중국은 공산당이 만든 나라입니다. 누가 그 당을 만들었지요? 노동자와 농민이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정책 최우선 순위를 (최소한 표면적으로는)노동자와 농민에 둔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농민공(農民工・농촌출신 도시근로자)이 거대 산업군단으로 등장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노동자'개념이 모호해진 겁니다.
농민공들은 공장에서 일하니까 분명 노동자 계급에 속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분은 농촌 후코우(戶口・주민등록)를 가진 농민일뿐입니다. 도시 주민이 누리는 각종 혜택도 받지 받지 합니다. 노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농민도 아닌 어정쩡한 계급이지요.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들은 본인 스스로를 '농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돈 벌면 농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돈을 벌면 모두 시골로 보냅니다. 아이들은 시골에서 부모가 맡아 키우고 있지요.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들이지만 본인 스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억3000만 명의 농민공들이 '계급 실어증'에 빠졌던 겁니다.
그들은 굴종을 강요받았습니다. 노동조합이라는 공회도 그들을 대변하지 못했습니다. 성장을 외쳐대는 정부는 그들을 외면했고, 법은 멀리 있었습니다. 근무환경이 열악할 수밖에요. 저항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와 같은 대체 가능 노동력은 얼마든지 널려있으니까요. 이같은 무기력이 폭스콘 근로자 12명을 자살로 몰아넣은 원인입니다.
그러나 난하이혼다 근로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죽음보다는 저항을 선택했습니다. 파업을 벌였고, 시위를 했던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우리는 파업을 주동했던 한 청년을 주시하게 됩니다. 이름은 탄즈칭(譚志淸). 24세 후난(湖南)성 출신입니다.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다만 중국언론은 그렇게 가명을 쓰고 있습니다.
탄즈칭이 난하이혼다에 근무한 것은 2년 4개월 쯤 됩니다. 대학교 시험에서 낙방한 뒤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집이 가난했기에 달리 선택이 없었지요. 일자리를 찾아 광둥행 기차를 탔고, 난하이혼다로 오게 됐습니다.
2년 반동안 3차례 임금이 올랐답니다. 19위안, 29위안, 48위안. 그래서 그가 한 달 받는 급여는 1300위안이었습니다. 이 마져 세금을 제외하면 1100위안, 우리 돈 20만원 정도 합니다. 중국 농민공의 현실입니다.
죽어라 모았지요. 방값으로 200위안, 식비로 200위안을 제외한 나머지 돈은 모두 고향 부모님에게 부쳤습니다. 돈을 쓴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지요. 그는 중국신문주간이라는 잡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혹 시내 번화가를 가게 되면 가급적 빨리 걸었다"고 했습니다. 무엇인가를 보게 되면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될 테니까요.
그래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식청년'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그였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에 대한 회의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후난성 출신인 마오쩌둥의 혁명 열기를 가졌던 것일까요? 그는 무엇인가를 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탄즈칭은 지난 3월 '거사'계획을 같은 후난성 친구인 샤오샤오(小宵)에게 털어놓습니다.
"난 퇴직하기로 했다. 그러나 남아있는 동료의 복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샤오샤오가 '나도 같은 생각'이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이미 지난 3월부터 이 회사의 파업은 준비되고 있었던 겁니다. 같은 지방 친구끼리 잘 뭉치는 성향이 있습니다. '동향출신의 직원들끼리 모아놓으면 꼭 일이 생긴다'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4월 29일. 탄즈칭은 사표를 냅니다. 그러나 금방 그만둔 것은 아닙니다. 사표 제출일부터 한 달 후 사표가 수리된다는 회사 규정 때문입니다. 사표를 냈지만 회사는 출근하는 상황, 그 속에서 그는 '동료의 복지 향상을 위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5월 17일.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새벽 근무 출근길 노동자들은 피로에 찌든 모습이었습니다. 그 버스에 탄즈칭도 타고 있었습니가. 평범한 하루, 그러나 그의 인생을 건 하루가 시작된 겁니다.
그 날 난하이혼다 공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다음 칼럼으로 이어집니다.

한우덕
Woody Han(無敵漢)

저희 중앙일보 중국연구소는 '차이나 인사이트'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매주 2회 중국 관련 다양한 뉴스와 이야기, 칼럼 등을 묶어 이메일로 전해드립니다. jci@joongang.co.kr로 신청하시면 보내드립니다. 보내실 때 성함, 하시는 일, 연락처(전화번호) 등을 간단히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