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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 /드라마

시청률 높을 탁 시청률 구할 구

시청률 높을 탁 시청률 구할 구

한겨레21 | 입력 2010.08.20 18:11

[한겨레21] '현대적 속도'에 전근대적 이야기 담은 < 제빵왕 김탁구 > , 시청률 기록 경신 중

"탁구라 지으면 되겠구만. 높을 탁에 구할 구!"

신문을 보던 회장님이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점지하셨다. 한국방송 수목드라마 < 제빵왕 김탁구 > (밤 9시55분)가 높은 시청률을 구가하며 '시청률 왕'이 되었다. 8월4일 수요일 17회 방송분에서 40%(TNmS 조사)를 넘긴 뒤 상승세다. 5일 18회가 44.4%, 11일(19회)이 44.9%, 12일(20회)이 44.6%다. 10년간의 한국방송 수목드라마의 평균 시청률에서 그 이전까지 1위였던 < 장밋빛 인생 > 을 넘어섰다. 시청률이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내부에서는 연장 방영도 검토됐다. 결론은 연장 없는 30회, 9월16일 종영한다. 전 국민의 반이 보는 드라마 < 제빵왕 김탁구 > 가 이제 10회를 남겨뒀다. 남은 회에서 해결해야 할 사건도 숨이 가빠 시청률 고공 행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직 드라마'의 원동력은 음모술수

드라마는 6회까지 김탁구의 출생과 성장, 이를 둘러싼 음모를 그린다. 6회로 넘어오면서 '빵 만드는 전문직 드라마'의 모양새로 바뀌었다. 하지만 다음 편을 보게 하는 원동력이 음모와 술수로 이어지는 복수극이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막장 드라마'로 속도에 단련된 시청자에게도 이 드라마는 빠르다. 19회 한 회에만도 여러 건의 음모술수가 엎치락뒤치락한다. 자잘한 음모의 중심 구마준(주원)은 회사 내 연구소에 개인적 임무를 주문했다가 금세 아버지 구일중(전광렬)에게 발각돼 훈계를 듣는데, 그날 또 팔봉 선생(장항선)의 제빵 노트를 훔쳐본다. 신유경(유진)의 방에 깡패가 여럿 들이닥쳐 폭력적으로 협박하고, 유경은 이를 항의하러 사모님 서인숙(전인화)을 찾아간다. 김탁구의 어머니 김미순(전미선)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며 앞으로 있을 복수극의 전조를 울린다.

드라마의 속도는 현대적이되 이야기 내용은 1970~80년대적이다. 배경이 그에 준하는 점에서는 '정직한' 드라마다. < 제빵왕 김탁구 > 는 1970~80년대가 배경이다. 이 드라마의 배경이 직접적으로 암시되는 것은, 서영춘을 따라 하는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떠도') 장면과 운동권 대학생이라는 설정(1980년대)이 다다. 더 '시대적'인 것은 정서다. 전근대적 정서는 드라마의 근본 갈등을 낳았다. 거성그룹의 회장 구일중은 아내 서인숙이 둘째딸을 낳은 비 오는 날, 만취한 상태에서 집안의 간호사를 범한다. 이 사건으로 간호사 김미순은 김탁구(윤시윤)를 임신한다. 서인숙은 도사에게서 "다른 사람에게서 아들을 얻으리라"란 말을 듣고,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한승재 실장(정성모)을 유혹해 아들 구마준을 얻는다. 서인숙은 간호사에게 아이를 지우라 하고, 그게 안 되자 간호사를 죽이려 하고, 다시 찾아온 김탁구를 외항선에 태워 보내라 하고, 자신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시어머니(정혜선)를 죽인다. 이 모두가 "딸만 낳은 여자"이기에 벌어진 일이다. 그는 시어머니에게 피맺혀 울부짖었다. "다른 여자한테서 태어난 탁구는 되는데, 왜 내 뱃속으로 낳은 마준이는 안 되느냐."

전근대적 정서는 남녀 역할에서도 나타난다. 여자는 감정적이거나 안 보인다. 외도로 아들을 낳아 가문을 이으려는 사모님의 패악질은 질기게 이어진다. 시어머니는 아들의 외도를 정당화한다. 사모님에게 '당한' 두 여성 김미순과 신유경은 복수를 다짐한다. 어린 시절 영리해 보이던 서인숙의 두 딸은 이후 신유경의 네트워크로만 작동하지 드라마의 중요 줄거리로 섞여들지 못한다. 남자는 인자하거나 복합적이다. 구일중은 외도해서 아기를 낳은 뒤 당당하다. 두 아들을 차별하지만, 불쌍하고 재능 있는 아들을 감싸고 도는 것은 당연해 보이게 한다. 한 실장은 사랑하는 여자와 아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차별당한 구마준의 정서적 뒤틀림은 측은지심을 자아낸다.

전근대에서 한국 드라마의 유구한 고질인 '유전자의 법칙'도 작동한다. 딴 피를 물려받은 자식(구마준)은 일본까지 가서 빵을 배워와도, 12년간 '깡패짓'만 해온 '적통'(김탁구)을 당하지 못한다. 적통은 냄새만으로 빵 반죽의 상태와 재료를 알아낸다(그런데 '천재적'인 김탁구는 빵집에서 일하는 2년 동안 빵 한 번 구워내지 못하다가, 경합을 앞두고 빵을 완성한다).

착한 김탁구는 착한 부자가 될까

근대에 '전문직 드라마'를 반죽한 결과는 어떤가. 제빵회사 거성그룹의 가장은 작업실에서 빵을 직접 굽는 전문경영인이자, 빵 반죽을 하기 전 '습기 감지 춤'을 추는 장인이다. 이 회장님 빵은 연구용일 것이다. 회장님의 화려한 '기술'에 비해 1970~80년대 대중이 받아들인 빵은 소박했다. 1970년대 초반 혁명적인 '호빵'을 선사해준 (거성의 모델이라고 회자되는) 삼립식품이 1980년대 공장에서 제조해 전국 소매점에 깔았던 빵은 크림빵, 보름달 등 몇 종류가 다였다. 공장에서야 습기 감지 춤이 필요 없고, 부엌에서 구운 빵이 어떻게 상품화될지는 컨베이어 벨트(작업 공정)의 문제일 테다.

김탁구의 가장 큰 장점은 욕심이 없고 착하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항상 하던 말이 그의 생의 목표다. "착한 것이 결국 이 세상을 구한다." 김탁구가 1회 경합에서 보인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은 소박한 열정이 응축돼 있다. 탁구는 옥수수와 보리를 넣어 빵을 만들었다. 경합을 주관하는 팔봉 선생은 보리밥과 옥수수로 보릿고개를 넘던 것을 잘 표현했다고 말했다.

천재성과 착함의 '우월함'을 핏줄과 연결하고, 전근대적 정서에 현대적 전문가 정신을 짜맞춘 결과는 부조리하다.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을 만든 김탁구는, '적통의 기업 장악 드라마'의 자연스러운 결론으로 기업을 물려받을 것이다. 착한 부자라…, 한국에서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제빵기업은 1990년대 체인 제빵점(베이커리)을 만들었고 쉼 없는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2005년 이후 팔봉제빵점 같은 동네 빵집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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