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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생명체는 어디서 발생했을까 미 연구팀 ‘운모 시트’ 가설 새로 제시해

최초 생명체는 어디서 발생했을까 미 연구팀 ‘운모 시트’ 가설 새로 제시해 2010년 08월 20일(금)

사타 라운지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스탠리 밀러는 해럴드 유레이 교수의 권유로 새로운 실험에 착수했다. 무균 상태의 플라스크와 유리관, 유리장치를 준비한 다음 플라스크에 물을 넣어서 끓인 후 여기서 발생한 수증기를 유리관을 통해 유리장치로 보내서 이것을 계속 순환시켰다.

그리고 밀폐된 유리장치 안의 수증기에 메탄, 암모니아, 수소 가스를 더하고 거기에 6만 볼트의 스파크를 일으켰다. 실험을 시작한지 하루 만에 플라스크 안의 물은 분홍색이 됐고 차차 짙은 붉은색으로 변해갔다.

약 1주일 후 플라스크 안의 생성물을 분석한 밀러는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살아있는 생물체의 단백질을 만드는 20종류의 아미노산 중 절반이 조금 넘는 종류의 아미노산이 생성된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실험결과는 1953년 5월 15일 사이언스지에 게재됐고, 마침내 생명 탄생의 비밀이 풀렸다는 언론 보도가 잇달았다.

작은 미생물조차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아

▲ 스탠리 밀러는 실험으로 원시 수프 가설을 증명해 보였다. 
옛날 사람들은 썩은 고기에서 구더기가 생기는 것처럼 생명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다 1668년 이탈리아의 레디라는 생물학자가 썩은 고기를 헝겊으로 싸두면 구더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간단한 실험으로 그는 구더기가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파리가 낳은 알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막아 놓은 오크통 안의 포도주가 저절로 발효되는 것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도 결코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1861년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에 의해 확인됐다.

파스퇴르는 공기는 통하되 미생물은 들어갈 수 없게 만든 플라스크를 고안한 다음 그 안에 영양액을 넣고 열을 가한 후 식혀 놓았다. 그 결과 플라스크 안의 영양액은 1백여 년이 넘도록 썩지 않았다. 즉, 아무리 작은 미생물조차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럼 적도에서부터 극지방까지 북적대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이런 의문에 제대로 된 해답을 처음 제시한 이는 러시아의 생화학자 오파린이었다.

그는 수소, 메탄, 암모니아 같은 환원성 기체로 뒤덮인 지구의 원시 대기가 지구 내부에서 분출된 고온의 니켈, 크롬 같은 금속들의 촉매작용으로 인해 유기분자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이 유기분자들이 암모니아와 결합해 질소화합물로 변했고, 이 화합물이 바다에 농축되어 외부 환경과 구별되는 독립된 내부를 가진 조잡한 세포 형태를 갖추게 되면서 원시생명체로 진화했다는 ‘오파린 생명기원설’을 내놓았다.

영국의 존 홀데인 박사는 이 학설을 계승해 최초의 생명체는 유기물 분자로 이뤄진 원시수프에서 출발했을 거라는 ‘원시수프’ 가설을 내놓았다. 스탠리 밀러의 아미노산 생성 실험은 바로 오파린설과 원시수프 가설을 실제로 입증해 보인 쾌거로서, 생명체의 자연발생설을 다시 확인한 역사적인 실험이었다.

밀러 이후 그 방식대로 진행된 다른 실험에서는 20종류 중 19종류의 아미노산까지 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와 유사한 또 다른 실험에서는 핵산과 당이 합성됐다.

새로운 생명 기원설 속속 등장

하지만 밀러가 실험했던 환원성 대기가 초기 지구 대기와는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아미노산이 더 이상 복잡한 단백질로 발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시수프 가설을 부정하는 과학자들이 차츰 늘어났다. 대신 생명체 기원에 대한 새로운 가설들이 속속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해저 열수구’ 가설과 ‘우주기원론’이다.

해저 열수구 가설은 깊은 바다 속에서 뜨거운 물이 분출되는 해저 열수구의 특수한 환경이 최초의 유기물을 생성시켰다는 이론이다. 실제로 해저 열수구에서 발견되는 초호열성 메탄생성균은 산소가 있는 곳에서 사는 일반 미생물과 다른 세포 구조와 유전정보를 간직하고 있는 고미생물이다.

▲ 해저 열수구의 특수한 환경이 최초의 유기물을 생성시켰다는 이론도 있다. 

또한 1969년 9월 28일 오스트레일리아 머치슨 지역에 떨어진 운석에서 79종의 아미노산이 발견됐는데, 그 중 일부는 지구상에서는 볼 수조차 없는 종류였다. 이처럼 우주에서 날아오는 운석을 통해 유기물질이나 미생물이 지구로 들어왔다는 것이 우주기원설이다.

이밖에도 용암의 뜨거운 열을 이용해 유기물이 만들어졌다거나 진흙이 화학반응을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해서 생명이 탄생했다는 등 여러 가지 가설들이 등장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여기에 새로운 가설 하나를 추가로 제시했다. 부드러운 층으로 쪼개지는 평범한 광물인 운모의 층 사이에 있는 구조화된 칸에서 생명이 탄생했을 거라는 ‘운모 시트 사이’ 가설이 바로 그것이다.

운모의 칸은 세포처럼 층으로 구성된 생명체의 견본과 비슷한데, 이 공간이 분자들을 붙잡고 보호해서 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분자들의 생존을 촉진했다는 것. 또한 운모 시트는 칼륨에 의해 서로 결합하는데, 현재 인간 세포에서 나타나는 특징인 칼륨의 높은 수준 유지도 이를 통해 설명된다고 한다.

운모 시트는 두께가 1나노미터(10억분의 1 미터)로 매우 얇은데, 연구팀이 원자현미경의 고해상도 이미징 기술로 관찰한 결과 운모 시트가 생명의 기원이 더 없이 적합한 장소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전해진다. 최초 생명체의 발생 가능 장소가 이렇게 많은 것처럼 우리 삶의 희망도 구석구석마다에 총총 매달려 있지 않을까 싶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0.08.20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