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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7천명의 공동저자가 완성한 논문 분산 컴퓨팅 활용한 앳홈(@Home) 프로젝트 활발

5만7천명의 공동저자가 완성한 논문 분산 컴퓨팅 활용한 앳홈(@Home) 프로젝트 활발 2010년 08월 18일(수)

“저놈의 컴퓨터를 때려 부수든지 해야지 원.”

게임에 빠져 지내는 아들을 볼 때마다 학부모들이 한숨을 쉬며 내뱉는 말이다. 지금껏 컴퓨터 게임은 그저 성적을 떨어뜨리고 공부에 방해가 되는 존재로만 인식돼 왔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수년간 매달려온 문제를 푸는 데 컴퓨터 게임이 도움이 된다면 어떨까.

일본 소니 사의 대표적 게임기 ‘플레이 스테이션 3’는 지난 2007년부터 폴딩앳홈(Folding@Home)이라는 게임 기능을 제공해왔다. 미국 스탠퍼드대가 진행하는 폴딩앳홈 프로젝트는 단백질 접힘(protein-folding)이라는 세포 내 현상을 연구하는 게임으로, 유저들이 유전자 속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직접 움직이면서 해법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단백질 접힘의 비밀이 밝혀지면 알츠하이머, 파킨슨 병, 포낭성 섬유종 등 다양한 질병의 치료에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것으로 과학계는 기대하고 있다. 때문에 사회적인 공헌도를 높이려는 기업들의 참여도 이어지고 있다. 컴퓨터용 그래픽 칩셋 제작사인 엔비디아(nVIDIA)도 최신 그래픽 칩셋으로 무장한 팀을 만들어 폴딩앳홈 프로젝트에 참여해 높은 성적을 거둔 바 있다.

앳홈(@Home)이라는 명칭은 각 가정의 컴퓨터와 게임기의 연산능력을 이용해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를 푸는 이른바 분산 컴퓨팅(distributed computing) 프로젝트에 붙는다. 외계의 지적 생명체를 찾는 미국 UC 버클리대의 세티앳홈(SETI@Home), DNA의 염기서열을 알아내기 위해 미국 스탠포드대가 만든 지놈앳홈(Genome@Home) 등 다양한 분산 컴퓨팅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02년 정부 차원에서 과학 분야 난제 해결을 위해 코리아앳홈(Korea@Home)프로젝트를 진행해 다수의 성과를 낸 바 있다.

일반적인 분산 컴퓨팅은 하나의 거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의 컴퓨터를 네트워크처럼 연결하고 문제를 쪼개서 계산 시키는 방식이지만, 단백질 접힘을 연구하는 폴딩앳홈 프로젝트는 게이머들이 직접 문제에 도전해서 새로운 계산 알고리즘을 찾아내는 것이 특이하다.

▲ 게이머들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직접 바꿔볼 수 있는 미국 스탠퍼드대의 '폴딩앳홈(Folding@Home) 프로젝트' 

5만7천명이 공동저자로 등재된 논문 발표돼

지난 5일 네이처(Nature) 지에 실린 논문에는 수만명이 공동저자로 등록되어 화제를 모았다. 논문 제목은 ‘다중 참여 온라인 게임으로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다(Predicting protein structures with a multiplayer online game)’로, 9명의 주 저자 이외에도 5만7천명의 ‘폴드잇(www.fold.it)’ 게임 유저들의 명단이 등재됐다. 폴드잇은 폴딩앳홈처럼 단백질 접힘을 연구하는 온라인 퍼즐 게임이다.

2008년 5월, 워싱턴대의 데이빗 베이커(David Baker) 교수 팀이 제작한 폴드잇은 1974년 헝가리의 에르노 루빅(Erno Rubik) 교수가 발명한 루빅스 큐브(Rubik's Cube)에 비견된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금까지 10만명이 넘는 유저들이 참여해왔다. 처음에는 로제타앳홈(Rosetta@Home)이라는 이름으로 시작이 되었다가 독립적인 온라인 게임 프로젝트로 발전한 것이다.

폴드잇 게임에서 유저들은 ‘흔들기’, ‘구부리기’, ‘다시 만들기’ 등의 기능을 이용해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더욱 효율적인 형태로 바꿔야 한다. 접힘 현상의 효율이 좋아질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데, 최고 점수를 얻어낸 유저들의 명단이 공개되어 경쟁을 부추긴다. 팀으로 참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네이처 논문에 주저자에 이름을 올린 미국 워싱턴대 소속 컴퓨터 과학자 조런 포퍼빅(Zoran Popovic) 박사는 “게임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해준 사람들”이라고 소개했다.

인간이 컴퓨터보다 더 뛰어난 탐색 능력 보여

▲ 여러 대의 일반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거대한 문제를 푸는 '분산 컴퓨팅' 프로젝트. 
단백질은 체내에서 무수한 기능을 수행하는 일종의 나노 기계와 같다. 그러므로 단백질의 이러한 접힘(folding) 현상의 원리를 알아낸다면 대부분의 질병 치료에 있어 엄청난 진전을 이룰 수 있다. 문제는 단백질 접힘 현상이 그렇게 간단한 계산이 아니라는 점이다.

단백질의 기본 구성단위는 아미노기(NH+3)와 카르복실기(COO-)가 탄소 원자와 결합한 아미노산(amino acid)인데, 긴 사슬 모양의 아미노산이 모여 3차원 구조를 형성하는 단백질은 인체 내에 존재하는 것만 해도 10만 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만큼 접힘 현상도 무수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수용성 단백질 이외에 지용성 단백질은 아직 몇 종류나 존재하는지 알아내지도 못했다.

게임을 분석, 평가하는 웹사이트 게임레볼루션(GameRevolution)의 설립자인 듀크 페리스(Duke Ferris)는 “최신 로봇팔보다 단백질의 접힘 알고리즘이 훨씬 더 복잡하다”며, “수십억 분의 1초만에 접히는 단백질의 원리를 알아내는 것은 마치 1분에 1만번 회전하며 1백만 개의 면을 가진 루빅스 큐브를 맞추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계산”이라고 지적했다. 이 퍼즐을 푼다 해도 결과는 고작 단 한 종류의 단백질 접힘을 알아낸 것에 불과하다.

몇십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이 어려운 작업에 게임 유저들이 참여한 뒤로, 인간의 능력이 컴퓨터 소프트웨어보다 낫다는 증거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번 논문에는 10개의 새로운 단백질 접힘 퍼즐이 사용되었는데, 게임 유저들은 더 뛰어난 해결 능력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더욱 참신한 계산 알고리즘을 제안하기도 했다. 패턴을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이 예상보다 뛰어나며, 컴퓨터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줄 안다는 의미다.

▲ 미국 워싱턴대 연구팀이 만든 단백질 접힘 퍼즐 온라인 게임 '폴드잇(www.fold.it)' 

일반인도 참여하는 ‘시민 과학’의 시대 열릴 듯

분산 컴퓨팅은 일반인들이 기증한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거대한 계산을 수행한다. 정확하게는 컴퓨터가 아닌 컴퓨터의 연산 능력만을 기증한다. 가정용 컴퓨터가 사용되지 않는 시간에만 분산 컴퓨팅에 연결되기 때문이다. 기증자들은 자신의 컴퓨터가 현재 어떠한 계산을 하고 있는지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단백질 접힘을 연구하는 로제타앳홈 프로젝트의 초기에 일반 유저들이 알고리즘 산출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고, 일반인들의 능력을 눈여겨 본 과학자들이 온라인 게임을 만들어 연구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워싱턴대 연구팀은 현재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기획국(DARPA,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로부터 1천4백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은 상태이며, 올 가을에는 게임과학 연구센터(Center for Game Science)를 세울 계획이다. 폴드잇처럼 다양한 수준의 게이머들을 모집해서 과학 관련 문제들을 연구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유저들은 DNA로 조립된 나노 크기의 생체 기계를 만들거나, 비행기의 화물을 효율적으로 싣기 위해 개선된 포장 방법을 찾아내는 등의 연구에 참여하게 된다.

미래에는 한두 명의 과학자가 실험실에 몇 년 동안 틀어박힌 채 골몰해서 해답을 찾아내기보다는 다수의 일반인들이 공동으로 참여해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이른바 시민 과학(Citizen Science)이 유행하리라는 전망도 제시되고 있다.

포포빅 박사는 뉴욕타임즈(NYT)의 기사 ‘단백질 접힘 문제 푸는 컴퓨터 게임(In a Video Game, Tackling the Complexities of Protein Folding)’에서 하며, “앞으로는 분산 컴퓨팅에 참여한 수만 또는 수십만 유저들의 명단이 공동저자로 실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또한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워싱턴대 소속 컴퓨터 과학자 세스 쿠퍼(Seth Cooper)도 와이어드(Wired) 지의 기사 ‘단백질 퍼즐 대결에서 인간의 두뇌가 컴퓨터를 이기다(Minds Beat Machines in Protein Puzzle Showdown)’에서 “앞으로는 게임을 통해 과학적인 발견을 이루는 새로운 장르의 분야가 생겨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임동욱 기자 | duim@kofac.or.kr

저작권자 2010.08.18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