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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크리에이터

순백의 열정 `75세 피터팬` 앙드레김

순백의 열정 `75세 피터팬` 앙드레김
김지미기자가 본 `인간 앙드레김`
기사입력 2010.08.13 15:40:49 | 최종수정 2010.08.13 18:46:01   

15년간 패션 분야를 취재했던 기자가 가장 자주 만났던 취재원이 앙드레 김이다. 두 달에 한 번씩은 만나 소소한 개인사까지 묻는 사이로 발전했고 오랫동안 그를 근거리에서 지켜봤다. 특히 2000년 9월부터 10월까지 매일경제신문에 게재됐던 `앙드레 김의 패션이야기`를 통해 그의 숨겨진 이면을 많이 알게 됐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에 묻혀 지내던 그였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외로워했던 한 인간이었다. 매년 겨울이면 일본 삿포로 눈축제에 갈 정도로 눈을 사랑했고, 어린아이를 좋아했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던 순진무구한 피터팬이었다. 일전에 "선생님의 열정의 나이는 몇 살이세요"라고 누군가 묻자 주저없이 "영원히 순수함을 잃지 않는 10대"라고 말했던 그다.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그는 지극히 검소하고 규칙적인 수도승 같은 생활을 해왔다. 그런 면모를 알게 해주는 몇 가지 일화가 있다.

2003년 4월 어느 날 흥분에 찬 목소리로 앙드레 김이 전화를 걸어왔다. "디자이너가 된 지 40년 만에 내 소유의 부티크를 갖게 됐다. 같이 기뻐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는 서울 신사동 부티크에 오랫동안 세들어 살았던 그가 건물을 사게 됐다고 뛸 듯이 기뻐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상류층에 파는 값비싼 고급옷을 만들었지만 수량이 적어 수익은 많지 않았다. 그나마 번 돈은 해외 패션쇼에 쏟아 부었다.

지난 2008년 서울 신사동 부티크를 찾은 매일경제 김지미 기자가 앙드레 김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오른쪽 어린이는 당시 8세였던 김 기자의 딸 주희 양)

그런 그가 건물을 살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1999년 옷로비사건 덕(?)이었다. 사치스럽고 세속적일 것이란 세간의 편견과 달리 성실하고 장인과 같은 참모습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그를 더 많이 좋아하게 된 것이다. 이후 앙드레 김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고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그 와중에서도 앙드레 김은 물욕을 갖지 않았다.

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이 그에게 엄청난 백지수표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돈은 원하는 대로 줄 테니 미국으로 와서 나의 전속 디자이너가 되어달라"고 제안한 것. 하지만 앙드레 김은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다. 개인의 전속 디자이너가 될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앙드레 김은 평소 기자에게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자주 했다. 아버지가 친모와 이혼한 후 들어온 계모였지만 그에겐 정신적 지주와도 같았던 존재였다. 앙드레 김이 백여 벌의 흰색옷을 소유하는 등 온통 흰색에 집착하는 것도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는 깨끗하고 정갈한 것을 좋아했다. 매일 아침마다 그에게 양잿물에 새하얗게 빨아 솥뚜껑 위에다 말린 옷을 입혀 보냈다. 앙드레 김이 소독제를 탄 물에 새하얗게 빤 흰색 면직물 옷을 평생토록 입을 정도로 집착했던 이유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2000년 9월 19일자 매일경제에 실린 앙드레 김의 패션 이야기. 총 10회에 걸쳐 연재된 시리즈는 독자들의 열띤 호응을 얻었다. "내 옷"상품으로 생각한 적 없다는 제목이 인상적이다.

그는 "25세에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을 때 1년 동안 밤마다 베개가 온통 젖을 정도로 울었다. 아마 평생에 걸쳐 울 것을 그때 전부 쏟아버려 이제는 눈물이 메마른 것 같다"고 했다.

앙드레 김의 기력이 급격히 쇠한 건 지난해 11월 말 경기도 기흥에 마련한 `앙드레김 아틀리에`를 완성한 직후부터였다.

`앙드레김 아틀리에`는 단순한 패션공간이 아니다. 패션 불모지였던 60년대부터 디자이너를 시작해 평생토록 소원했던 꿈 그 자체다. 온통 흰색으로 칠해진 건물을 둘러싼 나지막한 담장 안 정원에는 흰색 꼬마열차가 꽃밭 사이를 달리고, 장작불이 타오르는 벽난로가 역시 흰색인 실내를 따뜻하게 덥히는 곳. 그 안에서 어린 손자에 둘러싸여 있던 앙드레 김은 그토록 꿈꿔왔던 순진무구하고 완벽한 백색의 순간을 마침내 완성하고 맛보았다.

매년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을 풍경삼아 아틀리에에서 패션쇼를 열겠다던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그 자신의 공간을 남겼다. 그는 저 세상에서도 행복해할 것이다.

[김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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