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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크리에이터

[세계 미술의 巨匠에게 듣는다] "마오쩌둥의 狂氣가 중국 미술을 키웠다"

[세계 미술의 巨匠에게 듣는다] "마오쩌둥의 狂氣가 중국 미술을 키웠다"

  • 입력 : 2010.08.16 23:50

中 '정치 팝' 아티스트 왕광이
"중국인에게 문화혁명은 '신앙'… 선동과 허구성을 비판 소재로
아직 끝나지 않은 냉전… 잔혹함과 美, 함께 보여줄 것"

중국 현대미술 작가인 왕광이(王廣義·53)는 중국 신(新)미술 운동의 기수로, 세계 미술계에 '정치 팝'이라는 중국 현대미술을 각인시켰다. 그는 중국 문화혁명의 선동적인 이미지와 코카콜라·프라다 같은 상업 브랜드를 함께 그린 '대(大)비판'시리즈를 들고 나왔다. 문화혁명으로 상징되는 선동적인 정치이념과 급격히 진행된 경제 개방으로 빚어진 혼란을 작가의 시각으로 비판한 것이다. '정치 팝'은 중국 미술평론가 리씨엔팅이 붙인 이름으로, 조롱과 유머를 빌려 마오쩌둥 등 정치 소재를 비튼 흐름을 말한다.

1957년 하얼빈에서 태어난 왕광이는 중국 모더니즘 미술 운동의 본산인 저지앙미술학원에서 공부했다. 프랑스의 개념미술가 뒤샹 등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80년대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그린 뒤 격자 무늬를 넣은 작품을 제작하면서 자기 세계를 구축했다. 중국인에게 신(神) 같은 존재였던 마오쩌둥 초상 위에 의미없는 격자와 알파벳을 그려넣어 숭배하던 대상에서 의미를 탈색하고 허구성을 비판했다.

왕광이(사진 왼쪽)와 〈대비판-워홀〉(2005).
왕광이는 1990년대부터 '대비판 시리즈'를 시작했고, 작품이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와 1994년 상파울루비엔날레 등에 소개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 〈마오(Mao)AO〉는 2007년 런던에서 열린 필립스 드 퓨리 경매에서 410만달러(약 49억원)에 낙찰되는 등 장샤오강·위에민쥔 등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로 자리잡았다.

베이징에서 만난 왕광이는 트레이드마크 같은 긴 머리를 흩날리며 나타났다. 그의 작품을 대표하는 '대비판' 시리즈의 배경에 대해 물었다. 그는 "문화혁명 당시 아이들은 정치적 의도를 모르는 상황에서 문혁 포스터를 따라 그렸다"면서 "초등학생이던 나도 흑판에다 포스터에 나오는 군인과 농민, 노동자를 따라 그렸고 그때 받은 시각적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인에게 문화혁명은 신앙이고 운명이었다"면서 "문혁은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됐지만, 종교를 없애면서 대신 사람들의 내면에 존재하던 신앙적인 면을 꺼냈다"고 했다. 마오쩌둥을 우상처럼 숭배하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문혁은 중국 미술이 발전하는 데 필연적인 요소였다"고 평가했다. 문화혁명을 이용한 정치권력의 선동과 광기를 중국 작가들이 비판적 소재로 삼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왕광이의‘대비판’시리즈. 문화혁명의 선동적인 포스터 이미지를 통해 교조적인 이념과 급격한 개방으로 빚어진 혼란상을 비틀었다. /아라리오 갤러리 제공

왕광이는 북방청년예술단체를 조직하고 신미술 운동에 앞장선 것에 대해 "중국만의 현대미술을 만들고자 했다"며 "중국 미술이 외국 미술사조의 영향을 받았지만 시각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왕광이의 작품에는 미국의 팝 아티스트인 앤디 워홀과 독일 작가 요셉 보이스가 등장한다. 이에 대해 그는 "앤디 워홀과 요셉 보이스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면서 "워홀은 극단적인 세속화 작업을 했고, 보이스는 정치적 개념을 즐겼다"고 말했다.

베이징에 작업실이 있는 왕광이는 주로 오전에 작품 구상을 한다. 커피를 마시며 종이에 단어를 쓰는 것으로 시작한다. 단어를 계속 써 내려가면서 이미지를 생각하고 개념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는 "작가는 안갯속을 걸어가는 것 같다"며 "영감은 안갯속을 걸어가다 떠오른다"고 표현했다.

작가는 요즘 근본적인 것에 대해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가 평화로워 보여도 냉전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냉전 미학에는 여러 가지 잔혹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해요. 그렇게 대립되는 요소를 작품에 표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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