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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디지털에서 새로운 플랫폼 찾기

애니메이션, 디지털에서 새로운 플랫폼 찾기

 

 

이현진 애니메이툰 기자

 

 

 

최근 몇 년 동안, 일반 극장에서 국산 애니메이션을 본 기억이 없다. 작년에만 해도 세 편이나 개봉을 했지만 그마저도 속사정을 들춰내면 민망해진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제작연구과정의 프로젝트 두 편 덕분에 겨우 개봉작 ‘0편’을 면한 것. 장편애니메이션이 제작되지 않아서가 1차적인 원인이지만 문제는 그 뿐이 아니다. 2009년 개봉작 세 편 중 나머지 한 편인 <오디션>이 오랜 ‘개봉관 잡기’ 끝에 애니메이션센터에서 단관 개봉한 사례는 배급의 어려움을 증명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은 만드는 것만큼이나 보여주는 것도 고민해야 하는 힘없는 매체가 됐다.

 

연이은 흥행 실패와 투자 위축으로 국산 애니메이션은 자본으로부터 독립, 아니 쫓겨났다. 제작에서 배급까지 수월한 것 없는 고군분투기가 시작된 것이다. 거대 자본이 만든 멀티플렉스가 영화관 시장을 독점한 상황에서 돈 없는 애니메이션이 환영받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이치로 보인다. 어렵게 상영관을 잡더라도 퐁당퐁당(교차상영)의 공포 앞에 자유로울 수 없다.

 

제작도 안 되고 있는 장편을 제외하고, 힘겹게나마 만들어지고 있는 독립, 단편 작품의 경우는 어떤가. 이쪽도 작정하지 않는 이상 쉽게 접할 수 없다. 상업적인 체계에 속하지 못하고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독립영화와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보니 애니메이션과 독립영화는 주로 무료 상영회 등을 통해 접근성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달래는 정도로 만족해온 실정이다. 2008년에 중편 애니메이션 세 개를 묶어 <인디애니박스-셀마의 단백질 커피>라는 제목으로 실험적인 개봉을 시도한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유료 관객을 만날 기회가 좀처럼 없는 편이다.

 

다행히 꾸준한 노력으로 접근성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 멀티플렉스의 뒤안길에도 관심을 갖고 영화제나 전용관을 찾는 관객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독립영화진영은 작년에 <워낭소리>와 <똥파리>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숨구멍이 트였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독립영화계는 저변확대의 자연스러운 다음 수순으로 수익구조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최근 독립영화에서 수익 창구로 공을 들이고 있는 곳은 온라인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온라인과 모바일 등 새로운 플랫폼을 통한 디지털 배급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온라인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새로운 이야기도, 독립영화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 VOD, IPTV, DMB, 모바일 등 영화를 볼 수 있는 통로가 다양해지고 스마트폰 사용자도 늘어나면서 디지털 콘텐츠라는 좀 더 넓은 의미의 가능성으로 부활했다. 영화 시장 전반에서 디지털 배급을 주시하고 있는 모양새지만 접근성이 낮은 독립영화에는 절실함의 무게감이 다르다. 문턱 높은 영화관에 기대지 않고 관객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저변확대 뿐 아니라 합법적인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의 시작으로 수익까지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

 

올해 <워낭소리>의 고영재 PD가 인디스토리, 시네마달, 키노아이 등의 독립영화 배급사와 출자해 만든 디지털 신디케이터 ‘인디플러그’가 대표적인 예다. 독립영화 콘텐츠의 디지털 배급은 물론 직접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400원(단편)에서 2000원(장편)의 가격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 일반 유료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DRM(Digital Rights Management:디지털 저작권 관리를 일컫는 말로 불법복제와 변조를 방지하는 기술)을 걸어 놓는 것과 달리 한번 결제로 파일을 소장할 수 있는 방식은 더욱 구미를 당긴다. 게다가 감독 인터뷰와 독립영화계 소식도 싣고 있어 커뮤니티 역할까지 꾀하고 있다. 접근성 때문에 독립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던 관객들에게는 단비와도 같은 공간인 셈이다.

 

독립영화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던 애니메이션은 디지털 콘텐츠 배급이라는 흐름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현재로서는 주로 독립영화가 만들어 놓은 루트를 통하는 편이다. 일부 작품의 배급을 독립영화 배급사에서 맡고 있기 때문인데, 가장 대표적인 ‘인디스토리’가 260여 편이라는 적지 않은 수의 애니메이션을 배급하고 있다. 인디스토리가 설립에 참여한 인디플러그에서도 애니메이션의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 인디플러그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서비스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

 

그런 와중에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가 ‘씨앗’이라는 이름으로 올해부터 애니메이션 배급 사업에 전면으로 나섰다. 지난 6월 19일에는 배급 사업 설명회를 열고 감독들과 의견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의 화두는 단연 온라인이었다. 이미 온라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감독들도 있었다.

 

연상호 감독의 경우, 디지털 콘텐츠 유통 업체인 씨네21i에서 <사랑은 단백질>의 디지털 배급을 맡고 있다. 씨네21i에서 콘텐츠를 제휴하는 방식으로 웹하드 업체 등의 서비스 제공자가 계약을 맺는 시스템이다. 사용자가 요금을 결제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면 배급사와 제작자가 수익을 나눈다. 연상호 감독에 의하면 “<사랑은 단백질>의 다운로드 수익은 DVD 판권의 수익보다 높다”고 한다. 그의 전작 <지옥: 두 개의 삶>도 인디플러그에서 7월 12일부터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작했고, 현재 전체 주간 다운로드 5위 안에 랭크 중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상영조차 힘든 애니메이션이 온라인에서 수익 창출의 가능성까지 본 셈이다.

 

홍학순 감독은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애플 앱스토어에서 <계속 달리는 잉카씨>의 다운로드 서비스를 진행했다. 배급 업체와의 정식 계약을 통한 것이 아닌 독립영화의 앱스토어 진출 가능성을 접쳐보기 위한 시도였다. 많은 수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홍학순 감독은 온라인의 상영기회 확대 역할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마시마로’가 플래시애니메이션으로 인터넷에서 이름을 알렸던 것처럼 온라인이 사람들에게 애니메이션을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통로 겸 수익창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마찬가지로 온라인에 관심이 많은 강민지 감독은 영화제 출품을 대행해주는 해외 사이트를 꿰고 있었다. 릴포트(www.reelport.com), 쇼트 필름 데포트(www.shortfilmdepot.com), 위드아웃 어 박스(www.withoutabox.com) 등에 영화 파일과 정보를 업로드 해놓으면 전 세계 영화제의 시일에 맞춰 손쉽게 출품이 가능한 디지털 배급의 일종이다.

 

감독들의 온라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애니메이션의 기류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상영관의 큰 스크린이 아닌 작은 화면에서 작품을 보여주는 것에 반감을 갖고 있던 창작자들이 시대적 흐름을 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창작에 매진하는 것이 전부였던 이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기 위한 방법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더욱이 장편보다 극장에서 더 멀다고 할 수 있는 독립, 단편 애니메이션의 창작자들이 새로운 플랫폼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전반적으로 침체된 애니메이션계에 고무적인 움직임이다.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는 온라인에 대한 관심을 반영해 인터넷 미디어 전문 업체와 계약을 맺고 애니메이션의 해외 다운로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온라인 공간에서 접근성의 약점을 극복해나가고 있는 독립영화 진영의 행보를 참고하면서 애니메이션만의 특화된 채널을 발굴해나갈 계획이다.

 

현재 한국 애니메이션은 상영 기회도, 부가판권 시장도 얼어붙었다. 기존의 플랫폼만 보자면 그렇다. 하지만 온라인, 더 넓게는 디지털 배급을 통한다면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상영관은 오히려 무궁무진해진다. 내 작품을 보여줄 관객이 있다면 대형 멀티플렉스가 아닌 작은 화면도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을까.

 한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