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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명사

[선진한국 길목에서] 창의성과 혁신이 승리의 원동력

[선진한국 길목에서] 창의성과 혁신이 승리의 원동력

한국경제 | 입력 2010.07.16 18:58

"다른 DNA 포용하는 개방성 중요…멀리 가려면 혼자 아닌 함께 가야"

축구는 피를 거꾸로 흐르게 하는 묘미를 선사하는 스포츠 중의 하나다. 승부차기를 해서라도 끝까지 승자를 가리는,피 말리는 경쟁의 각축장이다. 축구는 또한 집단 최면과 열광이 쉽게 나타나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승리는 철저한 선수 관리와 냉철한 그라운드의 창조 경영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일 뿐이다. 광기에 가까운 열광 뒤에는 승리를 위한 차가운 이성의 접근이 숨어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은 무적함대 스페인의 감격적인 첫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디지털 세계만큼이나 빠르게 변화하는 축구의 세계에서도 영원한 승자도,영원한 패자도 없음을 보여주었다. 오직 끊임없는 자기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나가는 국가만이 우승컵을 세계에 번쩍 들어올리는 자격을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우리 축구팀은 이번 월드컵에서 세계 수준에 접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한국 축구가 이만큼 성장하게 된데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공헌이 절대적이었다. 그는 한국 축구가 일류 수준으로 오르기 위해 필요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무엇인지,그걸 충족시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려준 주인공이었다. 서열,학연,지연,혈연 등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낡은 시스템을 바꾸는 일들을 거침없이 해냈다. 한마디로 '서로 다른 DNA를 포용해서 자신에게 동화시키는 개방성'을 몸소 실천했다. 무명에 가까운 선수를 과감히 발탁했는가 하면 훈련 방법도 바꾸었다. 그 결과 안방이었다고는 하지만 4강 진출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히딩크의 성공 뒤에는 감출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담겨져 있다. 2002년의 4강 신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지도자로는 우리 축구가 세계 수준으로 도약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즉 우리의 발전에 우리 스스로가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결국 우리는 외국인에게 사령탑을 맡겨야 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거둔 원정 16강 진출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그간 우리나라 출신의 대표팀 감독 선임을 둘러싸고 논란과 우려가 끊이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허정무 감독은 우리 자신에 대한 우려와 불안을 씻어내고,자괴감을 극복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홀로서기의 가능성을 증명한 셈이다. "본인이 원하는 축구를 소신 있게 밀고 나간다면 어느 감독이라도 상관없다"는 박지성 선수의 언급은 우리 축구를 이제는 외국 지도자에게 위탁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신감의 발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축구팀의 성과는 선진 축구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소위 해외파 선수들에 의해 달성됐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선수들이 경기를 이끌어갔다는 점에서 한국 축구가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도 분명해졌다.

비록 3위에 그쳤지만 독일 축구팀의 변신은 인상적이다. 우선 선수 구성이 다양해졌다. 순수 집착은 병이다. 독일은 더 이상 소위 아리안족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들로만 팀을 구성하지 않았다. 터키,동유럽,심지어는 아프리카 출신도 대표선수로 선발함으로써 고질적인 순혈주의를 극복했다. 축구란 조직력과 시스템만 가지고 되는 게임은 아니라는 것을,세트플레이로 골을 만드는 데에도 한계가 있음을 입증했다. 체력과 개인기는 기본이고,상대방의 실수를 나의 성공으로 뒤집을 수 있는 영리함,상대 수비벽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용감함,전광석화처럼 결정해야 하는 패스의 완급 조절과 같은 탁월한 분별력 등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창의성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창의성이다. 창조적 발상이 없다면 상대팀의 수비를 뚫을 수 없고,공격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축구다. 바둑판에 인생이 담겨 있다고 말하듯 축구경기장에는 세계 경영의 책략이 담겨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익숙하며 창의성을 발휘하는 국가만이 우승컵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남아공월드컵은 다시 한번 증명했다. 그뿐인가,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멀리 가려거든 함께 가야 한다는 교훈도 가르쳐주었다.

김윤수 < 전남대 총장 >

< 성공을 부르는 습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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