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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글]한국문학의 2010년 여름

[편집자의 글]한국문학의 2010년 여름

2010 07/20위클리경향 884호

영화 <시>에서 시 강사 김용탁 시인으로 나온 김용택 시인은 “나는 한 번도 시 강의를 한 적이 없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시를 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올 8월부터 1년 동안 미국 뉴욕에 체류할 예정인 소설가 신경숙씨는 “중년의 사랑 이야기가 모락모락 내 안에서 피어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작품세계의 변신을 도모하는 소설가 권지예씨는 “‘순문학작가로 살아 왔지만 대중소설을 쓰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본격문학 진영의 관심을 받는 SF 작가 배명훈씨는 “외교학과에서 배운 전쟁 이론에 따라 글을 쓴다. 변호사인 여자 친구가 ‘메디치’를 자청해 앞으로도 쓰고 싶은 소설을 쓰겠다”고 귀띔했다. 자기 소설의 주인공 ‘시봉’과 ‘진만’에 대한 글을 쓴 소설가 이기호씨는 “소설가는 불특정 다수 앞에서 스스로 옷을 벗는 창녀와 같은 존재”라고 선언했다.

2010년 여름의 한국문학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활기차다.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지닌 작가들이 개성적인 이야기를 열심히 만들어 낸다. 마우스 클릭만으로 연재소설을 물리도록 볼 수 있으며, 출판사와 서점의 적극적인 마케팅 덕분에 작가들을 수시로 만날 수 있다. 이야기는 우리의 경험 영역을 넓히고, 사고를 유연하게 하며, 나아가 품격 있는 생활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한다. 영화, 외국 소설과 고투를 벌이는 한국문학에 많은 관심을 바란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언제부터인가 문학 책을 읽는 일이 시들하게 느껴졌다. 몰상식과 반지성과 비이성이 판치는 정치 탓은 아니었다. 세상이 빨리 변했다. 문학이 문화의 중원에서 변방으로 내몰렸다는 진단이 나온 건 정치가 또다시 탁류에 휩쓸리기 훨씬 전의 일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문화 콘텐츠의 대폭발이 시작된 이래 문학은 한 시대의 공통 교양이기를 멈췄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로지 문학에 대해서만 말하는 이번 기획에 참여하게 된 것은 이 때문에 인파로 북적대는 거리에서 발목이 삐끗해 몸이 휘청거릴 때처럼 다소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문학은 곳곳에 있었다. 시인의 낭독회를 찾은 어느 대학생의 눈동자 속에도 있었고, 작가들의 웹사이트와 트위터를 방문해 정성껏 댓글을 다는 누리꾼들의 손끝에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도심과 산골의 창작실에서 낙양의 지가가 아니라 문학의 진실을 위해 싸우는 작가들의 영혼 속에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작고한 한 평론가는 “문학은 써먹을 데가 없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문학은 사람을 억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횡행하는 이 참담한 여름에 진실해짐으로써 아름다워지기를 열망하는 한국문학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초대하는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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