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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명사

[이슈와 전망] `방통융합` 정체성 찾아야

[이슈와 전망] `방통융합` 정체성 찾아야

길종섭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

우리나라의 방송통신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러 성장세가 많이 둔화된 것이 사실이다. 정부로서도 이 때문에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포화시장에서 경쟁을 통한 성장 추구가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유료방송 산업에서의 가능성은 여전히 크다. 네트워크, 플랫폼, 콘텐츠, 단말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산업이고 유료방송 요금이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어서 디지털 고품질화를 통한 성장잠재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적극 지원해 왔던 IPTV의 경우도 고도화 된 네트워크 인프라를 전국단위로 갖추고, 양방향 콘텐츠 개발 등을 통해 산업 활성화를 도모하자는 의미였다.

정상적인 모습이라면 IPTV 사업자들이 도시부터 농어촌까지 광대역의 차세대 정보통신망을 갖춰가고, 콘텐츠 고품질 경쟁을 주도해 전체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으며 시장파이를 키워가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방송통신업계에서 소위 가장 잘 나간다는 상품은 KT가 자회사 스카이라이프의 위성방송 상품을 제공받아 결합판매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 상품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내는 화학적 결합이라기보다는 기존 서비스간의 단순한 물리적 결합에 가깝다. IPTV의 전제조건이었던 망 투자와 콘텐츠 개발에 있어 새로운 성과가 없으니 산업성장을 통해 증대되리라 믿었던 신규 고용창출도 신통치 않을 수밖에 없다.

가입자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콘텐츠 투자에 부담이 큰 상황이겠지만, 그렇다고 대표적인 IPTV 사업자마저 이처럼 자회사의 위성방송 판매에 더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은 IPTV 활성화를 위한 정부 노력과 국민적 기대마저 외면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특히 디지털방송을 저가로 구성해 자사 통신서비스에 결합시키는 것은 콘텐츠사업자와 분배해야 할 방송의 몫을 낮추면서 자사이익만 극대화 하고자 하는 이기심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정부는 결합상품에 포함된 위성방송서비스 가격을 상향조정하는 것으로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단순히 개별상품에 대한 요금조정 차원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IPTV 도입 취지를 살리고, 전체 유료방송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은 "네트워크 인프라는 10년, 30년, 50년 후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내다보며 생각해야 한다"며 광네트워크 구축과 효율적인 이용을 위한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미국도 같은 관점에서 지난 3월 2020년까지 초고속인터넷망 확대를 위한 `국가브로드밴드 계획(Connecting America)'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만큼 방송통신 인프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산업 활성화와 소비자 복지, 그리고 크게는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함께 일궈갈 수 있는 방향으로 구축되도록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지금처럼 사업자들이 조급한 마음에 출혈가격과 마케팅 경쟁만을 내세우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인프라나 콘텐츠에 대한 투자가 부실해지고, 결국 이용자인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다.

방송통신 융합 환경에 따라 다양한 결합상품이 등장하고, 이에 따른 경쟁저해나 불공정거래 행위도 계속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시청자 권익과 방송의 공익성 보호, 산업성장 기여 등의 원칙 수립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각 매체들이 원래의 도입취지에 걸 맞는 방향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정체성을 찾아주고, 필요하다면 시장에서 과열된 출혈경쟁의 열기를 잠시 식혀주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본다.

방송통신 산업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 일이 어려운 것은 포화된 시장 탓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기본원칙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거나 원칙에 반하는 영업행위가 종종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기적으로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주시하면서 올바른 정책원칙 수립과 시장 감시를 통해 방송통신 강국의 기초가 되는 네트워크, 콘텐츠 인프라가 탄탄하게 조성될 수 있도록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혜를 발휘할 때다. 우리 모두 좀 더 큰 틀에서 보자.
디지털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