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켓 생태계/지식

글로벌 금융안전망, 결국 IMF에 기대나

글로벌 금융안전망, 결국 IMF에 기대나
정부, G20회의 앞두고 방안마련 분주
한겨레 안선희 기자 메일보내기
» 외환 위기에 대비한 달러공급 장치들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5차 회의가 오는 11월로 다가오면서 우리 정부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정부가 이번 회의에서 특히 역점을 두고 있는 이슈는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이다. 달러가 부족해서 생기는 외환위기는 주로 신흥국의 문제여서 우리나라로서는 중요한 이슈이며, 전체 신흥국을 대변한다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는 것이 우리 정부 생각이다. 하지만 정부가 애초 생각했던 미국 등 선진국 중앙은행들과의 다자 통화 스와프 제도화는 미국, 유럽연합 등의 거부로 사실상 물 건너간 상태다. 정부는 차선책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대출제도를 개선해 이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제도를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역점 둔 통화스와프 제도화
선진국 거부로 가능성 낮아
대출조건 완화·선제 대응 등
IMF ‘구제금융’ 개선에 무게
‘부실 국가’ 낙인효과 없애야

■ 중앙은행간 통화스와프 가능성 낮아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우리나라에서도 외화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외환위기 재발 위기감이 고조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으면서 위기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만약 이런 선진국 중앙은행과의 통화스와프가 제도화된다면 신흥국들은 외환위기 걱정을 한결 덜 수 있게 된다. 정부도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중앙은행 사이의 다자 통화스와프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정부와 한국은행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중앙은행간 스와프는 가능성이 낮아진 상황이다. 한은 관계자는 “이를 위해서는 미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의 동의가 필요한데, 둘 다 부정적인 입장”이라며 “이들은 통화스와프가 상설화하면 신흥국들이 평소에 건전성 관리를 소홀히 하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고, 자신들의 통화정책 자율성에도 제약이 생긴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 기댈 곳은 역시 IMF뿐? 결국 논의는 다시 아이엠에프로 돌아갔다. 이 기금의 대출제도를 최대한 개선해보자는 것이다.

1997년 우리나라도 받았던 아이엠에프의 ‘대기성 차관’은 문제가 터진 뒤에야 지원을 해주고, 전제조건인 구조조정 요구가 너무 가혹하며, 지원을 받은 국가로서는 ‘낙인효과’(지원을 받으면 경제에 문제가 있는 나라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의 부작용이 뒤따른다는 점 등이 지적돼왔다.

아이엠에프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해 지난해 3월 ‘신축적 신용공여제도’(FCL)라는 새로운 대출제도를 도입했다. 이 대출은 위기 예방 차원에서 사전에 제공되며, 엄격한 조건도 달지 않는다.

현재 우리 정부가 아이엠에프 쪽에 요구하고 있는 방안(명칭 미정·가칭 ‘체계적 유동성 지원’)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관계자는 “신청을 하지 않아도 아이엠에프 자체 판단으로 대상국을 결정하고, 여러 나라에 동시에 제공된다는 점에서 신축적 신용공여보다 개선된 제도”라며 “사실상 다자 통화 스와프와 유사한 효과가 있고, 낙인효과도 희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아이엠에프 쪽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위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아이엠에프가 위기 때 구제금융만 담당했지만, 이 제도가 만들어지면 사전 위기예방까지 역할이 확대되기 때문에 아이엠에프 쪽에서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아이엠에프는 하반기에 새 제도의 구체안을 만들어 이사회에 올릴 것으로 보인다.

■ 낙인효과 없어질까…외환보유액·자본통제가 우선 아이엠에프의 새 대출제도가 우리에게 유용할지는 낙인효과를 얼마나 제거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 특히 우리 국민들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 때 아이엠에프가 요구했던 혹독한 구조조정 때문에 고통받았던 기억이 너무 강해 정서적으로 지원을 받아들이기가 더욱 쉽지 않다. 한은 관계자는 “아이엠에프 대출보다 중앙은행 스와프가 더 나은 이유는 우리 국민들의 트라우마(상처)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이엠에프의 새 제도가 만들어져도 국내 외환보유고 유지의 필요성이 줄어들긴 힘들다. 우리 정부는 글로벌 금융안전망이 만들어지면 외환보유액을 많이 쌓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1차적인 안전망은 개별 국가 차원의 외환보유액”이라며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신흥국 신용등급을 매길 때 외환보유액 규모를 중요한 요소로 평가하기 때문에 적정 수준은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좀더 근본적으로는 글로벌 투기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달러가 과도하게 들어왔다 갑자기 빠져나가는 사태를 사전에 막아야, 여기저기 달러를 꾸러 다닐 일도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 글로벌 금융안전망

신흥국들은 대내외적으로 금융충격이 발생하면 외국자본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외환위기 가능성이 커진다.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선진국 중앙은행이나 역내 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 등에서 달러를 공급해 위기를 차단하는 장치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통화 스와프(달러와 원화를 교환) 형식을 띄지만, 사실상 대출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