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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아바타>를 못 만드는 진짜 이유

한국에서 <아바타>를 못 만드는 진짜 이유

[기고] 대한민국 상상력의 새싹을 기대하며

기사입력 2010-02-03 오전 8:47:44

 

<아바타>로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인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1999년에 <뮤즈>라는 영화에 잠깐 출연한 적이 있다. 바로 그 자신, '제임스 카메론 감독'역으로. 그 당시 그는 <타이타닉>으로 이미 엄청난 흥행을 거둔 뒤였다.

뮤즈(Muse)란 원래 그리스 신화에서 문학과 예술에 영감을 주는 여신인데, 영화 <뮤즈>도 비슷한 설정을 담고 있다.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영화사에서 쫓겨난 한 시나리오작가가 창작 의 영감을 준다는 신비의 여인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가 보니, 할리우드의 잘 나가는 작가며 감독들이 죄다 은밀하게 그녀를 찾아오고 있더라는 줄거리이다. 그리고 바로 그 중에 그녀의 집을 나서며 '나는 왕이다!'라고 외치며 희희낙락하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모습도 있었던 것이다.

나날이 발전하는 영화 기술은 이제 정교한 컴퓨터그래픽을 넘어 입체영화(3D)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영화란 궁극적으로 스토리텔링의 예술이다. 아무리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그림을 만들어내더라도 그것만으로 영화 전체를 채워서는 곤란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계속 붙잡아두는 요소는 역시 이야기인 것이다. 심형래 감독의 <디-워>가 논란이 되었던 것도 특수효과의 품격에 못 미치는 이야기의 함량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이번에 국립과천과학관에서 하고 있는 SF 영화 스토리 공모전은 상당히 기대가 된다. 특히 대상을 일반인이 아닌 초, 중, 고교생으로 한정한 것이 더 마음에 든다. 기성 문화에 길들여지고 사고가 경직된 성인들보다는, 미숙하지만 자유분방한 청소년들에게서 훨씬 더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예전에 SF 소설 공모전의 심사를 몇 번 본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틀에 박힌 서양식 SF 영화며 소설의 틀을 그대로 가져왔을 뿐 독창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응모작들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 특수 효과로 호평을 받는 이 영화는 빈약한 스토리 때문에 표절 시비에 시달리는 등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프레시안

여기 생생한 날것의 드라마가 익숙한 형식의 첨단 기술보다 낫다는 좋은 예가 있다. 해외의 어느 과학관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최첨단 로봇이 새롭게 전시되어 어린이 관객들이 많이 구경하러 왔는데, 그 순간 옆에 있던 인공부화기에서 병아리 한 마리가 막 알 껍질을 깨고 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어린이 관객들이 순식간에 모두 병아리 쪽으로 몰려 숨죽이며 그 새로운 생명의 탄생 순간을 지켜봤다는 것이다.

기술만으로는 문화의 패러다임을 선도하기 힘들다. 한때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하청 왕국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심슨>이나 <트랜스포머>등 영미권의 유명한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원칙적으로 하청을 절대 주지 않는다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작업이 급해지자 채색 작업을 우리나라 업체에 맡겼다. (나중에 그는 작업의 질에 크게 만족했다고 한다.)

한때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70퍼센트 정도가 한국 업체들의 손을 빌어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지금 그 일거리들은 거의 다 임금이 싼 동남아와 중국, 북한 등으로 빠져나갔다. 그동안 우리는 축적된 기술력에 걸맞은 서사, 즉 스토리텔링의 역량을 얼마나 축적했는지 반성해 볼 일 아닌가.

우리나라 영화계는 아직도 SF라면 돈을 많이 들여서 화려한 특수 효과로 볼거리를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외국에는 저예산으로 만든 수작 SF 영화들도 적지 않다. 사람들을 감동시킬 스토리가 먼저이며, 그를 뒷받침해 줄 적절한 특수효과는 나중에 고민해도 된다.

카메론 감독이 <아바타>로 놀라운 디지털 영상 기술을 선보였어도 이야기만큼은 온갖 표절 시비에 시달리며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는 모습을 보면, 그도 항상 뮤즈의 세례를 받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이번 SF 영화 스토리 공모전에서 우리 청소년들의 빛나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국립과천과학관에서는 SF 영화 스토리를 공모합니다. (담당자 : 남경욱 연구사(02-3677-1423 / 010-2769-6187)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