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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DT 시론] IT 생태계 구축 성공 조건

[DT 시론] IT 생태계 구축 성공 조건

장석권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ㆍ정보통신정책학회장

"차라리 관두시죠!" 부엌가구 회사직원우리집 내부를 둘러 본 후, 내게 던진 말이었다. 부엌을 전면적으로 수리하겠다고 부른 회사직원이 하는 말치고는 너무 건방지고 기분 나쁜 말이었다. "아니 부엌을 새로 꾸미는데 드는 돈이 얼만데, 안 팔겠다니! 장사하는 회사 맞어?"

문득 부엌가구 전시장을 둘러 볼 때, 예쁘게 꾸며진 새 부엌의 모습을 떠올리며 즐거워하던 아내모습이 떠올랐다. "적지 않은 투자지만, 투자로 인한 상당한 효과가 내게 돌아오리라"는 즐거운 상상은 여전히 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당시 장사꾼에게 철저히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은 황당하다 못해 차라리 참담했다.

21세기 첫 5년. 한국의 IT산업을 선도적으로 이끌던 컨버전스 혁신이 그 효력을 잃어가면서,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갈망은 산업전반에 걸쳐 급속히 확산되어 갔다. 그 과정에서 신성장엔진 또는 신성장동력이라는 말이 경제사회전반에 걸쳐 회자되었다. 당시 신성장엔진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자못 커서, 일단 찾기만 하면, 우리는 단박에 선두그룹의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내가 우리집 부엌만 고치면, 우리집이 아주 훌륭해 질 것으로 기대했던 것처럼.

그러나 성과없는 신성장 보물찾기가 수년간 계속되면서, 열정은 점차 회의로 바뀌어 갔다. 회의적 시각의 하나는 숨겨진 보물이 아예 없다는 시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있기는 하되, 보물이 아니라는 시각이었다. IT가 고용을 잡아먹는 주범이라는 오명과 IT의 성장견인력이 수명을 다했다는 해석이 바로 그것. 그러던 와중에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 시장에 도입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찾고자 했던 바로 그 보물"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갔고, 곧이어 "우리는 왜 그러한 보석을 진작에 찾지 못했는가"하는 자책이 쏟아 졌다. 그 다음부터 진행된 것은 이른바 `베끼기'와 `한목소리 내기'. 질풍노도의 스마트열풍이 온갖 언론매체를 휩쓸면서, 개방형 앱스토어와 앱스토어 기반의 생태계를 빨리 이식해야 한다는 여론이 급등했다.

무엇이든 한번 걸리면 박살내고야 마는 우리 시장의 속성상, 이러한 상황전개는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짧은 시간에 이러한 대세를 만들어내는 우리의 상황대응력이 놀랍고 감탄스러울 뿐이다.

그런데 비록 늦었지만 이 대세를 따라 그대로 밀고 나가기만 하면 우리는 과연 최종 승리자가 될 수 있을까? 이른바 "Fast Second" 전략만 잘 구사하면, 우리는 우리의 원대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는가?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렇지 않다'라고 단언하고 싶다. 왜냐하면, 개방형 앱스토어 생태계는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여러 필요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생태계 구축에는 `베끼기'만으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수많은 구비조건이 필요하다. 잘 구비된 무선인터넷 인프라, 대칭적이며 경쟁적인 이동통신 시장구조, 유연한 이동통신 요금체계, 다양한 기기와 망간 연동을 위한 표준의 정립, 높은 기술역량과 인력수준, 경제사회전반의 표준화된 업무 프로세스, 신개념의 범용 서비스 아키텍쳐와 애플리케이션별 특화된 비즈니스 모델 개발, 그리고 협력업체간 성숙된 거래관행과 상호신뢰의 문화 등.

화가 날대로 난 나는 그 직원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안 판다는 거요? 어디 한번 얘기나 들어 봅시다." 화난 내 모습에 당황한 그 직원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비싼 돈을 들여 부엌을 고치면, 부엌이 예뻐보이는 것이 아니라, 부엌을 제외한 집안 전체가 추해 보일 겁니다."

수많은 고객상담 경험을 통해 터득한 그의 진단은 100% 옳았다.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 산업생태계에서 부분적으로 이루어지는 혁신은 시스템 전체를 추하게 보이게 한다. 진정으로 고객을 위하는 그 직원의 속마음을 읽은 나는, 18년된 집을 전체적으로 뜯어 고치기로 결단했다. 고통스럽기는 했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집이 완전히 새로운 집으로 거듭난 것은 물론이었다.

이 큰 사건의 발단은 미국서 쓰다 가져 온 작은 미제 가스오븐렌지였다. 지금은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불완전한 혁신, 부분적 혁신은 아니 함만 못할 때가 많다. 성공적인 혁신은 과감성과 결단을 필요로 한다.
디지털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