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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클릭 현장에서] 아이폰4에 맞서는 이순신폰

[클릭 현장에서] 아이폰4에 맞서는 이순신폰

창밖 자작나무숲에 느릿하게 눈발이 날렸지만, 사무실 직원들은 눈코뜰 새 없이 바빴다. 지난 2008년 2월 기자가 찾은 핀란드 노키아 본사에서 헤이키 노르타 전략담당 수석부사장은 "노키아는 애플 아이팟 뮤직스토어 같은 노키아 뮤직스토어, 구글맵과 같은 노키아맵을 이미 개발했다"며 시연했다.

1초에 지구촌 14명이 자사 폰을 구입하고, 포털인 오비(OVIㆍ핀란드어로 문이라는 뜻)까지 완비한 노키아 임원의 표정엔 자부심이 흘렀다.

"삼성전자가 하드웨어에만 머물러 있는 건 서비스사업자들의 반발도 한몫하는데 노키아의 비결은 뭔가"라고 묻자 "노키아 임직원은 항상 겸손(humble)한 자세로 서비스사업자들과 끊임없이 협력하고 대화하며 문제를 푼다"고 했다.

그런 노키아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아이폰 쓰나미에 흔들리다가 급기야 다음달 대규모 조직개편을 눈앞에 두고 있다. 뭐가 문제였을까.

삼성전자가 올해 자체 운영체제(OS)로 만든 바다폰을 발표했을 때 미국 IT 온라인 신문인 기즈모도(아이폰 4G를 처음 공개한 언론)는 "처음 바다OS를 발표했을 때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바다폰을 보고 나니 이건 미친 게 아니라 자살이나 마찬가지"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끝없이 추락하기엔 `제조 기술`이 너무 뛰어났던 것일까. 속도전에선 역시 모바일 코리아였다.

8일 마침내 삼성이 두뇌(프로세서)가 1기가에 달하는 갤럭시S를 내놓으며 애플의 신형 아이폰4에 맞불을 놨다. 애플이 하드웨어를 보강했다면, 삼성은 오히려 콘텐츠를 보강했다. 미국 네티즌들도 갤럭시S의 터치감과 고화질 영상을 높이 평가했다. 팬택의 경우 임직원들이 휴일을 반납하고 11개월 동안 몰입해 시리우스를 내놓기도 했다. 가장 밝게 빛나는 별 이름이기도 한 시리우스(천랑성)는 역시 두뇌가 1기가로 세계에서 가장 반응이 빠른 스마트폰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한국 스마트폰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이날 나온 아이폰4는 아직도 한국 기업들이 더 분발해야 한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한 파워 블로거는 "갤럭시S의 운명은 아이폰4가 얼마나 팔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평가했다. 트위터에 올라온 내용의 주류는 "아이폰4는 어메이징(놀라운)폰, 갤럭시S는 이를 방어하는 이순신폰"이라는 내용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휴대폰 제조사는 서비스 회사의 주문과 속도만 따라잡으면 됐다. 서비스사도 제조사의 기술개발 속도에만 발 맞추면 만사형통이었다. 이용자 마음에 숨은 주문사항은 관심권 밖이었다.

이석희 전 노키아코리아 사장은 "노키아도 유럽과 신흥 시장을 싹쓸이하면서 오만해져 고객들의 요구를 조금씩 무시하기 시작했고, 외부에 문을 닫기 시작했다"고 술회한다. 고객의 속도를 따라잡는 데 소홀했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스티브 잡스가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소비자들을 놀라게 만드는 것은 비밀이 아니라 속도"라고 지적했다. 잡스의 속도경영은 의사결정은 최대한 신속하게 하되 항상 주위사람들과 미래를 공유한다는 점이다.

이용자가 원하는 속도가 스마트한 속도라는 얘기로 들린다. 높은 곳에 군림하는 한국 기업들엔 소비자들과 네트워크를 여는 일이 급선무일 것 같다.

[모바일부 = 유진평 팀장 greenpe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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