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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지식

디지털은 ‘도구’… 익숙해야 창의성 자극받아

디지털은 ‘도구’… 익숙해야 창의성 자극받아 제18회 융합카페, 유네스코 세계대회 더불어 열려 2010년 05월 28일(금)

과학기술, 인문사회, 문화예술 등 분야별 전문가가 한 자리에 모여 소통을 시도하는 ‘융합카페’가 지난 2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사장 정윤)이 진행하는 융합카페는 이번이 제18회로, ‘예술 분야의 디지털 활용과 창의적 사고’라는 주제 아래 국내외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특히 앤 키플링 브라운(Ann Kipling Brown) 캐나다 리자이나(Regina)대학교 예술교육학과 교수가 강연자로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브라운 교수는 ‘2010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참석차 내한해 이번 행사에 함께했다.

이외에도 임창영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의 진행으로 △김희옥 서울시 대안교육센터 부센터장 △주재연 ㈜난장컬처스 대표이사 등이 발표하고, △이동연 한국예종 한국예술학과 교수 △배윤호 중앙대 연극영화학부 교수가 지정토론자로 참여했다.

▲ 27일 코엑스에서 '예술 분야의 디지털 활용과 창의적 사고'라는 주제로 열린 제18회 융합카페 

무용 수업에도 디지털 기술은 필수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앤 키플링 브라운 교수는 ‘디지털 시대의 무용교육(Dance Education in the Digital Era)’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무용 교육에 있어 디지털 기술이 활용되는 예를 소개했다.

2005년 국제전기전자기술협회(IEEE) 컴퓨터연구회(Computer Society)에서 등장한 “모든 예술 형태 중에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가장 느린 분야는 무용”이라는 지적을 소개한 브라운 교수는 “그러나 무용 분야도 과학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교육에 활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현대 무용의 전설’이라 불리는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은 관객이 던진 주사위에 따라 그날 공연에 쓰일 동작을 정하는 등, 우연성에 의한 다양한 조합을 이용해 창의성을 극대화시켰다. 현재 머스 커닝햄 무용단(Merce Cunningham Dance Company)은 ‘댄스 폼스(Dance Forms)’라는 무용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학생들의 창의성을 높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현대 유럽무용의 창시자인 루돌프 라반(Rudolf Laban)은 움직임을 기록하고 평가할 수 있는 무용기록법, 이른바 라바노테이션(Labanotation)을 개발했다. 최근 오하이오 주립대 무용학과에서 매킨토시용 프로그램으로 개발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무용 동작들을 기호로 기록해서 움직임을 분석하거나 점수를 매길 수 있다.

▲ 앤 키플링 브라운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교수의 발표 

또한 캐나다 국립예술센터는 홈페이지(www.artsalive.ca)를 개설해 최근 3D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무용 교육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사용자들이 단계별 동작을 하나하나 직접 선택하면 화면에 연속동작이 보여지는 방식이다. 춤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어떤 동작이 전체 안무를 완성하는 데 적합할지를 미리 판단할 수 있다. 기술을 이용해 예술 교육의 효율을 높인 사례다.

이외에도 무용가 킨 젠킨스(Ken Jenkins Project)가 진행하는 ‘촬영과 무용(Film and Dance)’ 프로젝트가 있다. 초등학교 3~4학년생들이 무용학과 대학생과 한 조를 이루어 여러 동작을 연습하고 이를 촬영하면서 자세를 교정하는 프로그램이다. 결과를 다시 재생해 살펴보며 토론을 벌이다 보면, 무용 동작에 대한 이해가 더욱 빨라진다.

브라운 교수는 위의 사례들을 통해 디지털 기술이 예술 교육에도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음을 강조했다.

디지털 도구 자유자재로 다루지만 감성이 부족

두 번째 발표자는 김희옥 서울시 대안교육센터 부센터장으로,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창의성은 어떻게 발현될 수 있을까(How we discover creativity in a digital media environment?)’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김 부센터장은 1999년 문을 연 ‘청소년 직업체험센터’를 중심으로 청소년들의 디지털 미디어 활용 상황을 전했다. 직업체험센터는 ‘하자센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하자”, “하하 웃으며 스스로 업그레이드하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획일화된 교육과 무한경쟁 체제 속에서 일탈하거나 방향을 잃는 경우가 많은데, 하자센터의 아이들은 디지털 미디어가 발달한 덕분에 끼와 욕구를 발산할 창구를 얻을 수 있었다. 나이가 어릴수록 기술을 흡수하는 속도가 빨라진다. 청소년 네티즌들은 단순한 인터넷 게시물에 댓글을 적으면서도 컴퓨터 그래픽(CG)을 이용한 입체영상을 만들어 올리기도 하고, 아이폰(iPhone)이라는 새로운 디지털 도구를 만난 이후 더욱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교한 솜씨를 선보인다는 것이다.

▲ 김희옥 서울시 대안교육센터 부센터장의 발표 

그러나 한편으로는 감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는다. 어느 여학생은 “어린 강아지를 냉장고에 넣었다가 꺼냈을 때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반복적으로 냉장고에 넣는다”는 게시물을 올려 네티즌의 화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1963년 저술한 <혁명론(On Revolution)>에서 이미 지적한 ‘공감’의 문제가 우리에게도 닥친 것이다.

아렌트는 ‘자비’와 ‘연민’을 구분하며, “자비(compassion)는 상대방의 고통에 함께 하는 행동으로 열정의 일종이라 볼 수 있지만, 연민(pity)은 타인의 고통에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않고도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불행하다 생각하는 현실을 엿볼 수 있는 표현이다.

김 부센터장은 ‘창의성’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불행한 결말이 예정된 ‘시나리오 같은 현실’을 해피엔딩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예술적 창의성’이므로 더욱 북돋아 주어야 한다”는 조언으로 발표를 끝맺었다.

예술 산업에도 디지털 기술이 큰 몫 맡아

마지막으로 주재연 ㈜난장컬처스 대표이사가 ‘디지로그 - 전통예술의 디지털 공간 창조’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주 대표는 “디지털 매체를 이용해 아날로그적 감성을 되살리는 이른바 디지로그(Digilog) 작업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공연을 홀로그램 기술과 결합시킨 공연 ‘디지로그 사물놀이 - 죽은 나무 꽃피우기’를 소개했다.

디지로그 사물놀이의 무대는 3겹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뒷벽에는 일반 영상을 보여주는 스크린이 있고, 무대 위에는 실제의 사람이 등장해 직접 공연을 펼친다. 그리고 무대 맨 앞에는 가상의 입체영상 즉 홀로그램을 투사하는 보이지 않는 막이 설치되어 있다.

실제 공연자는 다양한 영상을 배경으로 사물놀이를 연주하는 동안 연주자의 주변에는 입체 영상이 등장하는데, 현실의 김덕수가 홀로그램 김덕수와 협연을 펼치는 식의 공연이 가능하다. x, y, z 등 입체적인 요소를 강조한 3D 기술을 뛰어넘어 t(시간)의 개념까지 끌어들인 ‘4D 퍼포먼스’인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은 예술 교육과 창의성 발산 등의 교육적·사회적 효과뿐만 아니라 산업의 영역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 주재연 ㈜난장컬처스 대표이사의 발표 

도구로서의 디지털에 익숙해야 창의성 발휘해

지정토론자로 나선 이동연 교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본능이 있으면서도 디지털 매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지금의 아이들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예술’이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테크네(techne), 로마 시대에는 아르스(ars)라 불렸다. 이는 ‘기술’이라는 뜻도 담고 있었는데, 고대의 ‘예술=기술’ 개념이 현대에 이르러 디지털 미디어 발달로 인해 다시 재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배윤호 교수는 “취업, 성적 등의 현실적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영원성을 지닌 아날로그 예술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디지털이라는 신기한 도구 자체에만 주목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임창영 교수는 “두 명의 석수장이는 도구를 다루는 실력에 따라 작품에도 차이가 드러난다”며, “디지털이라는 도구를 멀리하기보다는 익숙하게 다룰 수 있도록 가까이 대하고 연습을 계속해야 예술적 창의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전체 진행을 마쳤다.

임동욱 기자 | duim@kofac.or.kr

저작권자 2010.05.28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