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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지식

창의성 발휘할 때 뇌는 ‘노닥노닥’ 뇌 속에서 창의성 좇는 신경과학자들

창의성 발휘할 때 뇌는 ‘노닥노닥’ 뇌 속에서 창의성 좇는 신경과학자들 2010년 05월 12일(수)

창의성의 현장을 가다 독특한 시각으로 기존 미술계에 충격을 던진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은 입체파의 시작을 알린 선구작이다. 또한 여류 조각가 루이즈 니벨슨(Louise Nevelson)은 목조각을 이용해 입체파 미술을 구현해 찬사를 받았다. 피카소와 니벨슨은 창의성을 발휘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창의성을 발휘할 때 뇌는 얼마나 분주하며 어떻게 움직일까? MRI 기술을 이용해 뇌 속에서 창의성을 찾으려는 과학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뉴욕타임즈(NewYorkTimes)는 ‘창의성 지도 그리기: 안개 낀 땅에 이정표 세운다(Charting Creativity: Signposts of a Hazy Territory)’는 기사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창의성의 비밀을 밝혀내려는 최신 연구를 소개했다.

창의적인 질문 던지며 MRI로 관찰해

▲ 렉스 영 뉴멕시코대학교 신경심리학 교수 
렉스 영(Rex Jung) 미국 뉴멕시코대학교 신경심리학 교수는 신경학(neurology)을 통해 창의성과 성격, 지능의 연관관계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마인드 리서치 네트워크(Mind Research Network) 연구소에도 재직 중인 영 박사는 MRI 기술을 이용해 두뇌의 활동 사진을 찍어 창의성의 원리를 파헤치고 있다.

영 박사팀은 기존의 창의성 측정 테스트를 실시함과 동시에 뇌 속의 신경신호가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관찰했다.

첫 번째 테스트는 제임스 길포드(James P. Guilford)가 주장한 ‘발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다. 벽돌, 연필, 종이 등 익숙한 소재를 제공한 후 “새로우면서 실용적인 이용법을 적어보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또는 껌으로 얼마나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지 상상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 박사가 만든 ‘실용지능’ 테스트에 상상력을 결합시킨 질문이다. 버스 내 백인 전용석에 앉았다가 체포되어 흑인 인권운동에 불을 지핀 미국 앨러배마주 몽고메리의 로자 팍스(Rosa Parks)가 뒷자리로 가라는 당시 버스 운전수의 요구를 수용했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혹은 히틀러가 2차대전에서 승리했더라면 현재의 세계 판도는 어떠할까 등 가상의 뉴스 헤드라인을 상상해보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유머 테스트도 있다. 초콜릿의 맛을 그림으로 그리라거나, 우스운 만화에 자막을 적어보라는 식이다. 영 박사는 “유머도 창의성의 중요한 일부”라고 강조한다.

▲ 윗줄의 주황색 선은 백질과 축색돌기층이 얇아 정보 소통이 느린 속도로 진행되는 것을 나타낸다. 아랫줄의 파란 부분은 '경험을 즐기는 태도'를 담당하는 부위로 신경망의 속도가 느린다.  ⓒRex Jung

창의성은 느릿한 샛길에서 피어난다

영 박사는 테스트를 통해 ‘혼합 창의성 지표(Composite Creativity Index)’를 만들어 65명의 피실험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고, 놀라운 결과가 도출되었다. 지능을 사용할 때와 창의성을 발휘할 때 뇌의 기능과 동작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지능을 사용할 때는 뇌가 A지점과 B지점의 신경망을 효율적으로 연결해 ‘초고속 정보 고속도로’를 만든다. 덕분에 뉴런(neuron)을 통해 전달되는 전기신호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러나 창의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정반대 현상을 보였다. 좌뇌 전두엽의 백질과 축색돌기층이 얇아 정보의 소통 속도가 더 느려진 것이다. 지능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라면, 창의성은 오솔길을 통해 느릿느릿 여행하는 자전거에 비유할 수 있다.

영 박사는 “창의성은 흥미롭고 두서없는 요소가 가득한 우회도로나 샛길 수준의 신경망에서 발현되는 듯하다”고 견해를 밝혔다.

창의성은 통합적으로 발휘되는 통찰력

이런 방식을 이용한다면 I.Q로 지능을 측정하는 것처럼 C.Q(Creativity Quote)를 만들어 창의성을 측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일부 과학자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존 코니어스(John Kounios) 미국 드렉슬대학교 심리학 교수는 “창의성은 뇌의 한 부분만이 담당하는 특성이 아니”라며 영 박사의 연구를 비판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의 심리학자 마크 비먼과 ‘아하!의 순간(the AHA! moment)’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코니어스 박사는 ‘연합에 의한 통찰력’과 ‘의도적인 차단’을 창의성의 특징으로 꼽았다.

▲ 왼쪽은 통찰력이 발휘되기 전으로, 시각피질에 두뇌활동이 집중되어 있다. 오른쪽은 '아하!의 순간'에 포착한 모습으로, 우측 측두엽 부위가 빛나고 있다. 

재빠르면서도 창의적인 통찰력을 발휘하는 테스트가 있다. 여러 개의 단어를 주고 공통적인 단어를 떠올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말로 하자면 ‘베개, 양지, 글자’를 제시한다. 정답은 ‘머리’다. 베갯머리, 양지머리, 머리글자에 공통적으로 쓰이는 단어다.

실험 결과, 피실험자 중의 반은 여러 조합을 통해 정답을 도출해냈고 나머지 반은 머릿속에서 그냥 떠올랐다고 답했다. MRI로 촬영하자 통찰력이 발휘되는 ‘아하!의 순간’에는 우측 측두엽에서 고주파가 검출되었다. 또한 모니터에 질문이 나타나기 직전의 바짝 긴장한 상태에서는 시각피질이 활성화되기도 했다. 통찰력을 발휘하기 위해 뇌의 여러 부위가 네트워크를 구축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뇌는 통찰력을 발휘하기 위해 일부러 시각정보를 차단하기도 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를 때는 시각피질의 기능을 잠깐 꺼두어 집중력을 높인다. 문제를 골똘히 생각할 때 눈을 감는 행위도 비슷한 원리다.

창의성의 비결은 과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공통적인 결론도 존재한다. 풍부한 경험을 머릿속에 담고 뇌의 여러 부위가 네트워크를 이루도록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다. 아이작 뉴튼(Isaac Newton)도 사과나무 아래 누워 쉬면서 생각을 정리했고, 새뮤얼 콜리지(Samuel Coleridge)는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초현실주의 시 ‘쿠빌라이 칸(Kubla Kahn)’을 떠올렸다. 

물론 존 가브리엘리(John Gabrielli) MIT 인지신경과학 교수의 말처럼, 실험실에서 진행하는 연구만으로는 창의성의 비밀을 알아내기 힘들지도 모른다. 인간의 뇌가 지닌 능력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심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동욱 기자 | duim@kofac.or.kr

저작권자 2010.05.12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