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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일본

일본 긴자의 명물 가부키좌, 역사 속으로

장지영의 도쿄이야기_5(가부키좌, 당분간 안녕)

일본 긴자의 명물 가부키좌, 역사 속으로

글 : 장지영(국민일보 기자, 일본 도쿄대학대학원 문화자원학과 연수 중)

 

도쿄 명품거리 긴자의 명물로 꼽히는 ‘가부키좌(歌舞技座, 일본 전통연극인 가부키 전용극장)’가 4월 30일을 끝으로 재건축을 위한 폐관에 들어갔다. 가부키좌는 3년 뒤인 2013년 봄 지하 4층, 지상 29층, 전체 높이 150m의 빌딩으로 새롭게 탈바꿈될 예정이다.

일본 전통건축 양식의 4층 건물인 가부키좌는 영화와 공연을 제작 및 배급하는 회사로 유명한 쇼치쿠(松竹) 소유로 5월부터 바로 철거에 들어간다. 건물이 낙후된데다 내진설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에 단순한 리노베이션이 아니라 아예 새롭게 지어야 한다는 것이 쇼치쿠의 설명이다.

 

2차대전 때 폭격을 맞기 전

현재

  2013년 봄에 새롭게 문을 여는 가부키좌의 조망도

▲ 2차대전 때 폭격을 맞기 전 → 현재 → 2013년 봄에 새롭게 문을 여는 가부키좌의 조망도

 

하지만 실제로는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긴자에서 토지의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극장을 철거하고 고층건물을 짓는다는 것이 일본 가부키 팬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실제로 2001년 유라쿠쵸에 재개관한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 역시 원래는 극장만으로 된 건물이었으나 재건축하면서 17층 건물 안에 극장이 흡수되는 등 현재 도쿄의 극장들은 국립극장, 신국립극장, 도쿄예술극장, 도쿄 글로브좌, 시키 극장을 제외하곤 모두 고층빌딩 안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29층 현대식 빌딩 속 극장으로 변모

 

지난해 쇼치쿠가 주최로 가부키좌의 재건축 발표 기자회견을 가졌다.  

쇼치쿠는 원래 2007년부터 가부키좌를 비롯해 일대 재개발 계획을 추진해 왔지만 도쿄도와의 의견 차이, 예전 가부키좌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설계에 따른 문화예술계의 반발 등으로 인해 착공시기가 계속 지연돼 오다가 지금의 설계안으로 절충했다. 쇼치쿠 계획에 따르면 430억 엔(약 5,100억 원)을 들여 초현대식 사무 빌딩을 지을 예정이며 건물 1층에 지금과 같은 규모(1859석)의 새로운 가부키좌가 들어서게 된다.

 

지난해 쇼치쿠가 주최로 가부키좌의 재건축 발표 기자회견을 가졌다.

 

쇼치쿠는 새로운 빌딩 정면에 예전 건물의 건축양식을 최대한 살리는 한편 장식물 등도 보존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전과는 상당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철거를 앞둔 지난 3~4월 가부키좌는 극장의 마지막 모습과 공연을 보기 위한 인파로 넘쳐났다. 보통 1개월 평균 관객이 10만 명이었던 것이 지난 3, 4월 경우엔 약 16만 명 이상을 동원했다. 그리고 예약을 하지 못한 관객들이 당일권 또는 취소된 티켓을 구하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는 풍경은 언론의 단골 취재거리가 됐다.

 

참고로 가부키좌의 관객이 규모가 비슷한 일반 극장에 비해 몇 배나 많은 것은 하루에 낮과 밤으로 나누어 7~8개의 레퍼토리를 공연하는 가부키 공연의 특성 때문이다. 가부키는 전막 공연을 하기보다 여러 작품의 일부분씩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관객들은 낮과 저녁 프로그램 가운데 전부 또는 일부를 선택해 관람할 수 있다.

 

민간극장의 재건축이 이토록 화제가 된다는 것이 다소 이해가 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일본 내에서 가부키가 차지하는 위상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판소리나 창극 등 전통예술은 국가의 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일본에서 가부키는 높은 인기를 바탕으로 공연산업의 큰 축을 이루고 있다.

에도시대 서민들 대상의 대중극으로 등장한 가부키는 레퍼토리도 수백 개에 이르는데다 독특한 형식미와 무대 활용 등으로 인해 지금도 웬만한 대형연극이나 뮤지컬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부키좌가 문 닫는 동안 가부키 전문극장이 될 신바시엔부죠에서 ▶
5월 가부키 공연을 앞두고 배우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가부키좌가 문 닫는 동안 가부키 전문극장이 될 신바시엔부죠에서 5월 가부키 공연을 앞두고 배우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게다가 가부키 배우들은 일본에서 연예인 못지않은 선망의 대상이다. 특히 이치가와, 나카무라 등 유명한 가부키 가문 출신으로 영화와 드라마, CM 등에도 자주 나오는 스타급 배우들은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보도될 정도이며 늘 여자 연예인들과 염문설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 일본 연예계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가부키 배우 이치가와 에비조와 인기 아나운서 고바야시 마오의 결혼은 가부키 배우들의 위상을 단적으로 알려주는 사례. 얼핏 보면 양쪽이 대등하게 보이지만 일본에서의 시각은 고바야시 마오를 가부키 최고 명문가문 이치가와의 정통 후계자, 즉 현대판 왕자님과 결혼한 신데렐라로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본 가부키를 상징해온 가부키좌의 위상은 따로 보충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 2013년 재개관까지는 신바시엔부조가 가부키좌 역할 대행

 

원래 가부키좌는 1889년 일본의 연극개량 운동의 영향으로 지어진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가부키를 비롯해 연극은 서민 대상의 오락물이기 때문에 상류계급이 공연을 보러 극장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서구 영향을 받은 연극개량론자들이 극장을 사교장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상류계급이 올 수 있는 극장을 짓게 됐다.

 

가부키좌의 내부 모습. 오른쪽으로 가부키 극장 특유의 '하나미치'가 보인다.  

이에 따라 후쿠치 오치 등이 출자해 만든 가부키좌는 내부는 전통적인 가부키 극장 형태를 따르되 외부는 클래식한 서양풍으로 지어졌다. 그리고 이치가와 단주로 등 당대 최고 배우들을 고용하면서 가부키좌는 금새 일본을 대표하는 극장으로 우뚝 섰고, 그 위상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그리고 얼마 안가 몇몇 개인의 힘으로는 운영하기 어려워진 가부키좌는 주식회사로 전환됐는데, 도호와 함께 흥행회사의 쌍두마차였던 쇼치쿠가 1913년 주식을 전부 인수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됐다.

◀ 가부키좌의 내부 모습. 오른쪽으로 가부키 극장 특유의 '하나미치'가 보인다.

 

하지만 쇼치쿠의 가부키좌는 여러번 극장이 파괴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처음은 1921년 누전으로 전소된 것이고, 두 번째는 1923년 재건 막바지 단계에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또다시 전소된 것이다. 이후 1924년 극장내외부를 전부 일본 전통양식으로 재건한 가부키좌는 1945년 2차대전 막바지에 격렬했던 대공습으로 인해 또다시 파괴되는 운명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막대한 재건비용 때문에 한동안 방치됐던 가부키좌는 1951년 비로소 2차 대전 전의 극장과 유사한 일본풍의 건물로 지어져 지금에 이르렀으나 3년 뒤 고층빌딩 속 극장으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될 예정이다.

 

한편 가부키좌가 문을 닫으면서 쇼치쿠는 신바시엔부조를 가부키 전문극장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그동안 신바시엔부조는 가부키와 연극, 콘서트 등 다양한 장르를 공연하는 극장이었는데, 가부키좌가 새롭게 문을 열 때까지는 가부키만 공연할 예정이다. 특히 쇼치쿠는 이번 신바시엔부조로 옮겨 처음 열리는 가부키 공연에 이치가와 에비조 등 인기 있는 가부키 배우들을 대거 고용함으로써 관객들의 눈길을 잡겠다는 계획이다.

아르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