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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책 읽는 나라 일본을 보며

 
  • 김민배 동경지국장
  • 입력 : 2010.04.19 23:26
김민배 동경지국장
일본 도쿄의 지하철 풍경은 서울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인들은 책 읽는 일본인이 의외로 많은 점에 놀라게 된다. 일본 사람들은 가방 속에 문고판 책을 넣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꺼내 읽는다. 며칠 전, 도쿄의 출근길 지하철에서 정말 깜짝 놀랄 만한 모습을 보았다. 초등학교 3~4학년쯤 된 학생이 지하철을 타서 내릴 때까지 시종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이었다. 어른이고 어린이고 일본인의 책 읽는 모습은 신칸센, 공원 벤치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은 올해까지 17년째 '국민독서운동'을 펴고 있다. 이 일엔 정부·정치권·민간단체가 완전히 하나다. 여야(與野)도 없다. 깃발은 민간단체가 먼저 들었다. "어린이와 젊은이가 책을 읽지 않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1993년, 일본의 출판·도서관·어머니단체 15개가 이런 슬로건으로 단체를 결성했다. 어린이가 책에서 멀어지는 현상이 심각해, "비상사태선언이 필요하다"는 전국학교도서관협의회의 경고가 계기였다. 마이니치신문의 조사 결과, 그해 한 달 평균 초등학생 독서량은 6.4권, 중·고교생은 1.7권, 1.3권이었다. 중·고교가 특히 심각했다.

1988년, 지바(千葉)현의 여고 교사 오쓰카 에미코씨는 자기 반에서 수업시작 전 10분간 '아침독서'를 도입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과 시를 읽게 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학생들을 무섭게 변모시켰다. 15년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학생이 3년 후 취미가 독서라고 할 정도였다. 5년 후인 93년, 아사히신문이 이를 칼럼에 소개하자 전국에서 동참 학교가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300, 500, 1000개교를 넘어 2002년 1만개교로 늘었다. 올 4월 현재, '아침독서'에 참여하는 일본의 초·중·고교는 총 2만6531개교(70%). 공립 초등학교 참여율은 94%나 된다.

국회도 바로 동참했다. 93년 12월, '어린이와 책의 의원연맹'이라는 초당파 의원모임이 탄생했다. 아동문학작가 출신의 여성의원, 히다 미요코씨가 산파였다. 이후 일본 국회는 관련 법과 제도 정비에 나섰다. 우선 학교도서관법 개정과 국립어린이도서관 개관을 목표로 세웠다. 국립어린이도서관 설립은 의원들조차 "꿈나라 얘기"라고 했다. 그러나 2년 뒤 '국제어린이도서관설립추진의원연맹'이 구성되어 법이 제정됐고, 2000년 5월 5일, 도쿄에 국제어린이도서관이 오픈했다. 도서관법이 개정되고, 99년 8월 중·참의원에서 2000년을 '어린이독서의 해'로 정하는 만장일치 결의가 채택됐다. 헌정사상 첫 '독서결의안' 채택이었다. 일본 정부도 '학교도서관도서정비5개년계획'을 세워 1000억엔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며, 지원에 나섰다. 2008년 초등학생의 한 달 평균 독서량은 무려 11.4권, 중학생은 3.9권으로 올라갔다.

일본은 이후 '어른 독서'로 눈을 돌렸다. 2005년 국회에서 '활자문화진흥법'이 제정되고, 이듬해 '문자·활자문화추진기구'를 구성했다. 2010년을 '국민독서의 해'로 정했다. 구호는 '책 읽는 나라 일본을 만들자'이다.

일본은 100여년 전에도 대대적인 독서운동을 벌인 바 있다. 1897년 도서관령을 제정, 전국 방방곡곡에 도서관을 건립한 것이 이때다.

한국이 지금 일본에서 수입해야 할 것이 있다면, 이런 끈질긴 독서운동과 이에 호응하는 일본인의 독서문화일 것 같다. 23일은 마침 일본이 법으로 정한 '어린이독서의 날'이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