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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미래는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세계의 지배자’다 [중앙일보]

2010.04.09 20:20 입력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 본지 단독 e-메일 인터뷰

“중국모델은 아직 초기 단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 만에 수 억명의 인구를 기아에서 구해낸 것은 세계사의 거대한 성과다. 서구식 민주주의만이 국민을 먹여살릴 수 있다는 독선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메가트렌드 시리즈’로 유명한 세계적인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가 본사와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한 말이다. “중국이 발전하면 할수록 중국식 민주주의 모델은 서방의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가 말하는 ‘중국모델’은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이 최근 저서에서 ‘수직적 민주주의(Vertical Democracy)’를 답으로 제시했다. 이는 ‘권력의 양단, 즉 지도부와 피지배층이 상하 관계를 유지하면서 발전하는 통치’로 요약될 수 있다. 개인의 자율과 경쟁을 강조하는 서방의 ‘수평적 민주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 사회에서는 지도부의 하향식(top-down)전략과 국민의 상향식(bottom-up)참여로 의사가 결정된다. 국가를 운영할 자격은 선거가 아닌 목표의 달성 여부에 따라 주어진다. 정치인들은 선거를 위해 투쟁하는 대신 목표 달성을 위해 전력투구한다.”

그는 더 나가 ‘중국이 서구 민주주의의 대안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말도 던졌다. 세계 금융위기로 미국식 자본주의가 흔들리고 있고, 중국의 기세가 욱일승천하는 지금 눈길을 끌만한 지적이다.

“중국을 서구인의 관점이 아닌 중국인의 시각에서 보라” 그가 책을 통해 누누히 강조한 말이다. 나이스비트가 중국의 시각으로 본 중국인들은 ‘자신을 개인보다는 집단의 일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훌륭한 성과를 보장해주는 강력하면서도 신중한 지도자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같은 특성을 바탕으로 생성된 수직적 민주주의 속에서 중국 경제·사회·문화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 묘사하고 있다.

그는 중국의 장래를 낙관했다. 단순한 ‘세계 공장’에서 벗어나 세계를 지배할 새로운 기술 혁신자로 탈바꿈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그 목표를 향해 순항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이제 단순히 세계 무역조건의 순응자가 아닌 무역조건 자체를 바꾸는 존재가 됐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몰락』(고든 창), 『중국이라는 거짓말』(기 소르망) 등에서 보여지는 서구의 비관적 시각과는 반대다.

이 쯤이면 독자들은 ‘중국 정부의 대변인 아냐?’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실제로 책 곳곳에 특정한 예를 일반화하는 오류가 발견된다. 한 마을 주민들의 보험 가입 사례를 들어 중국 전체 사회보장제도가 완비되고 있다고 한 점, 인터넷 검열은 지도부와 인민이 긴밀하게 균형을 이루는 과정이라는 분석 등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중국은 티베트인을 농노제도에서 해방시켰기에 지배할 도덕적 권한이 있다”라는 구절은 위험한 발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중국인에게만 환영받을 책이라는 얘기다.

이 책은 2009년 1월 중국어로 출판된 후 중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렸다. 인민일보는 ‘2009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달랐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3월22일자에서 ‘왜 차이나 메가트렌드가 실망스러운가’라는 기사를 통해 그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난했다. 중국은 호주 리오틴토 직원 체포 사건, 구글의 철수 등으로 서방언론의 공격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때 중국을 심하게 두둔한 책이 나왔으니, 그 책은 또 다른 ‘중국 때리기’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이스비트는 턱도 없는 소리라고 받아친다. 그는 인터뷰에서 “중국의 성공스토리를 쓴 책은 서방에서 비난받을 각오를 해야한다”며 “중국을 보는 서방 시각이 근본적으로 왜곡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양보를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심하게 부정적인 측면으로만 기울어진 시각을 바로 잡는 데는 유용할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균형성 논란은 결국 독자가 판단해야할 문제로 남게 됐다.

이 책을 쓴 이유를 묻자 “비즈니스맨들에게 보다 객관적인 중국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한국 비즈니스맨들에게 해 주고 싶은 충고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런 답을 보내왔다.

“중국을 공부해라. 중국인의 시각으로 중국을 봐라. 깊이 알면 알 수록 중국은 거대한 기회의 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중국은 위협이 아닌 기회다.”

한우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