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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영국, 프랑스, 독일, 유럽

"부러우면 지는데... 솔직히 부럽다~ 영국"

▲ 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 28일 오전 8시(한국 시간)부터 열린 런던 올림픽 개막식 생중계 한장면.
ⓒ 런던올림픽조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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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8시(한국 시간)부터 열린 런던 올림픽 개막식을 생중계로 시청했다. 인류사에서 근대 이후를 잉태한 '대영제국 런던'에서 열리는 올림픽이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대니 보일이 연출하는 개막식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3막으로 구성한 개막식의 주제는 '경이로운 영국(Isles of Wonder)'. 개막식 공연단은 3000명으로 꾸려졌고, 비용은 한국 돈으로 약 480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런던 리밸리에 위치한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막식을 전 세계 120개국의 정상을 비롯한 8만여 명의 관중이 현장에서 직접 지켜봤다. 언론은 나처럼 세계 곳곳에서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개막식을 지켜본 시청자를 약 40억 명으로 추산했다.

 

무게가 23톤인 '올림픽 종'의 타종과 함께 개막식은 약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잉글랜드,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 네 개의 나라로 이뤄진 대영제국답게 서사(序詞)는 네 나라의 합창단이 각나라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꾸며졌다. 역설적으로 이 장면은 일치를 향한 끝없는 갈원이야말로 대영제국의 여전한 숙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 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 28일 오전 8시(한국 시간)부터 열린 런던 올림픽 개막식 생중계 한장면.
ⓒ 런던올림픽조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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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산업혁명 시대의 여성과 노동자의 행진은 영국이 잉태시킨 근대의 모순을 잘 보여줬다. 이어서 영리하고 치밀한 대니 보일은 무상의료 병원의 침대와 소설 <해리포터>의 저자 조앤 K. 롤링을 등장시켰다. '사회보험'과 '어린이 문학'이야말로 대영제국이 세계에 내놓을 대표적인 자랑거리라고 한껏 으스댄 것이다.

 

올림픽 스타디움에는 무상의료 병원에서 동화를 읽어주는 간호사들과 <해리 포터>의 볼드모트, <피터 팬>의 후크선장 등 동화 속 악당들 그리고 이 악당들을 물리치는 영국 보모의 상징 메리 포핀스가 차례로 출연했다. 대니 보일은 '동화 같은 현실이 이뤄지고 있는 나라, 대영제국'을 뽐내고 싶었던 것이다. "요즘 디즈니가 어린이문학을 이끄는 듯 보이지만, 사실 영국문학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겠다"고 했던 대니 보일의 예고는 영국 문학에 대한 자긍 그 자체였다.

 

그리고 대니 보일은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은 무력이 아닌 문화로 유지됐음을 영국의 대중음악을 통해 자랑했다. 비틀스는 물론이고 더 후, 롤링 스톤스, 섹스 피스톨스, 퀸 등 영국이 자랑하는 뮤지션들의 노래들이 한밤의 런던은 물론 이른 아침인 서울과 한낮인 시드니에서 공중파를 타고 울려 퍼졌다.

 

그들이 올림픽 개막식 통해 자부심 넘치게 자랑한 것은... 

 

유독 새벽잠 많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올림픽 개막식. '대영제국은 올림픽 개막식을 어떻게 치를까, 영화감독이 연출하는 올림픽 개막식은 어떤 장면일까'하고 품었던 막연한 호기심은 뼈에 사무치는 부러움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들이 개막식 비용으로 약 480억 원을 쏟아 부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개막식에 근엄하신 '여왕 폐하'를 출연시켜서가 아니다. 그들이 개막식 무대의상으로 5만7000벌을 사용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다른 것도 아닌 '사회보험'과 '어린이문학', '영국의 문화'를 자부심에 넘쳐 자랑했기 때문이다.

 

국민보험법과 국민보건서비스법 등을 비롯한 6개의 영국 사회보장법은 아직까지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회보장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떤 학자는 "영국의 사회보험은 사회주의의 사회보장조차 비웃어 버린다"고 표현했다. '무상급식'을 '빨갱이 정책'이라고 극렬하게 반대하는 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대한민국과 비교되어 그저 부러울 뿐이다.

 

대영제국은 '3류 스포츠 쇼'를 부리는 와중에도 셰익스피어의 희곡 <더 템페스트> 한 대목을 낭송하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요즘 인기 많다는 '철수 생각'에도, 수첩공주의 '선진 타령'에도 없는 문학에 대한 열렬한 자긍이 개막식 내내 밑강물처럼 흘러 부럽고 부러웠다.

 

개막식은 비틀스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가 '헤이 주드(Hey Jude)'를 부르는 것으로 끝을 지었다. 비틀스, 섹스 피스톨스,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딥 퍼플, 퀸 등 세계 대중음악의 역사를 써 나간 밴드를 배출한 나라임을 대놓고 자랑하는 나라, 부러웠다.

 

시쳇말로 '부러우면 진다'는데, 이 순간만큼은 가장 완벽하게 부러워하고 싶다. 그래야 꿈꾸고 도전할 수 있을 테니까.

 

▲ 2012 런던올림픽 개막식 28일 오전 8시(한국 시간)부터 열린 런던 올림픽 개막식 생중계 한장면.
ⓒ 런던올림픽조직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