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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융합과 변화의 상징

'용'은 융합과 변화의 상징

임진년(壬辰年), 용이 주는 의미

2012년 01월 02일(월)

> 융합·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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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올 2012년은 임진년(壬辰年)이다. 임(壬)이 육십갑자의 10천간(天干) 중 검은 색을 뜻하고, 진(辰)이 12지지(地支) 중 용을 뜻하므로 올해는 '흑룡의 해'라 말한다. 사람들은 올해 흑룡의 강한 기운을 기대하며, 결혼·출산 등 일생일대의 중요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용, 꿈을 꾸다’ 특별전을 하고 있다  ⓒ김수현
우리 조상들에게 용이란

‘별주부전’에서 용왕을 살리고자 토끼의 간을 찾아 육지에 온 자라는 토끼를 데리고 바다 용궁으로 간다. ‘심청전’에서 효녀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지금의 서해로 추정)의 제물이 되었으나 다행히 용왕이 구해준다. 우리 고전소설에 나타난 것처럼 우리 조상들은 용을 바다의 신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한 해의 풍어(豊漁)를 기원하기 위해 어민들은 바닷가 앞에서 용왕제를 지냈다.

새해 “용꿈 꾸세요” 덕담을 해보자. 예부터 용꿈은 최고의 꿈으로 쳤다. 용은 능히 못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는 이성계 할아버지 도조의 꿈에 백룡이 나타난 이야기가 나온다. 흑룡을 죽여달라는 백룡의 청을 들어주자, 백룡이 사례하고 자손이 크게 흥할 것이라고 예언했단다.

우리 조상 시조 중에서는 용과 관련된 이가 많다. 고구려 시조인 주몽(재위 BC37~BC19)의 신화를 보면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는 지상에 내려올 때 다섯 마리 용이 끄는 수레를 탔다.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재위 BC57∼AD4) 부인 알영은 용(龍)이 알영정(閼英井)에 나타나 낳은 딸이라고 한다.

건국 신화에 용과 관련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것은 건국 시조들의 비범함과 신성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용은 왕을 의미하기도 하여, 용의 옷을 '용포'라고 하고 용의 얼굴을 '용안'이라고 하였다.

중국 황하(黃河) 상류에 물살이 센 여울이 있어서 웬만한 물고기는 이를 오르지 못하나 이를 뛰어오르기만 하면 물고기가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다. 이 여울이 있는 협곡의 이름은 용문(龍門). 그리하여 용문에 오른다는 의미인 '등용문(登龍門)'은 입신(立身) 출세(出世)의 관문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서양인들이 용을 싫어하는 이유

▲ 2012년은 임진년(壬辰年) 흑룡의 해이다  ⓒScienceTimes
그런데 우리와 달리 서양에서는 용을 싫어한다. 왜 용을 싫어할까? 이에 대해서는 ‘코스모스’, ‘콘택트’ 등 유명 과학대중서를 쓴 칼 세이건의 저서 ‘에덴의 용’을 참고해볼만 하다. ‘에덴의 용’은 뇌과학에 관한 책이지만 중생대 공룡과 인간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포유류 간의 싸움에 대한 재미있는 가설이 나온다.

그는 파충류인 공룡은 변온동물이고, 인간의 조상이라 추론할 수 있는 포유류는 항온동물이기 때문에 밤낮의 주인이 번갈아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즉, 밤이면 포유류가 기온이 떨어져서 꼼짝 못하는 공룡에게 다가가 그들의 알을 잡아먹었을 것이고, 낮이면 몸집이 큰 공룡이 낮 동안 잠든 포유류를 잡아 먹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이때부터 공룡에 대한 적대적인 심리가 진화되어 인간에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심지어 현재는 공룡 멸종의 원인을 대규모 운석 충돌로 인한 기상이변 때문으로 보고 있지만, 칼세이건이 이 책을 집필한 1978년 당시 일부 고생물학자들은 ‘포유류들이 밤마다 알을 먹어치운 것이 공룡의 멸종을 가속화했다’고 믿고 있다고 전한다. 그래도 어찌 몸집이 작은 포유류가 거대한 공룡의 적수가 될 수 있을까 싶지만 몸무게 대비 뇌의 무게를 기준으로 볼 때 공룡은 포유류에 비해 아주 멍청했다고 한다. 당시 브라키오사우루스의 몸무게는 무려 87톤이었는데 그의 뇌는 인간보다 1만 배 작았다. 그러니 공룡과 포유류는 비록 몸집 차이는 엄청나지만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 동산 추방의 원인이 파충류(뱀)에 있다는 것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용은 12지지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 

반면 동양, 특히 한중일에서는 용에  대해 어떠한 적대적인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용과 관련된 최초의 유물은 중국에서 7천년 전 신석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토기와 옥모양 장식에서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청동기시대에서 초기 철기시대에 제작된 울산 천전리 암각화(국보 147호)에 네 발 달린 용으로 보이는 그림이 있다.  

용은 육십갑자 12지지를 이루는 띠 동물 중에서 유일한 상상의 동물이다. 그것은 여러 동물의 특징을 결합하여 만들어졌다. 중국 송나라의 책에 보면 용은 ‘뿔은 사슴, 머리는 낙타, 눈은 토끼, 목덜미는 뱀, 배는 이무기(蜃), 비늘은 물고기, 발톱은 매, 손바닥은 호랑이, 귀는 소’와 같은 모습이라고 했다.

용은 융합과 변화의 상징

▲ 용모양의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 1437년에 만들어진 시간을 재는 천체관측도구를 복원했다(국립민속박물관 전시물)  ⓒ김수현
여러 가지 동물의 특징을 합쳐서 강력한 존재가 된 용. 이러한 이유로 이어령은 ‘십이지신 용’이라는 책에서 용을 ‘융합’의 상징이라 말한다. 그리고 21세기 글로벌 환경 속에서 가장 필요한 정보지식 IT를 이끄는 힘은 용과 같은 정신이라고 말한다. 곧 하이브리드, 크로스오버, 퓨전, 컨버전스, 매시업, 인터랙티브 등의 이종교류와 배합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또한 그는 작아지기도 하고 커지기도 하는 능소능대(能小能大)의 신축성을 가지고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가며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는 용에서 한국인의 융통성을 발견한다.

같은 책에서 일본인 하마다 요는 용이 일본에서는 ‘유비쿼터스’처럼 다양한 사상이나 문화의 공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유비쿼터스란 어디에서나 존재한다는 의미의 영어로, 라틴어에서 유래했다. 용은 하늘, 땅, 물 어디에나 나타날 가능성이 있고, 하나의 이미지나 관념만을 고정적으로 가진 것이 아니어서 그는 용에서 유비쿼터스를 떠올린 것이다.

하마다 요는 현대에 들어와서 이러한 용이 판타지소설, 만화, 애니메이션에만 갇혀 버린 것을 안타까워하며 동아시아의 용은 환경을 상징하기에 걸맞은 메타포라고 제안한다. 즉, 동양의 용은 자연친화적인 이미지이므로 지구온난화, 생물다양성의 상실, 수자원의 고갈, 기타 모든 분야에 용을 이용하여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용은 여러모로 우리가 사는 2012년에 걸맞은 상징인 셈이다.

김수현 객원기자 | writingeye@daum.net

저작권자 2012.01.02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