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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술시장 ‘뉴욕 → 베이징’ 권력 이동 중

세계 미술시장 ‘뉴욕 → 베이징’ 권력 이동 중

[중앙일보] 입력 2011.11.05 00:55 / 수정 2011.11.05 11:12

경매 낙찰 총액 기준 분석

쩡판즈의 ‘무제39’(2002). 베이징이란 거대 도시가 내뿜는 허영·기만·자기만족 등을 담아 큰 호응을 얻은 대표작으로 ‘가면 시리즈’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겪는 도시화 문제, 개혁·개방이라는 중국의 특수성 두 가지가 맞물렸다.

중국 베이징이 세계 미술시장의 중심에 진입했다. 경매 낙찰 총액 기준으로 뉴욕에 이어 2위다. 지난해엔 뉴욕, 런던, 파리, 홍콩 순이었다. 중국 출신의 주목 작가군도 한층 늘었다. 1945년 이후 태어난 미술가 중 지난 1년간 경매 거래가 가장 많았던 작가는 장미셸 바스키아(1960∼88), 쩡판즈(47), 제프 쿤스(56), 장샤오강(53), 천이페이(1946∼2005) 순이다. 지난해엔 바스키아와 쿤스가 각각 1·2위를 했고, 5위권 내에 중국 미술가는 없었다. 베이징이 세계 미술시장 1번지가 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징후들이다.

 글로벌 미술시장 분석회사인 ‘아트프라이스’는 최근 내놓은 ‘현대미술시장 2010/2011’이라는 보고서에서 이같이 진단했다. 보고서는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 파리에 이어 세계 미술의 중심지였던 뉴욕의 위상이 흔들리는 현상을 ‘뉴욕 시대의 종언?’이라는 별도 토픽으로 다뤘다. 자본이 몰리는 정도를 기준으로 꼽은 미술시장의 중심은 뉴욕, 베이징, 홍콩, 런던, 상하이, 파리, 항저우, 스톡홀름, 싱가포르, 두바이 순이다. 10개 도시 중 중화권이 다수를 차지했다. 보고서는 세계 미술시장을 위협하는 중국 시장의 약진을 전하면서도 “구겐하임·휘트니·현대미술관(MoMA) 등 세계적 미술관이 몰려 있고 첼시에만 200여 곳 넘는 화랑이 있는 한 뉴욕은 여전히 매력적인 미술 도시”라고 견제구를 날렸다. 베이징 시장에 대해서는 “아시아 미술가 위주로 거래되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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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매 거래 총액 기준 현대미술 500대 작가에는 중국 미술가가 208명 포함됐다. 미국(75명)의 세 배 가까이 된다. 일본 미술가는 14명, 한국은 162위로 집계된 서도호(49) 등 8명이 포함됐다. 지난해에 중국 미술가는 137명, 미국은 87명, 한국은 10명이었다.

 ◆파리→뉴욕→베이징 시대=서구 근대미술의 주무대는 파리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인상파·입체파·야수파 등 근대미술의 역사를 일궜고, 근대적 미술 경매를 시작했다. 그 아성이 흔들린 계기는 전쟁이다. 양차 세계대전으로 마르셀 뒤샹 등 당대 미술가들이 뉴욕으로 거점을 옮겼다. 구겐하임·록펠러 등 뉴욕의 부호 가문에서 이들을 후원하며 미술품을 사들였다. 인재 수혈, 두둑한 뒷돈. 역사가 짧은 미국은 덕분에 현대미술에서 새 역사를 만들었다. 추상 표현주의, 팝 아트, 개념미술 등 현대미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뉴욕에서 시작됐다. 그 총아가 팝 아트의 스타 앤디 워홀이다. 지금은 제프 쿤스가 그 후계자 자리를 노리고 있다.

 한때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넘어갔던 미술의 중심이 이제는 서양에서 동양으로 재편되는 걸까. 왜 지금 중국 현대미술일까. 혼란한 중국 현대사를 직접 체험한 미술가들이 담아내는 직선적 메시지가 중국 밖의 사람들에게는 참신하게 다가왔다. 시골 출신으로 거대 도시 베이징에 와서 느꼈던 이질감을 가면 쓴 인간 군상에 담아낸 쩡판즈의 ‘가면’ 시리즈는 ‘도시화’ 이상의 정치적 의미로 재해석됐다. 오래된 가족 사진 속 군상을 다시 그렸더니 이들의 멍한 표정에 중국의 각 세대가 감내했을 정치적 혼란상이 담겨 있는 걸로 읽혔다. 장샤오강의 ‘혈연:대가족’ 시리즈 얘기다. 결국 중국에 대한 높아진 관심이 미술로도 쏠린 셈이다.

 ‘아트프라이스’는 철저하게 미술 시장의 공식 거래 기록, 즉 경매 결과만을 분석 자료로 삼는다. 미술 작품의 미적·역사적 판단은 보류한다. 이번 보고서가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서구에서 먼저 주목받기 시작한 이른바 ‘수출용’ 중국 현대미술이 ‘내수용’으로도 의미를 갖게 됐다는 사실이다. 자국 미술이 서구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을 수년간 지켜본 중국인들이 대거 움직이면서 베이징이 ‘새로운 미술 자본’으로 부상했다.

‘아트프라이스’는 올 초 아시아 현대미술 시장만을 다룬 보고서를 발행하기도 했다. 한국미술정보개발원 윤철규(서울옥션 전 대표) 대표는 “파리의 인상파가 뉴욕으로 넘어오면서 세계의 인상파로 꽃피웠다. 중국 미술 시장의 부상은 동양 미술이 주목받는 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미술시장연구소 서진수(강남대 교수) 소장은 “중국은 이미 지난해 세계 미술시장 점유율 33%를 차지하면서 미국(29.9%)을 앞질렀다. 전체 미술 분야에서 그랬다는 얘기다. 이번 집계는 동시대 미술에서도 중국이 우위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거래 총액, 작가 수 등 모든 면에서 미술 시장이 베이징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권근영 기자

◆아트프라이스(artprice.com)= 파리에 위치한 글로벌 미술시장 분석회사. 전 세계 3600여 미술품 경매소의 정보를 취합해 해마다 미술 시장의 동향을 분석하는 자료를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