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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유적지 없애고 만리장성 건설 중국 지도층, 유교부흥 통해 민족통합 도모

고구려 유적지 없애고 만리장성 건설 중국 지도층, 유교부흥 통해 민족통합 도모 2010년 03월 15일(월)

인문학과 과학이 서로 협력, 미래를 만들어가는 인문강좌 행사가 최근 줄을 잇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행사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학문 간 경계를 넘어, 세상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엿보이고 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석학들이 진행하는 인문강좌를 연재한다. [편집자 註]

석학 인문강좌 중국인의 세계관을 말할 때 흔히 중화(中華), 화이(華夷), 천하(天下)라는 단어가 동원된다. 문명의 세계와 야만의 세계를 나눠 중국이 문명의 중심에 서 있으며, 이곳에서는 하늘의 뜻을 받은 자, 즉 천자(天子)가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는 의미다.

천하와 천하가 아닌 세계, 중화의 세계와 오랑캐의 세계를 구분하는 잣대는 유교다. 본래 유교 이전에 천하관이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유교가 화이의 담론을 장악하면서 유교가 중국과 오랑캐를 구분하는 문명의 잣대가 되었다.

그런데 중국의 이 천하관이 최근 진시황제를 모델로 제작한 ‘영웅’이란 영화를 통해 갑자기 대중적인 언어로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학자들의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 중국이 진시황 시대를 회고하며 천하통일을 도모하고 있다. 사진은 진시황제 무덤에서 발굴한 유물. 

13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에서 김광억 서울대 교수는 이를 통해 중국 정부와 국가 지도자들이 화이사상과 유교문화의 부흥을 도모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이 같은 중국의 전통을 공통분모로 삼아서 문화공동체를 이루자는 메시지를 감지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금 ‘민족단결’ 구호를 신성시

김 교수는 그러나 중국의 오랜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중국을 구성하는 종족이나 민족 정체성이 일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라마다 강조점도 다양하게 변화해왔는데 이는 중국의 대외적인 상황, 혹은 내부적인 상황변화에 대한 반응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시대에 따라 유교에 대한 해석도 변화했다. 그 실천의 양상도 많은 변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은 주나라 때부터 변함없이 그들의 심성과 머리에 유교적 세계관·가치관이 가득 차 있어온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는 것.

중국은 건국 이래 지금까지도 ‘민족단결’이라는 구호를 국가이념의 하나로 신성시하고 있다. 다민족 민족공동체로서 공화국을 구성한다는 이념적 명분에 따라 중국 정부는 그동안 다양한 정책을 실시해왔다.

▲ 김광억 서울대 교수 
건국초기에는 모든 민족 집단의 언어와 역서, 제도, 풍습, 종교 등 소위 민족 고유의 문화를 존중하고, 정치적 평등을 선포했다. 민족 식별작업을 통해 이들 소수민족은 1950년대 중반에 와서야 결속될 수 있었으며, 55개의 특별한 명칭을 가질 수 있었다.

소수민족의 전통적인 문화와 사회적 제도를 존중하는 이 같은 작업이 진행된 것은 원시공산제에서 노예제, 봉건제, 과학사회주의로 이어지는 사회진화론의 틀에서 소수민족들의 영토와 그들의 협력을 중국 건설에 결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초창기 중국은 소수민족의 고유성과 전통에 변화를 가하기 시작했다. 즉 미개와 낙후를 벗고 진화의 최종 단계인 사회주의 혁명 체제 사회로 ‘발전’ 혹은 ‘문명화’하기 위한 것으로 한어를 배우고, 전통적으로 고루한 문화를 버리도록 교육하기 시작했다.

민족개혁으로 불리는 이 작업은 소수민족 사회의 고유한 권력구조와 자치제도를 전복·와해시키고, 중국 정부의 통치체제로 편입시키려는 작업이었다. 즉 이(夷)를 화(華)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곧 이에 대한 반발과 갈등이 커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중국 정부는 다시 이 정책을 완화하고, 각 민족의 고유한 문화전통을 기록·보존하는 것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언어에 대해서도 이중 언어정책을, 인구 억제정책에 있어서도 한족과 구별되는 우대정책을 펴나갔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은 이를 ‘분열주의’라 낙인찍고, 대대적이고 철저한 파괴를 자행했다. 각 민족의 문화와 그 문화의 물질적 유산들이 문화대혁명 10년 동안 거의 다 사라졌다. 개혁개방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중국 정부는 다시 국가 차원에서 소수민족의 문화전통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한족 중심의 천하통일 움직임... 점차 노골화

그러나 이 정책 또한 오래 가지 않았다. 1990년 중반에 들어서면서 중국 정부는 다시 소수민족의 문화, 특히 언어에 대한 지원 대신에 한어를 적극적으로 학습하도록 요구하기 시작했으며, 역사를 한족 위주의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소수민족에 대한 민족자치권이나 민족문화 존중을 표방하는 통합주의(integration) 대신에 동화주의(assimiliation)를 내세우는 이론이 교차적으로 실시됐으며, 지금은 한족 중심의 천하를 이룩하자는 한화주의가 점차 노골화 되고 있다.

▲ 13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언어동화정책, 소수민족의 역사를 한족 지배의 중화역사로 편입시키기, 소수 민족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산업개발과 함께 한족을 대량 이주시키는 민족화해의 공동체적 사회 만들기 등등...

민족적 차별, 혹은 구별을 없앤다는 것은 소수민족과 한족을 동일시 한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소수민족의 역사와 문화, 사회적 전통을 소멸시킨다는 점에서 소수민족들로부터 큰 저항을 받고 있다.

중국에 있어 소수민족의 존재가 어떻게 각인되고 있는지는 인민대표회당의 중앙 홀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곳에는 민족단결의 이념을 반영하기 위한 대형 그림이 걸려 있다.

이 그림 상부 중앙에는 혁명의 한족 주역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 한족 농민과 군인과 남녀노소가 있으며, 그 주변부에 소수민족들이 있다. 이들은 자신을 노예제와 원시공산제, 봉건제의 굴레로부터 해방시켜 군 혁명에 환호하고 있다.

지난 25년 간 개혁개방에 대한 기록화에서도 소수민족의 모습이 들어 있다. 처음에는 티벳, 몽골, 위구르의 세 민족이 들어 있었지만, 최근 그린 그림에는 조선족이 첨가돼 있다.

그림의 의미에 대해 김 교수는 “이 네 민족 집단이 중국 민족단결 정책에 있어 가장 정치적으로 민감한 존재이며, 동시에 이들 네 민족은 결코 한족과 분리할 수 없다는 정치적 선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대륙에서 강력히 전개되고 있는 유교부흥운동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민족적 기억(national memory)을 재생산, 혹은 발명함으로써 민족적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주목할 점은 중국 정부가 향후 민족적 통합을 위해 어떤 정책을 취할 것이냐는 점이다.

통일천하 위해 고구려·발해 유적지 변형

한족의 기억을 민족적 경계를 넘어서는 모든 민족의 집단적 기억으로 확립할 것인지, 아니면 각 민족의 개별적 기억을 총합해 새로운 중화의 기억을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선택은 건국 후 지난 60년 간 중국이 반복적으로 취해온 정책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최근 상황에 비추어 “비록 완만하지만 전자로 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지금 중국에서는 ‘중화민족’이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이 단어의 의미는 ‘다원일체화(多元一體化)’라는 말로 표현되는 이론이다.

문화주권(cultural sovereignty)론까지 동원하면서 대대적인 중화문화 복원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그동안 문화유산의 중요성을 부르짖던 지식인은 모택동 시절에서부터 이미 반혁명 분자로 낙인이 찍혀왔다.

그러나 지금 정부가 직접 중화문화, 특히 민간문화를 발굴, 보존하는 운동을 주도하는 아이러니를 볼 수 있다. 이런 추세 속에서 오늘날 많은 소수민족 지역의 고대 문화유적이 고대 한족 시대, 특히 진(秦), 한(漢), 당(唐) 시대의 양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고구려 유적지, 발해 유적지의 변형적인 복원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전까지 단둥에 고구려성의 유적이 있었으나 지금 이것은 없어지고, 대신 명대의 장성을 모방한 성이 만들어지고 있다.

중국은 이 성이 동쪽 중국 만리장성이 만들어진 지점이라고 주장한다. 이로써 만주지방은 더 이상 바깥 오랑캐 나라가 아니고, 중화의 세계였다는 역사적 기억을 만들어내고 있다.

중국은 한족의 단일민족 국가가 아니라 엄연한 다민족 국가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 이질성을 극복하고, 소수민족을 하나의 통일된 국가, 즉 통일천하로 묶으려고 애쓰고 있으며, 그것이 지금의 국가적 이념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볼 수 있는 국가 주도의 문화정치는 보편적 문명관을 버리고, 애국주의와 대중적 민족주의로 통일천하를 이루려는 문화 정치학이라고 김 교수는 평했다.

이강봉 편집위원 |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0.03.15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