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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그들은 누구인가 김광억 교수, 중국인의 일상세계 분석

중국인…그들은 누구인가 김광억 교수, 중국인의 일상세계 분석 2010년 03월 08일(월)

인문학과 과학이 서로 협력, 미래를 만들어가는 인문강좌 행사가 최근 줄을 잇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행사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학문 간 경계를 넘어, 세상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엿보이고 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석학들이 진행하는 인문강좌를 연재한다. [편집자 註]

석학 인문강좌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찾고 있다. 그리고 거대한 빌딩이 계속 들어서는 도시, 거리를 가득 메운 유동인구, 낙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농촌과 농민의 모습 등을 보게 된다.

그러나 사전에 충분한 정보를 갖고 중국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면 중국인의 일상생활로 이루어진 현실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중국인의 현실 세계와 동떨어져 있는 관광루트를 돌다보면, 경험적으로 알 수 있는 중국은 매우 편파적이고 피상적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인류학자인 서울대 김광억 교수는 6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를 통해 그동안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현안 위주의 접근 방식을 지적했다.

▲ 6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그동안 눈앞에 정치적 문제나 경제적 진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학자들이 현안 위주의 접근(연구)이 중국의 역사·문화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연구풍조를 낳았다는 것.

정부 정책과 법, 각종 통계수치, 제도와 조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지역 혹은 지방사회의 역사적 깊이와 문화적 전통의 중요성, 사회를 구성하고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내는 사람(중국인)에 대한 관찰을 소홀히 해왔다고 말했다.

마치 제도와 정책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사회, 지역이나 민족 경계를 넘어 동일하게 작용한다는 (잘못된) 전제를 심어주었다며, 중국의 중요성에 비추어 이제 중국을 정치·경제적 접근과 함께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결합한 새로운 방법론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문화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본 중국인의 일상세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역사에 대한 상상이 판단의 근거

현대 중국인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행위나 국가 운명에 대해 논할 때 자신도 모르게 역사라는 기억의 세계를 언급하고 있다. 기억은 그 가장 가까운 시간에서 거슬러 올라가게 마련이라 가까운 과거의 경험이 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한다.

천안문 사태, 문화대혁명, 모택동 시절의 많은 혁명 운동, 그 이전 장개석과 손문에 의한 민국시대, 더 거슬러 올라가 청·명·송나라 시대,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성당시대와 진한시대에 대한 상상의 기억을 곧잘 끄집어낸다는 것.

흥미롭게도 중국인들은 원나라와 금나라에 대한 기억은 별로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점은 기억의 선택권, 혹은 선택 능력, 혹은 기억의 주체성에 관련된 문제다.)

▲ 김광억 서울대 교수(인류학) 
중국인들은 자신의 지역을 먼 과거의 장소·지역·공간의 정치학적인 맥락에서 보기도 한다. 이를테면 산동지방을 노(魯)나라라고 하고, 교동지방을 제(齊)나라라고 한다. 산서지방을 진(晉)나라로, 절강성을 월(越)나라, 강소성을 오(吳)나라라고 부른다.

고대 역사에 편입되지 않은 동북지방은 각각 길림(吉), 요녕(遼), 흑룡강(黑), 서장(藏), 신강(彊), 청해(靑)이라 한다. 그리고 복잡한 역사로 인해 하나로 부르기 곤란한 경우에는 지방의 이름을 따서 사천(川), 절강(浙), 귀주(貴), 운남(雲), 녕하(寧), 내몽고(蒙), 감숙(甘), 천진(津), 북경(京), 중경(重) 등으로 표시한다.

중국인의 일상세계에서 수천 년의 시간이 응축돼 현재의 지방을 상징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중국인이 옛 연고를 따져서 부르는 지방의 이름은 현재 행정구역제도에 의해 경계가 정해진 지역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역사에 대한 중국인의 의식은 “역사를 만드는 것은 권력자지만 그 역사를 품고 사는 자는 백성이다”란 까뷔의 언급, “기억을 통제하는 것은 곧 인민을 통제하는 것이다”란 푸코의 언급으로 모아진다.

때문에 최근 부상하는 문제들로서 세대 간의 정치적 갈등이나 문화적 긴장은 대부분의 경우 기억의 주도권을 두고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람들은 그들만의 세계와 역사적 기억을 갖고 있어서 국가, 그리고 권력 엘리트와 부단한 긴장과 경쟁, 그리고 갈등과 타협을 만들어가고 있다.

대형 다큐멘터리 통해 역사의식 고취

때로는 자신의 역사의식을 위해 엘리트, 그리고 국가와 공모를 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중국사회에 번지고 있는 애국주의와 민족주의, 혹은 중화주의 열기는 이런 대중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이를 문화상품으로 조직하려는 정치적 기술이 공모해 빚은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소위 인민의 다양한 성향과 세력을 국가적 통제 하에 둘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대중 언론매체, 그중에서도 특히 TV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매체는 대중을 상대로 가장 빠르고 직접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념을 교육하고 전파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 영화 '영웅'의 한 장면 
90년대부터 시작해 2008년 북경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초대형 역사영화와 TV 사극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또한 중국의 과거와 미래를 조명하는 대형 TV 다큐멘터리와 혁명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대형 문화 프로그램이 기획됐다.

5·4운동의 맥을 이어 80년대 초에 ‘하상(河傷)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그것은 (대륙에 닫혀 있는) 늙고 느린 황색의 거대한 강, 즉 황하(黃河)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문화대혁명 이후 개혁개방의 이념적 배경을 지지하는 것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대중적 담론은 이를 중국의 찬란한 오천 년 문명을 부정적으로 보는 서구 제국주의와 지적 식민주의의 앞잡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이었다.

주목할 점은 90년대 후반부터 개혁개방의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등장한 영상들이다. 이 영상들은 이 긍정적인 결과가 서구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혜택이 아니라, 중국에 내재한 중국문명의 위대함이 발동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2006년에 방영된 ‘대국굴기(大國崛紀)’란 제하의 TV 연속 다큐멘터리는 지난 세기에 세계 열강이어TEjs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미국, 러시아, 일본 등 9개 나라의 흥망성쇄를 분석하고, 중국의 흥망성쇄를 비교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공산당의 영도 아래 지난 사회주의 혁명으로 다져진 기반 위에서 위대한 대국, 중국의 부흥이 임박했음을 감동적으로 전파하면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초대형 교양물로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 교재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냈다.

이 교양물은 부국강병에서 강병부국으로 그 선후가 바뀌어야 한다는 군사대국으로서의 중국의 부상을 주장하는 여론 조성의 각종 토론회를 낳았으며, 세계질서를 문명의 중화세계와 야만의 서구열강의 이분법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여름궁’으로 불리던 ‘원명원(圓明園)의 폐허는 “이전 봉건체제의 부패와 무능이 사치를 일삼음으로써 백성과 유리되고, 마침내는 서구 열강에 중국이 패배하는” 수치의 역사를 낳은 증거물로 거론됐다. 또한 모택동에 의한 공산혁명의 역사적 필연성을 확인시키는 증거가 됐다.

‘부흥(復興)’이란 주제의 대형 전시 프로젝트 교양물에는 지난 50년간 공산당과 해방군의 영도에 의해 중국 인민이 어떤 고난을 헤쳐 나와 대국 중국의 부흥을 눈앞에 두게 됐는지에 대해 현대사가 감동적으로 극화돼 있다.

비슷한 시기 ‘홍색기억(紅色記憶)'과 ’나의 장정(長征)‘이란 문화 활동이 연중행사로 진행됐으며, 이 행사들은 TV를 통해 전국에 되풀이 방영됐다.

진시황의 천하통일 과업은 성스러운 일

장예모 감독의 영화 ‘영웅(英雄)’은 천안문 사태로 위축된 국내 분위기를 일신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과 그 과정에서 패망한 나라의 검객이 진시황에게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다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진시황의 그 유명한 한 마디 말 ‘천하(天下)’로 요약된다.

즉 진시황이 하늘로부터 명을 받아 천하를 통일하는 성스러운 일을 했으며, 진시황의 향후 관심 역시 ‘천하’를 실천하는 것이라는 이 말은 자객을 진시황 앞에서 굴복하게 하고, 장렬한 죽음을 받아드리도록 한다. 이 영화는 곧 천안문 사태로 표현된 젊은 지식인의 불만과 공산당에 의해 이룩한 통일천하의 대업을 교차해 보여주고 있다.

김 교수는 이런 영상들이 일련의 애국심과 민족적 자부심, 그리고 과거 대제국으로서의 영광된 역사가 오늘날 다시 실현되고 있다는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대중국이라는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 인민 정서와 감정을 하나를 묶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지금 중국 상황에 대해 두 가지 미래 예측이 나오고 있다. 하나는 긍정적인 예측으로서 비록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민주화는 필연적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거대한 규모의 인구, 복합적인 민족구성체를 유지하기 위해 중국식 통치체제, 혹은 정치체제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지금 중국에서는 사회주의 혁명 프로그램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많은 사람들은 중국에서의 자본주의 경제체제 확산이 사회주의 체제를 종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중국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면 경제 토대가 되는 토지를 비롯한 많은 기간 자원이 여전히 전민소유라는 이름의 국유재산으로 돼 있으며, 개인은 호구제도에 의해, 지역과 직업 기회에 있어 이전의 제도에 묶여 있다는 것.

정치 지도자와 행정관리는 신지식인의 자질을 갖췄고, 서구적 분위기를 익숙하게 연출하고 있지만, 그들은 공산당의 인력 배양의 제도적 장치 안에서 허용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강봉 편집위원 |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0.03.08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