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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서 살아남은 혈연과 지연 지금은 미래 중국 건설하는 힘으로 부상...

문화대혁명서 살아남은 혈연과 지연 지금은 미래 중국 건설하는 힘으로 부상... 2010년 03월 22일(월)

인문학과 과학이 서로 협력, 미래를 만들어가는 인문강좌 행사가 최근 줄을 잇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행사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학문 간 경계를 넘어, 세상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엿보이고 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석학들이 진행하는 인문강좌를 연재한다. [편집자 註]

석학 인문강좌 중국을 방문한 사람은 어디서나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고 쓴 쑨원(孫文)의 글씨를 보게 된다. 중국인 모두 대동(大同, Great Harmony)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가족에 대립되는 특별한 개념이 담겨 있다. 공(公)이란 가(家)라는 이기적이고 사적인 세계로부터 탈피해, 모두가 평등한 공동체, 즉 대동 세계를 이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가(家)는 이상적인 국가를 이루려는 유교적 세계관, 즉 천하(天下)의 기본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한(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구절의 실현방안을 놓고 그동안 중국에서는 긴장관계가 이어졌다.

마오쩌둥, 서둘러 가족해체작업 단행

20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에서 김광억 서울대 교수(인류학)는 ‘국가와 사회와의 관계, 가(家)·족(族)·향(鄕)·국(國)’이란 제하의 강연을 통해 인민의 사적인 영역과 국가 제도·법규 사이에 어떤 갈등관계가 이어져왔는지 그 실상을 설명했다.

중국인은 혈연조직인 가(家)와 족(族)외에도 지연을 중시한다. 지연을 중시한 것이 향(鄕)이다. 또한 중국인들의 혈연과 지연은 지역사회, 혹은 국가와 관계를 맺는데 있어 중요한 사회문화적 기제가 된다.

▲ 1966~1976년까지 이어진 문화대혁명 포스터. 
결국 사회주의 혁명은 가족과 향으로 대표되는 사적인 세계를 국가 공동체가 장악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그런 맥락에서 인민의 사적인 영역과 국가 제도·법규 사이에 갈등은 필연적이었으며, 어떤 갈등관계가 이어져왔는지 그 실상을 파악하는 일은 중국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면서 가장 먼저 가와 족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가와 족의 경제적 기반인 토지와 건물 등 모든 재산을 국가에 바치는 소위 전민소유제(全民所有制)를 단행했다.

사회적 단위로서의 가와 족도 집체화와 단위제를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해체했다. 처음에는 호조조(互助組)에서 합작사(合作社)로, 그 다음에는 인민공사제(人民公社制)로 바꾸었다. 약 20~25호의 가구가 기본적인 생산대가 되고, 10개 정도의 생산대가 생산대대로 편제되고, 10개 정도의 생산대대가 인민공사를 구성하는 방식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사회주의 국가는 그동안 중국인들에게 있어 일상생활이라고 할 수 있었던 시장, 신앙, 개인의 사회적 관계 등을 모두 부정했다. 대신에 기본적인 물자와 전기, 물, 의료, 교육, 복지 등을 모두 국가에서 담당했다.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사회생활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생산성 저하, 사회 정체로 인한 경제적 낙후가 이어졌다. 마오쩌둥(毛澤東)과 류사오치(劉少奇) 간의 벌어진 다툼은 이로부터 발단이 됐다. 그리고 이 갈등은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졌다.

개혁개방 후 가족·고향 문화 다시 부흥

첫 단계에서는 마오쩌둥의 홍(紅)이 중국을 지배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국면은 류사오치의 전(專)의 승리로 돌아선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주도아래 사상해방,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실사구시, 개혁개방 등의 정책 구호가 이어졌다.

▲ 김광억 서울대 교수 
그리고 이 같은 구호들 아래 책임생산제, 시장의 부활, 단위체제의 해체, 아직 완전치않고 공식화된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직업 자유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다. 최근 들어서는 국가가 책임지던 사회주의 복지체제가 보험가입제로 바뀌는 등 큰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주목할 것은 개혁개방 이후 가족 문화가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경제력이 향상된 중국인들은 (가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주택을 개량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문화대혁명 등으로 인해 사라진 조상의 묘, 족보, 사당 등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주택건설은 개혁개방 정책의 성과를 직접 확인시켜주는 효과가 있어 오히려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분묘와 사당 재건은 사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됐다. 호화분묘의 거대한 공원묘원이 개발됐으나, 정부에서 이를 금하고 분묘를 없애도록 조치했다.

한편 1가구 1자녀 원칙에 의한 소황제(小皇帝)의 출현은 새로운 가정 형태를 탄생시켰다. 이전에 노동력을 생선성의 핵심으로 여겼던 시대에는 사세동당(四世同堂), 오세동당(五世同堂)과 같은 대가족을 이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어른들의 집중적인 애정 속에서 키워지는 소황제의 출현은 개인주의, 이기주의, 포용성과 참을성의 결여, 부모를 비롯한 어른에 대한 불손함 등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과연 이들이 미래 중국을 짊어지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핏줄 의식과 함께 향(鄕)으로 상징되는 지연 의식도 복구되기 시작했다. 최근 유동인구의 이동 패턴과 임시거주 방식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모두 동향 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베이징(北京) 교외에 정강성 온주에서 올라온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무허가 불법 집단거주지가 생겼는데, 이를 절강촌(浙江村)이라고 부른다. 온주 사람들은 중국 곳곳에 소위 집단 거주지를 만들고 제품을 내다판다.

최근 들어서는 학맥이 주요 자원으로 부상

전국적인 연계망을 통해 제품과 부속품 재료 등을 서로 교역하면서, 인력과 자본, 기술 및 시장 관리 기술을 동원한다. 때문에 타 지역사람들로부터 시장침해, 혹은 경제·산업 부문의 침해란 반발을 사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하남촌(河南村), 호남촌(湖南村) 등의 별칭이 생겨나고 있다. 실제로 전국 곳곳에 초대형 시장이 서는 것은 이런 유동인구에 의한 것이다. 새로운 시장에는 다양한 인력이 필요하고, 이 노동력을 내육 가난한 농촌지역 주민들이 충당한다.

▲ 20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해외로 이민을 갈 때도 고향은 매우 중요하다. 해외에서 중국인들은 두 가지 조직의 도움을 받는다. 즉 씨족 조직과 동향 조직이다. 이 두 조직은 중국의 고향을 중심으로 초국가적인 연계망을 갖고 있다. 해당 국가에서도 전국적인 연계망을 갖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혈연, 지연과 함께 학맥이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농촌에 중학교 동창관계는 새로 생기는 취업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교는 촌락이나 향의 경계를 넘어 미래 인간관계를 메게 하는 문화적 자원으로 중요시되고 있다.

중국인의 일상세계는 이처럼 가와 족으로 표현되는 혈연세계와 고향으로 표현되는 지연 세계, 그리고 최근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학맥의 세계가 얽혀 있으면서 국가가 규정하고 제시하는 공적인 세계와 끊임없이 경쟁과 타협을 이어나가고 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오직 사회주의만이 신중국을 만든다’, ‘공산당 없이 신중국은 없다’,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따른다’라고 쓴 간판들을 곳곳에사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인민들은 간판들을 바라보면서, “위(정부)에는 정책이 있고, 아래(현지 백성)에는 책략이 있다”란 말을 하고 있다.

이 말은 의미심장한 말이다. 김 교수는 이 말을 현재적 상황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말 속에 5천 년의 유구한 역사 흐름 속에서 인민이 살아온 지혜이자 힘이 담겨 있으며, 아마 이 힘이 5천 년의 중국 역사를 만들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강봉 편집위원 |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0.03.22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