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세미나//인물

[아침논단] 재벌이 불러온 한나라당의 '左클릭'

[아침논단] 재벌이 불러온 한나라당의 '左클릭'

  •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 입력 : 2011.07.10 23:07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자본주의 최대 敵은 빈부격차, 우파정당 좌클릭은 예방백신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재산 기부로 빈부격차 완화… 우리 재벌도 편법 중단하고 자본주의 위기 극복 앞장서야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은 한층 더 높아졌다. 우리가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시장경제제도(자본주의) 덕분이다. 그런데 최근 재계를 대표하는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한국자본주의가 위태로워지고 있다고 염려했다.

자본주의는 자유기업, 작은 정부, 선택의 자유를 추구하는 제도다. 자본주의는 진화의 산물이다. 그리고 진화론의 핵심은 '적자(適者)생존'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존재만이 살아남는다. 지금까지는 자본주의가 적자(適者)였지만 앞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 자본주의도 도태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생존을 위협하는 최대의 적(敵)은 빈부(貧富)격차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이자 세계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Gates)는 이 적에 대항하려면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로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업이 정부·비영리단체와 힘을 합쳐 '사회적 인정(recognition)'과 같은 시장 인센티브를 활용해 빈부격차 완화에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한다.

빌 게이츠는 세계 2위의 부자이자 투자의 귀재(鬼才)인 워런 버핏(Buffett)과 함께 1년 전부터 억만장자들을 대상으로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기부하자는 '기부 선언(giving pledge)' 운동을 펼쳐오고 있다. 버핏은 이미 2006년에 자기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했고 게이츠는 그 이상을 기부할 예정이다. 이들의 솔선수범에 감명받은 억만장자들이 이 운동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30대 재벌 가운데 게이츠나 버핏 같은 인물이 있는가? 자본주의의 건전성을 위해 상속세 유지·강화를 주장하고 자식들에게 큰 재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재벌이 있는가? 없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로 상속세를 회피하려고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라는 교묘한 편법을 사용해오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현대·기아차 그룹의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父子)는 이 편법을 사용해 종자돈 547억원을 10년 만에 3조6763억원으로 불렸다. 최태원 SK 그룹 회장은 101억원을 투자해 2조439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삼성 그룹 역시 삼성SDS가 상장될 경우 이건희 회장 자녀들이 수조원의 시세차익을 얻을 거라고 한다.

상속세 회피를 위한 재벌의 이런 행태와 날로 심해지는 빈부격차는 결국 한국자본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 이 위기는 동시에 우파(右派) 정당인 한나라당의 위기를 의미한다. 한나라당 7·4 전당대회에서 '용감한 개혁을 통한 넓은 보수론'을 주창한 유승민 후보가 깜짝 2위로 최고위원이 된 것도 이런 위기의식 때문이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유승민 최고위원으로 대표되는 한나라당 중도·소장파의 '좌(左)클릭'이 한국자본주의를 위협한다고 걱정한다. '좌클릭'이란 우파정당이 감세(減稅)철회나 무상급식과 같은 좌파 정책을 수용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허 회장은 다음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심각히 고민해봐야 한다.

첫째, 대북(對北)안보 문제에서 가장 보수적인 유 최고위원이 왜 민생에서는 '좌클릭'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좌클릭'이 좌파로부터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한 예방백신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환경이 변할 때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위기에 처한 한국자본주의를 지켜낼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기부에 인색하고 편법상속을 일삼는 재벌의 행태는 한국자본주의의 위기를 자초했다. 재벌은 왜 그런 우(愚)를 범했을까? 그것은 제도로서의 자본주의가 국방처럼 '무임승차(無賃乘車·free riding)' 인센티브를 부르는 공공재(public goods)적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즉, 재벌 전체로는 자본주의의 건전성 확립을 원하지만 각 재벌은 다른 재벌의 노력에 무임승차하고 싶어 한다. 허 회장은 재벌들을 설득해 무임승차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재벌들이 편법적 상속의 중단과 더불어 '기부 선언'과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로 국민을 감동시키고, 협력업체에 대한 불법·부당행위를 근절해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을 도모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자크 로게(Rogge)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평창!'을 외치자 이건희 회장은 눈물을 글썽였다.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이 회장을 비롯한 재벌들이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2018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려면 먼저 그들이 한국자본주의 위기 극복에 앞장서야 한다.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