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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유럽 대중문화 한 갈래로 자리 … 한류 열기는 먼 얘기

K팝, 유럽 대중문화 한 갈래로 자리 … 한류 열기는 먼 얘기

[중앙선데이] 입력 2011.06.19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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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한류팬, 캐나다인 마크 러셀의 ‘파리 열기’ 진단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도대체 왜?”
지난주 프랑스 파리를 뜨겁게 달군 ‘SM타운 라이브 월드투어’를 보며 한국인들은 뿌듯함과 동시에 그런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문화 선진국 프랑스와 유럽의 젊은이들이 왜 한류에 열광할까. 먼저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파리 본사의 문화 담당 에디터 타라 멀홀랜드에게 e-메일로 물어봤다. 그는 “유럽의 아시아 열풍이 한국에까지 미친 걸로 보인다. 미국·영국산 팝에 지친 유럽 팬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취업난에다 어두운 미래로 우울한 유럽 젊은이들이 K팝을 뭔가 새로운 해방구처럼 여기는 것 같다는 분석도 있다”고 소개했다.
스페인에 거주하는 캐나다인 한류 전문가 마크 러셀. [마크 러셀 제공]

조금 더 심층적 분석을 위해 ‘외국인 한류 1세대’인 캐나다인 마크 러셀(40)과 두 차례 e-메일 인터뷰를 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그는 1996~2009년 서울·대전 등에서 살며 한류 전문가가 됐다. 우연히 한국 인디 밴드의 연주를 듣고 빠져든 게 발단이었다. 이후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할리우드 리포터 등에 한국 영화와 대중음악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한류에 대한 생각과 지식을 집약해 2009년에 펴낸 『팝 고우즈 코리아(Pop Goes Korea)』는 월스트리트저널이 “한류에 대해 외국인이 쓴 첫 번째 책으로 한국의 연예산업의 이해를 돕는다”고 호평했다. 러셀은 현재 유럽의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프리랜서 문화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유럽 젊은이가 K팝에 열광하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역설적이지만 한국의 내수시장이 작은 게 도움이 됐다. 내수시장만으로 만족 못한 한국 대형 기획사들의 세계화 전략이 성공했다. 외국인 멤버를 포함시키고 다국적으로 스태프를 꾸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겨냥한 게 통했다. 여기에 세계 대중음악 소비자들의 성향도 신선한 것, 새로운 지역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방향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요즘 젊은이들이 소통의 주요 도구로 쓰는 페이스북·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국가 간 소통의 장벽을 허물었다. 세계 각국의 문화가 서로 섞이며 통합되는 게 대세다. 지역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K팝이 등장했고, 유럽 젊은이들도 거부감 없이, 오히려 ‘K팝=신선하다’라는 등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SM엔터테인먼트 콘서트 현장에서 현지 팬들이 공연을 2회로 늘린 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실제로 유럽에서 체감하는 한류 열풍은 어느 정도인가.
“SM엔터테인먼트의 콘서트는 확실히 성공했다. 한국 매체들이 ‘한류가 유럽을 정복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던데 지나친 표현이다. 신선한 충격으로 K팝을 좋아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는 건 맞지만 한류의 ‘열기’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나는 한국을 사랑하긴 하지만 냉정하게 흐름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현상을 잘 파악해야 한류의 흐름을 이어나가는 데도 도움되기 때문이다. 소녀시대나 슈퍼주니어가 한국의 특징적 콘텐트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정복’이란 말은 심한 과장이다. 현실적으로 2NE1과 레이디 가가의 콘서트가 나란히 유럽에서 열린다고 가정하면 누가 더 비싼 값에 더 많은 표를 판매할 수 있겠나. 레이디 가가다.”

-그럼 파리에 모인 젊은이들의 열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젊은이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의사 표시를 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나. 스페인이 프랑스 바로 이웃이긴 하지만 이곳 바르셀로나의 단골 카페에서 K팝이 나오는 건 매우 드물다. 주류 문화에 적극 편입된 것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그러나 잠재력은 충분히 있다는 게 이번 콘서트로 증명됐다. 적어도 유럽 대중문화의 하나의 서브컬처(하위 문화) 중 하나로 당당히 자리 잡은 셈이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진전 아닌가.”

-잠재력을 더 끌어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유럽의 대중음악은 팝뿐만 아니라 록, 헤비메탈, 일렉트릭 등 다양한 장르로 구성돼 있다. 한국에서 ‘한류’라고 하는 그룹들을 보면 댄스음악 일변도다. 다양성이 없다. 사실 이는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아이돌 중심의 댄스음악으로 임팩트를 줬다면 흐름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트가 뒷받침이 돼야 한다. 대중음악 팬들은 항상 새로운 걸 원한다. 일본 아니메(애니메이션)가 유럽·북미 지역에서 80년대 선풍적 인기를 끈 후 지금은 주류 문화로 자리 잡은 배경엔 아니메의 다양한 콘텐트가 있다. 지금 K팝 아이돌 댄스그룹을 보면 사실 누가 누군지 특색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나마 YG엔터테인먼트의 2NE1이나 빅뱅이 멤버 구성이나 음악에서 개성이 더 돋보인다. SM엔터테인먼트는 10대 아이돌 댄스음악에 순수하게 치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수만, 양현석, 박진영 대표와 같은 대중음악계 리더들은 지금까지 세계 시장을 잘 개척해왔다. 특히 박진영 대표의 원더걸스가 미국에서 거둔 성과는 여러 조건을 고려할 때 괄목할 만하다. 미국 시장은 타국 대중문화에 좀 더 배타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다양성 제고를 위해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까.
“‘비둘기 우유’라는 팀을 들어봤나?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한국인이라고 해도 귀에 익지 않은 한국 출신 인디 록밴드들이다. 그리고 둘 다 미국의 주요 음악 페스티벌인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일명 SXSW)’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이렇게 자국에선 외면 받지만 자신만의 음악 색채를 이어가는 인디 밴드에 희망이 있다. 내가 처음 한국 대중문화에 빠진 것도 우연히 ‘삐삐 롱 스타킹’이나 ‘새봄에 핀 딸기꽃’과 같은 인디 밴드의 공연을 본 후였다. 한국 인디 밴드들의 음악은 창조적이고 새롭다. 현재 K팝은 노하우와 문화권력을 가진 대형 기획사 몇몇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아시아 이외 지역에서 꾸준히 한류를 이어나가려면 비주류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 정부도 이미 잘나가는 아이돌 댄스음악보다는 인디 밴드나 록그룹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비단 음악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영화·만화·TV드라마 등등 모든 대중 문화 장르에 통하는 얘기다.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한국에선 4만 관객만 모았다. 하지만 그 영화는 몇 년간 외국의 한국 영화 팬들이 ‘넘버 원’으로 꼽는 영화였다. 60년대, 70년대 당시 한국 대중 문화의 층은 더욱 두터웠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신중현이나 ‘하녀’를 찍은 김기영 감독만 봐도 철학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문화의 역사가 있다. 이런 특징을 한국 정부가 잘 살렸으면 하는 게 개인적 바람이다. 해외 한국 문화 지원을 얘기할 때 한국 정부는 부채춤이나 국악 같은 전통 문화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진정한 문화 다양성을 짚어낼 수 있어야 모처럼 찾아온 한류의 가능성도 극대화할 수 있다.”


전수진 기자 sujin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