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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지식

후쿠시마를 지키는 ‘최후의 사무라이’

후쿠시마를 지키는 ‘최후의 사무라이’원전 작업원들의 목숨 건 희생정신에 감동2011년 03월 18일(금)

사타 라운지 작년 6월 영국 잡지 엠파이어는 아프리카에서 처음 개최된 남아공 월드컵 대회를 기념하기 위해 영어 이외의 언어로 제작된 영화를 대상으로 ‘사상 최고의 월드 시네마 100편’을 선정해 발표했다. 그 중 1위를 차지한 작품은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54년에 만든 ‘7인의 사무라이’였다.

‘7인의 사무라이’는 영화 자체로도 걸작이지만, 이후의 영화에 수많은 영감을 준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율 브린너와 스티브 맥퀸이 열연한 ‘황야의 7인’은 할리우드에서 ‘7인의 사무라이’ 판권을 사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또 ‘나바론’이나 ‘더티 더즌’ 등 이후 제작된 무수한 전쟁 영화 및 액션 영화가 이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영화의 배경은 사무라이라는 직업이 거의 종말을 맞은 16세기 전국시대의 한 가난한 일본 농촌이다. 보리 수확이 끝날 무렵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모든 식량을 약탈해가는 산적에 대항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사무라이를 초빙한다.

그들은 의협심이 있어 보이는 간베이라는 무사에게 처음 부탁했고, 그를 통해 모인 7명의 사무라이가 뜻을 함께 하기로 한다. 그 7인 중 4명이 전사하는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사무라이들은 결국 산적들을 전멸시키고 마을을 구해낸다는 줄거리이다.

지금 일본 열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에서도 이처럼 자신을 희생시키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무라이들이 있다. 방사선 누출 사고 이후 원전 현장 근무자 800여 명 중 750명이 철수한 뒤 50여 명의 작업원이 남아 핵 재앙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원전 근로자 이미 5명 사망

▲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7인의 사무라이' 
쓰나미로 정전이 된 후 곳곳에서 수소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의 현장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칠흑의 어둠 속에서 손전등에 의지해 작업을 해야 하는데, 폭파된 건물 잔해들이 곳곳에 나뒹굴고 녹아내린 철근 사이를 헤집고 다녀야 한다.

또 각종 전자제어 장치가 작동불능 상태에 있어 모두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언제 원자로가 터질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지진 발생 이후 벌써 5명의 원전 근로자가 사망했으며 2명이 실종됐고 부상을 당한 근로자도 22명이나 된다. 

게다가 일본 보건후생성은 이들에 대한 피폭방사선량 법정한도를 100mSv(밀리시버트)에서 250mSv로 올렸다. 이는 미국 원전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최대 피폭방사선량의 5배 수준인데,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작업을 더 시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의 운영회사인 도쿄전력은 마지막으로 현장에 남아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 작업원들의 신상에 대해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후쿠시마 원전에서 모집하는 긴급수리요원에 많은 이들이 자원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폭발사고 이후 원전에서 철수해 안전지대에 머물고 있던 도호쿠 엔터프라이즈의 직원 3명은 다시 작업에 자원해 원전 현장으로 들어갔다.

또 정년퇴직을 불과 6개월 앞둔 59세의 지방전력회사 직원도 긴급수리요원에 자원했다. 18세부터 원전에서 근무했다는 이 남성은 언론사에 자기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가족들과 이별을 한 후 후쿠시마로 향했다.

긴급수리요원에 자원한 50세 남성

역대 최악의 원전 사고인 체르노빌 사고 때 최초의 사망자로 기록된 이들 역시 원전 작업원들이었다. 폭발 직후 작업원 한 명이 현장의 구조물 속에 그대로 묻혀버려 완전히 실종되었으며, 중앙제어실에서 근무하던 운전원들은 높은 방사선에도 불구하고 사고 현장을 찾아 현황을 파악하다 병원으로 후송된 후 방사선 급성 장해로 역시 사망했다.

사고 초기 화재 진압에 투입된 소방대원 중 한 명도 병원에 후송된 후 사망했다. 사고가 발생한 지 3일 후 모두 299명이 방사선 급성장해 징후를 보였는데, 그 중 29명이 사고 발생일로부터 약 3개월 이내 차례로 유명을 달리했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그처럼 많은 이들이 방사선에 피폭된 것은 당국의 무지 때문에 일어난 인재라고 보는 의견들이 많다.

이번에 후쿠시마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작업원들이 영웅으로 칭송되고 있는 것은 그래서이다. 체르노빌의 사례에 비추어볼 때 원전사고 현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면서도 자기 목숨을 건 희생정신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의 말처럼 만약 이들마저 실패한다면 동일본이 박살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지구촌은 지진 이후에 보여준 일본인들의 질서 의식에 경탄했다. 파괴된 도로에서도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가 하면 대피소에서 배를 곪으면서도 서로 음식을 양보하는 그들을 지켜보았다. 지하철 감축운행으로 몇십 분 만에 지하철이 와도 먼저 타려고 새치기하는 이가 없고, 혼란을 틈탄 약탈사건도 전혀 없었다. 

메이와쿠와 사무라이

불편해도 누구 하나 남을 원망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이런 질서 의식은 ‘메이와쿠(迷惑)’라는 용어로 설명되고 있다.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게 일본인들의 문화이자 민족성이다. 

▲ 체르노빌 사고 당시 원전 운전원들이 방사선에 피폭돼 사망했다. 
메이와쿠 문화를 잘 보여주는 일화로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본인을 구해줬더니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보다 ‘폐를 끼쳐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번의 쓰나미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수십 시간 만에 구조된 일본인들은 자신을 구해준 구조대원에게 정말로 ‘나보다 더 위험한 사람이 있을 텐데 폐를 끼쳐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이런 배려 정신과 함께 원전 현장을 지키는 결사대들의 희생정신에 전 세계가 놀라워하고 있다.

‘7인의 사무라이’에서 대장 역할을 하는 간베이가 산적들과의 전투를 앞두고 읊조린 다음의 대사 속에 사무라이의 희생정신이 잘 요약되어 있다.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나아간다면 우리 각자는 무사할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는 자신을 파멸시킨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 2noel@paran.com

저작권자 2011.03.18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