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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일본

이틀 전 걸었던 ‘눈의 나라’ 아오모리 … 파멸의 풍경 앞에서 말을 잃었다

이틀 전 걸었던 ‘눈의 나라’ 아오모리 … 파멸의 풍경 앞에서 말을 잃었다

중앙일보 | 입력 2011.03.14 00:14 | 수정 2011.03.14 09:26

[중앙일보]

지진해일이 강타한 아오모리 하치노헤 해안에 13일 어선 한 척이 뒤집힌 채 쓸려와 있다. [아오모리=AP 연합뉴스], [아오모리=강혜란 기자]

이달 6~9일 한국저축은행이 후원하는 제비꽃 문학기행 참석차 일군의 문인이 일본 본토 최북단 아오모리현(靑森縣)을 다녀왔다. 시인 신경림·박규리, 소설가 이경자·은희경·이현수·김인숙·공선옥·안재성·한창훈·김종광 등 10명이다. 이들은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생가 등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이틀 뒤 일본 대지진 소식을 접했다. 대자연의 재앙 앞에 속수무책으로 고통에 잠겨 있을 일본을 생각하며 소설가 한창훈(48·사진)씨가 글을 보내왔다. 아오모리는 대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센다이(仙臺) 와 접해있으며 현재까지 사망 3명, 실종 2명의 인명 피해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경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이렇게 된 일이다.

 일본 아오모리현을 찾아간 게 지난 6일 오전이었다. 홋카이도(北海道) 아래, 혼슈(本州) 북쪽 끝 지역. 사과와 온천이 유명한 곳이라고 들었다. 그리고 그곳은 눈(雪)의 세상이었다.

 도로에 열선이 깔려있어 차 운행은 매끄러웠고 눈은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른 도로와 수직으로 쌓여있는 눈. 대략 1.5m였다. 보통의 경우 3m 정도 쌓인단다.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1899~1972, 68년 노벨문학상 수상)가 소설 『설국』을 쓴 곳이 이곳이라고, 동행한 이현수 작가가 말했다. 그럴 만하다. 내가 머물렀던 4일간 내내 눈이 내렸으니까.

 우리 일행이 묵었던 나쿠아 시라카미 호텔은 깨끗했고 직원들도 친절했다. 나는 그곳에서 맨 끝 가지 몇 개만 눈 위로 나와 있는 나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최후의 호흡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은 아지가사와 바닷가에도 푹푹 내렸다. 그 바닷가 다키와 주점에서 우리는 광어와 참치회를 두고 청주를 마셨다. 아름다운 풍경과, 아직도 해결 안 된 양국 역사의 문제가 입에 올랐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오른 것은 9일 오후였다. 그리고 이틀 뒤 일본에 진도 9.0의 강진이 찾아왔다. TV를 켰더니 자동차가 떠내려가고 배가 뒤집히고 공장이 불타고 있었다. 나중에 듣자니 우리가 비행기에 오르고 몇 시간 되지 않아 강진을 예고하는 듯 첫 번째 지진이 시작됐다고 했다.

대지진 직전의 아지가사와 부둣가 선술집(위)과 이곳에서 담소를 나눈 한국 문인들이 남긴 글귀. [아오모리=AP 연합뉴스], [아오모리=강혜란 기자]

 섬사람인 나는 바다의 무서움을 좀 아는 편이다. 이를테면 오래 전, 폭풍 경보의 밤바다에 떠있던 적이 있었다. 공포는 발 아래에서 찾아왔다. 죽음의 가능성이 나를 감쌌고 죽을 때까지 몹시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섬을 뒤흔들었던 여러 개의 태풍도 기억하고 있다. 방파제가 사라지고, 배가 뒤집히고, 파도에 휩쓸린 사람이 갯바위에 부딪혀 죽어가는 장면도 그렇다.

 그게 그곳에 찾아왔단다. 사과나무 가지치기를 하던 농부와 우리가 눈을 흘겼던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1909~48, 『인간실격』의 작가. 그 집을 지은 그의 아버지는 고리대금업자였다) 기념관, 고즈넉한 시가지의 아담한 집과 귀여운 자동차들, 딸아이 선물을 샀던 가게, 그리고 나를 배우로 잘못 알고 도다리 튀김과 술을 서비스 해주었던 주점의 아주머니, 겸손했던 가이드, 해안 광장에서 아빠와 함께 삽자루 연주를 하던 어린 소녀.

 그 모든 것들이 흔들렸고 무너지고 깔리고 쓸려가고 있었다. 아지가사와 바닷가의 눈 내리던 풍경과 지진해일(쓰나미)이 휩쓸고 간 파멸의 풍경. 나는 이 두 개의 극심한 간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쓰나미가 인도네시아를 덮쳤던 2004년. 무역선 선장을 하는 친구는 당시 근처를 항해 중이었다. 그는 떠내려 오는, 수백 수천의 시신 사이로 배를 몰아야 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을 오래도록 앓아야 했다.

 삶과 죽음이 한 순간이다. 재해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를 물어볼 틈도 없이 찾아온다. 그게 오면 우리가 만들고 이루어 냈다고 뻐기는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사라진다. 살아남은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이웃의 참사를 대할 때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는 정도이다. 무기력하다. 자연 앞에서의 겸손, 이라는 흔해 빠진 말이 새삼 무겁고 아프다. 다시 한 번. 일본 전체의 슬픔에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다.

글=한창훈(소설가)

사진=강혜란 기자

◆한창훈=

소설가. 1963년 전남 여수 거문도 출생. 바다가 기꺼이 제공하는 '찬거리'를 본지 'week & 섹션'에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로 연재했고, 이를 다듬어 산문집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로 펴냈다. 소설 『홍합』 『나는 여기가 좋다』 『청춘가를 불러요』, 산문집 『한창훈의 향연』 등이 있다.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center/v2010/power_reporter.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