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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전문가

철학 빈곤의 시대, 누가 마크 주커버그를 만드나

철학 빈곤의 시대, 누가 마크 주커버그를 만드나
by 비전 디자이너 | 2011. 02. 01

2010년 1월20일 대통령의 첫 라디오, 인터넷 연설의 주제는 ‘G20 세대’였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실력을 쌓은 젊은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는 요지였다. 연설 내용 가운데 G20 세대 중에서 페이스북 설립자인 마크 주커버그와 같은 20대 글로벌 기업 창업자들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는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정부 지원 벤처 융성론’의 논리가 성립하기 위한 전제인 마크 주커버그가 과연 미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성공한 인물인가가 의문시되었기 때문이다. 마크 주커버그가 정부로부터 사무 공간을 임대받고, 경영 컨설팅을 무료로 제공받는 벤처 인프라가 있었기 때문에 성공한 1인 기업가인가?

이 답을 구하기 위해 이 새로운 부가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문제의 본질을 생각해보자. 구글의 검색엔진과 페이스북의 소셜 네트워크와 같이 시장을 뒤흔드는 서비스를 만드는 핵심을 생각해 보자. 과연 누가 마크 주커버그를 만드나?

첫 번째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도 마크 주커버그가 있었다는 것이다. 1999년 9월 이동형 대표는 형용준, 정태석씨 등 6인과 싸이월드를 창업한다. 싸이월드는 2004년 2월 런칭한 마크 주커버그의 페이스북보다 약 4년은 더 시대를 앞선 서비스였다. 당시 급증한 국내 인터넷 이용자들은, 과거 산업화 시대에 도시로 몰려든 인구가 아파트 주민으로 수용됐듯이, 자연스럽게 싸이월드 고객이 됐다. 인터넷화는 곧 싸이월드화였고, 싸이월드는 대한민국의 ‘국민 인터넷 서비스’였다. 이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만큼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는 이들 창업자들의 빈한한 초창기와 주커버그의 탄탄한 성공 가도와의 큰 차이다. 작년 개봉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가 극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실리콘밸리의 주목을 받은 주커버그는 초기에 충분한 벤처 자금을 받아 기록적인 속도로 성장한 기업을 만들어낸다. 반대로 싸이월드가 혁신적 서비스를 창조한 결과는 그 인기와 맞물려 증가한 빚더미다. 여타의 신사업들이 그렇듯이, 비즈니스 모델이 명확히 세워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용자수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그들을 관리, 유지, 보수하는 비용 자체가 곧 적자였다. 결국 싸이월드는 17억원이나 되는 빚에 시달리다가 서비스를 지키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국내 대기업인 SK커뮤니케이션즈에 서비스를 매각한다. 기술과 서비스의 차이를 넘은 투자의 차이가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의 서로 다른 운명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이들 투자를 만드는 배경의 어떤 차이가 싸이월드와 페이스북 간의 운명을 가른 것인가. 그리고 정부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이 투자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데에 정부의 정책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에 관련된 문제의 뿌리를 생각하기 위해 잠시 시계를 돌려보자. 인터넷이 사이버 대항해 시대를 열기 전에 있었던 기술 혁신에 의한 모험과 정복의 본류, 유럽 근대의 대항해 시대로 돌아가보자.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있었던 유럽의 대항해 시대, 그들의 부의 근본이 된 항해, 식민지 개척의 시작은 포르투갈의 해상왕자 앙리케부터다. 그는 미개척지인 보자도르곳에 포르투갈 선원들을 보내는 것을 목표로 선박 개조, 지도 제작 등 각종 항해에 관련된 실질적 과학 기술을 발전시킨다. 그 결과 그의 꿈은 그 이후 세대에서 큰 결실을 맺었다. 크로스토퍼 콜럼버스, 바르톨로뮤 디아스, 바스쿠 다 가마 등과 같은 인물들은 유럽의 지도를 바꿨고, 그들의 발견은 유럽의 근대사를 인류의 미래로 확장시켰다.

동시에 이 위대한 대항해의 후원자와 함께 기억해야 할 인물은 16, 17세기 유럽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 중 한 명인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신적 권위, 인간적 권위를 넘어서 무엇보다도 실험과 관찰을 동반한 이성을 강조한 베이컨의 영향은 지도 밖의 암흑 세계를 공포의 대상에서 적극적 탐험의 대상으로 바꿨다. 콜럼버스의 도전이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기술적 기반을 앙리케 왕자가 제공해 주었다면, 그를 위한 정신적, 사상적 기반은 베이컨 등을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인들이 제공했다. 그들은 전문가들의 지식을 답습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적 철학관을 전복하고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는, 혁신과 창조의 가치를 격상시켰다.

이 대항해 시대와 극적으로 상반되는 예가 14~15세기 중국 명나라에 있다. 영락제의 명령을 받아 남해에 일곱 차례 원정을 떠났던 환관이자 장군인 정화는 그의 함대를 동남아, 인도를 거쳐 아프리카까지 보낸다. 이것은 앞서 설명한 유럽의 대항해 시대보다 70년이나 앞서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업적은 명나라의 조공 무역 네트워크를 확장하는데 그쳤다. 이후 유교 관료들의 반발로 더 이상 원정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당대의 명나라는 선박 제조술, 항해법 등 기술적 기반에서 유럽에 비해 앞서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술을 활용하는 철학의 부재가 결국 대항해를 개막하는 영광을 유럽에게 양보하게 했다.

이 수백년 전의 대항해 시대가 오늘날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주는 시사점은 간결하다. 해당 기술에 투자하는 정책적 철학이 부재한 상황에서는 비록 우리가 뛰어난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그 결실을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다시 초기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의 공통점을 생각해보자. 그 공통점은 비즈니스 모델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싸이월드는 그 이유 때문에 한국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결국은 대기업에 매각이 되었지만, 페이스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투자를 받을 수 있었고, 현재 가치 59조에 머잖아 더 큰 기업 가치를 가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싸이월드가, 크게는, 소셜 네트워크의 가치를 보지 못한 것일까? 아니, 좀 더 크게 우리는 새로운 기술이 시대에 던지는 가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그 평가의 기준은 당장의 투자 이익 회수인가 아니면 잠재적인 사회적 변화의 가능성인가?

과거 전신, 전화, 라디오, TV, 영화, 케이블, 인터넷 그 어느 미디어 중에서 초기 비즈니스 모델이 애매하지 않았던 것이 없었다. 마르코니는 전신을 선박들이 안개 속에서 통신을 하기 위해서 개발했다. 안토니오 모치는 상호 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방적 명령을 염두에 두고 전화를 만들었다.(편집자 주 : 그레험 벨이 전화를 발명했다는 기존 사실은 지난 2002년 미 의회에서 안토니오 모치로 바로 잡혔다.) 안토니오 모치는 모바일에서 문자 기능이 모바일 문화의 핵심적 문화를 차지할 줄은 초기 GSM 기술 표준이 제정될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다. 실제로 나중에 사용된 비즈니스 모델은 개발자들이 고안한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창조한 것이었다. 그처럼 이용자들에 의해서 해당 기술이 관심과 흥미를 받게 된 후에도, 라디오와 TV의 경우는 RCA의 사코프, 영화의 경우는 파라마운트의 아돌프 주커, 케이블의 경우는 CNN의 테드 터너, 인터넷의 경우는 넷스케이프의 마크 앤드리슨 같은 인물이 등장해 해당 기술의 상용화를 본격화하기 전까지 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이상의 예들이 들려주는 것은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실질적으로 상용화되고, 대중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기까지에는 관련된 사람들의 많은 인내와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신부터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20세기의 첨단 미디어 혁명들은 당장 그 것이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고 해서 매장시켜 버렸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이었다. 생텍쥐베리가 말한 것처럼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불러모아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누어 주는 대신,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줘야” 한다.

다시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과연 무엇이 마크 주커버그를 만드는가?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생각해볼 때, 초기 벤처기업 생태계에서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들고 나온 벤처기업은 비즈니스 모델이 애매할 수 밖에 없고, 그 기술과 서비스의 참신성을 사회의 대중적 가치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누군가가 지원해 나서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역할의 필요성은 부정하기 어렵다. 미국엔 그것이 실리콘밸리의 벤처 투자 문화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정부가 근대화 이후 해왔던 전통적 후원자 역할에 근거해 그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이 지난 1월20일에 발표된 대통령 성명, 그들의 마크 주커버그 육성론의 정체인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역할에 대한 주장이 그 역할을 뒷받침하는 원칙과 기준이 무엇이냐는 논의를 잠들게 하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그들의 마크 주커버그 육성론이 설득력을 가지게 할 만한 원칙과 기준은 무엇인가? 정부가 견인하는 벤처산업을 상상할 경우, 정부가 말하는 벤처기업, 소위 1인 창조 기업의 가치가 우리가 말하는 구글, 페이스북 등의 파괴적 기술을 이끄는 시장 선도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같은 것일까? 우리 사회에서 ‘혁신’과 ‘창조’는 그 풍성한 논란을 떠나서, 실질적으로 대접을 높이 받을 수 있도록 어떠한 노력을 기울인 것인가? 단도직입적으로, 그들의 주장은 그리고 그 근거는 앙리케 왕자의 신념과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상, 그리고 영락제의 야심과 정화의 한계 사이에서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그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 벤처의 미래가 싸이월드의 과거와 페이스북의 과거 중에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는가?

이상의 의문이 그 성명 발표가 세간에 화제를, 그리고 논란을 불러 일으킨 이유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그 의문을 불식시킬 만큼, 설득력 있는 답변을, 그리고 실질적인 정책을 듣지 못했다.

(사진 : http://www.flickr.com/photos/andrewfeinberg/2325430224. CC BY.)